법정은 재판과 관련된 인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도원그룹 후계자에 대한 진실 공방이 화제가 되어 많은 기자들이 참석했다.
“심 판사, 이 재판을 비공개로 하는 것이 어떨까?”
“선배님, 염려 놓으세요. 재판장인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윤철은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대비해 비공개 재판을 제안했지만, 심 판사는 태양 부산의 대표로서 자신의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공개 재판을 강행했다. 그 결과 방청객과 취재진이 법정에 참관할 수 있었다.
법관 전용 문을 통해 배심원들이 들어왔다. 연우는 위 칸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그의 자리 앞에는 사건에 대한 설명 자료와 질문지, 필기도구가 놓여 있었다. 설명 자료에는 피고인의 인적 사항과 사건 개요가 기재되어 있었다.
상태가 배심원석을 바라보다가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 약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법원 경위가 소리쳤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요.”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고, 재판부가 착석하자 다시 앉았다. 연우는 그 일사불란한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 지수는 27%에 불과하다. 이는 불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모순이라는 느낌이 든다. 언제든 자신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잠재의식이 그런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본 재판은 피고인의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됩니다. 1번 배심원께서 대표로 선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건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재판장이 설명하는 법과 증거에 따라 진실하게 평결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배심원 선서가 끝난 후 심 판사가 말했다.
“배심원 여러분은 법정에서 조사된 증거를 이해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설명 자료를 참조하시고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셔도 됩니다. 단, 자료는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유출을 금지합니다. 질문은 변론 종결 후 질문지에 작성하여 재판부에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증거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전에 검사님께서 피고인을 기소한 이유에 대해 공소사실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석낙은 평판 영사기 아래에 서류를 놓고 리모컨을 눌렀다. 그러자 대형 모니터에 공소 내용이 나타났다.
“피고인은 2015년 8월 2일 오후 10시부터 친구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이후 음주 상태에서 운전하던 중 속초 신풍리에서 도로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차량과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두 명이 사망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사망자 서경란이 임신 8개월로, 결국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입니다.”
주변에서 피고인을 질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움츠러든 상태는 고개를 숙였다. 지상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고개를 들어요. 죄인처럼 보이잖아요.”
석낙은 국과수 감정서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피고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2%로, 이는 면허 취소의 대상입니다. 이후 증인들이 증언할 것이지만, 피고인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검사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과 형법 제268조에 따라 피고인을 기소한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피고인 측 변론하시죠.”
지상이 법대 앞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한쪽에서는 야유도 나왔다. 이는 매스컴에서 그의 거짓 진술 교사에 대한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지상은 이미 예상한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무시했다.
“여러분, 앞서 검사님께서 공소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에는 왜곡된 부분이 있습니다.”
화면에 어떤 공식이 등장했다.
‘혈중알코올농도 = [알코올 농도(%) × 마신 양(mL) × 0.7894] / [체중(kg) × 0.7 × 1000]’
“이것은 경찰이 음주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위드마크 계산법입니다. 예를 들어, 체중이 70kg인 남성이 맥주 1,000cc를 마셨다면 이 공식에 의해 0.064%의 수치가 나옵니다. 또한, 혈중알코올농도는 시간당 0.015%씩 감소한다는 것이 학계의 연구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 남성은 2시간 후에 면허 정지 기준인 0.05% 이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피고인이 술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11시경이며, 사고는 3시간 후에 발생했습니다. 이 공식과 음주 경과 시간을 고려할 때, 체중이 62kg인 피고인의 알코올 수치는 0.02%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위드마크 공식에 따르면 0.05% 이상입니다.”
석낙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자신 있게 반박했다. 지상은 이를 예견한 듯 씩 웃었다.
“검사님, 소주잔의 용량은 어떻게 되나요?”
“보통 50mL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양주잔의 용량은요?”
“비슷하지 않나요?”
“제가 정확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상은 가방에서 생수병, 소주잔, 양주잔, 그리고 눈금이 표시된 주사기를 꺼냈다. 이어 주사기로 생수를 주입하고 각 잔에 채웠다. 법정은 순식간에 과학실로 변모했다.
“보시다시피 소주잔은 50mL, 양주잔은 30mL입니다. 아마 검사님은 양주잔의 용량을 소주잔인 50mL로 계산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수치가 맞습니다.”
도처에서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석낙의 얼굴은 굳어졌다.
“피고인의 알코올 수치가 0.02%라는 정황 증거가 또 있습니다.”
모니터에 ‘혈중알코올농도 대비 음주량’ 표가 보였다. 지상이 상태에게 물었다.
“사고 당시 피고인은 술을 몇 잔 마셨나요?”
“3잔입니다.”
