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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12. 2024

D-day 16일 전 - 2

12월 10일 (목)


“여기가 다한컨설팅 맞나요?”

문이 열리며 중년 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매서운 날씨에 한참을 걸어온 듯, 그녀의 두 볼에는 실핏줄이 돋아 있었다. 현우는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믹스를 타서 건넸다. 그녀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사방을 살폈다. 손등에는 험난한 세월을 견뎌온 흔적이 역력했다.

“손님이 오기 전에 거래하는 은행에 문의해보니, 세 곳에서 각각 천만 원씩 3천만 원이 가능합니다. 원하는 대출금은 얼마인가요?”

“사실 더 필요하지만, 그 정도라도 받고 싶어요.”

현우는 실적 통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가 손님 명의의 통장으로 몇 억을 입출금하여 실적을 쌓는 거죠.”

여자는 거액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면 끝 줄의 대출금을 가리켰다. 

“이 실적을 바탕으로 대출된 금액입니다.”

“정말이네요!”

다시 한번 동인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경험이 이론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대출이 더 빨리는 안 될까요?”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실적 대출이라 기간이 필요해 약 3주 정도 걸립니다.”

가능한 날짜를 넉넉히 잡았다. 이제 디데이는 16일 남았다. 만약 2주로 말한다면, 이틀 동안 독촉을 받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동인은 이런저런 핑계로 미룰 수 있다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손님을 상담한 사람은 현우이며, 약속한 날에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불만을 제기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1일 이체 한도 금액, 인터넷 뱅킹 신청 방법, 은행 위치 등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환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형, 저 여자의 통장은 이체용으로 쓸 거예요.”

동인이 말하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잔고 사무실로 보낼 서류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여자의 등본에는 본인과 아들만 등재되어 있었다.

손님이 방문하면 현우는 등본, 인감증명서, 주민증을 받는다. 필요한 서류는 대출 광고에 이미 명시되어 있다. 동인에게 등본을 슬쩍 건네주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 작업용으로, 흔들면 이체용으로 그들만의 신호이다.

동인은 작업용 서류에 가족이 모두 등재되어 있어야 하며, 정상적인 사람의 서류를 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대주가 혼자이거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 사고를 우려해 잔고업체에서 기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성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만약 그쪽에서 의뢰인에게 물어 볼 일이 생기더라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통화한 동인을 제외한 두 사람이 잔고증명 의뢰자의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고. 

서류를 사무실에 맡기는 것을 불안해하는 손님에게는 이렇게 이유를 둘러댄다. 본인 통장으로 거액이 입금되는데, 만에 흑심을 품고 인출한다면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물론 사기죄로 고소하겠지만, 당장 자금 회전이 되지 않아 피해가 심하다며 겁을 준다. 받은 서류와 각서는 대출이 승인되고 수수료를 지급하면 즉시 돌려주니 안심하라고 한다.

각서는 잔고업체에서 요구하는 서류 중 하나로, 의뢰인이 고의로 잔고증명 돈을 빼갈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체 통장만 확보하려는 손님에게는 이 각서가 의미가 없지만, 그들이 하는 대출이 가짜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실제로 잔고증명을 의뢰하는 사람이라면 이 각서를 잔고업체에 보내야 하므로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은행에서 돌아온 여자는 통장 세 개와 신청서, 보안카드 등을 건넸다.

“대출금은 어디에 사용하실 건가요?”

동인이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단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어렵게 입을 뗐다.

“최근 아들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해 병원에 갔더니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 말로는 남은 시간이 길어야 6개월 정도라고 하더군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전혀 몰랐어요. 20년 전 남편을 잃고 생계를 위해 우유 배달, 아파트 청소, 파출부 일을 하며 살아왔지요. 그동안 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지하 셋방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절망에 빠진 적은 없었어요.”

여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곧 흘러내릴 것 같았다.

“저는 배운 게 없어 몸으로 열심히 살아왔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아들과 함께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었죠. 근데 최근 한 병원의 간이식 전문의가 아직 젊으니 수술을 받아보라고 권유해서 희망이 생겼어요. 수술비가 우리 형편에선 엄청나지만 꼭 수술을 받고 싶어서 은행에 알아봤어요. 하지만 자격 미달이라 모두 거절당했죠. 고민하던 중 정보지 광고를 보고 여기 오게 되었어요.”

여자는 감정이 북받쳐 훌쩍거렸다. 현우가 등본을 보니 그녀의 아들은 자기와 비슷한 나이였다.

“젊은데 왜 간암에 걸리게 되었어요?”

여자는 남편이 술병과 함께 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장례 비용이 없어 시신을 집으로 운구하는 과정에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B형 간염에 감염되어 그해 심한 열병을 앓았고, 그것이 지금의 간암으로 발전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더 이상 방법이 없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게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는데, 돈이 없어서 자식을 죽이게 되는 어미의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울부짖었다. 현우는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난감했다. 한편으로는 물어본 것이 후회스러웠다.

‘최선을 다해 대출이 나오도록 노력해 볼게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맴돌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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