“그렇군요. 피고인은 양주잔으로 고작 3잔을 마셨습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이 표에 의하면 혈중알코올농도가 0.01~0.03% 정도 나올 것입니다. 이 수치는 위드마크 계산과 거의 일치하죠. 따라서 피고인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22%라는 국과수의 감정서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그것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석낙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피고인은 술을 자주 마십니까?”
“원래 체질상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해 잘 못 마십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피고인은 특이한 체질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수치는 의미가 없습니다. 피고인은 알코올 도수가 40도인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마셨습니다. 스트레이트로 드셨나요, 아니면 희석해서 드셨나요?”
“아마 스트레이트로….”
“보세요! 지금도 술을 마신 방법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죠. 이런 피고인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방청객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방이 긴장하여 말실수하기를 바라는 것. 그 허점을 노린 비열한 짓!
‘교활한 놈.’
석낙은 기세를 잡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술을 마신 후 몇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올까요? 변호인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있습니다.”
화면에 저명한 알코올 중독 치료 전문가의 논문이 떴다.
“우리 몸에 알코올이 들어오면 생각보다 해소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양은 시간당 7~10g입니다. 소주 한 병을 마셨을 경우 알코올의 양은 80g으로,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려면 약 10시간이 소요됩니다. 여기서 보시다시피, 양주 4잔을 마신 70kg 남성이 술이 깨는 데 걸리는 시간은 6시간 28분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3잔을 마셨고, 사고가 난 지 3시간 전이었습니다. 과연 술이 깼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배심원들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상은 옷매무새를 고치며 중얼거렸다.
“저놈, 준비를 철저히 했네. 어설프게 하다가는 개망신을 당하겠군.”
석낙은 의기양양하게 상태를 심문했다.
“피고인은 술에 취해 졸다가 사고를 낸 것 아닌가요?”
“그날 저는 빈속에 술을 마셔 속이 불편해서 졸 수가 없었어요.”
“그래요?. 이 논문에 의하면 음주 수치는 술의 양이나 알코올 농도뿐만 아니라 나이, 성별, 건강 상태, 섭취한 음식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변호인이 제시한 위드마크 방식은 단순한 계산일 뿐이며, 알코올 분해 시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검사님은 자신의 주장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현재 경찰은 위드마크 방식을 이용해 음주 수치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검사님의 주장에 따르면 엉터리 계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런 경찰 모두를 처벌 해야겠네요?”
“그, 그건….”
순간적인 반격이었다. 불리한 상황을 감지한 석낙이 서류를 흔들며 발끈했다.
“그럼, 변호인은 이 국과수 감정서를 부정하는 건가요? 그 근거를 제시해 보세요!”
“곧 알게 될 겁니다.”
모니터에 판결문이 나타났다.
“이 판결은 서울중앙지법 2012고단429 사건입니다. 소주 반병을 마신 피의자가 음주 운전으로 적발되어 병원에서 혈중알코올농도 검사를 받았는데, 임상병리사가 피의자의 팔을 에틸알코올로 소독하는 과정에서 혈액과 섞였습니다. 에틸알코올은 술에 포함된 알코올과 같은 성분입니다.
그 결과 국과수의 알코올 수치가 0.3%를 넘어서 구속될 뻔하다가 석방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판례에 따라 국과수의 감정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는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른 신체 상태 증상’ 표와 구불구불한 국도가 보였다.
“이 표에서 보시다시피, 알코올 수치가 0.22%라면 소주 2병 이상을 마셔야 합니다. 또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지상은 레이저 포인트로 연속적인 굴곡진 도로를 비추었다.
“이 사진은 사고 현장 주변을 촬영한 항공사진입니다. 국과수의 감정에 따르면 피고인은 인사불성에도 불구하고 급회전이 반복되는 구간을 운전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도로를 멀쩡한 정신으로도 운전하기 힘든데, 과연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다시 모니터에는 가파른 절벽이 떴다.
“이처럼 급경사인 도로를 완벽히 통과했음에도 혈중알코올농도가 0.22%라는 국과수의 감정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대부분의 배심원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성낙은 다급해져 목소리 톤을 올렸다.
“변호인은 국가 공인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국과수 분석실장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채택합니다.”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않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인 선서를 마치자, 석낙이 심문했다.
“변호인의 주장처럼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나요?”
“저희 국과수는 최첨단 기법을 사용하여 오차가 없는 기관입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다르게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주장입니다. 국가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매우 억울합니다.”
분석실장은 불쾌한 표정으로 코를 만졌다.
“국과수와 증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전문가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금 전의 판례를 부정하는 겁니까?”
“그, 그건….”
“아니면 그 판결을 내리신 판사님이 잘못 판단한 건가요?”
“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류를 인정하는 거네요?”
“...”
그는 지상의 추론에 대해 시인한 셈이 되었다. 자리로 돌아가는 분석실장을 기탁이 노려보았다.
결국 음주 수치 공방은 무승부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