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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11. 2024

D-day 16일 전 - 1

12월 10일 (월)


동인은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소집했다. 이어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디데이는 26일 수요일로 정했어요. 이제 16일 남았죠. 작업할 업체 수와 금액은 아직 미정이에요.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빈틈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죠.”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출정식 같은 분위기였다. 동인은 한 신문 금융 광고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 대양금융이죠? 저희는 주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하는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잔고증명 의뢰가 많이 들어오더군요. 조건이 맞으면 거래를 하려고 전화했습니다. 수수료는 억당 얼마까지 가능할까요? ... 좀 더 저렴하게는 안 될까요? 그럼 생각해보고 연락드리죠. 수고하세요.”

통화를 마친 그는 현우에게 신문을 건네고 자리로 돌아갔다.

‘잔고증명, 예금조성, CD, 평잔, 자금대납’이라는 용어로 보아 이것들을 취급하는 사채 사무실인 것 같았다. 며칠 전 방문했던 명동의 사채 사무실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들은 이런 사채업자에게 잔고증명을 의뢰해 작업했을 것이다. 일간지와 경제지에 실린 잔고증명 광고는 수십 개에 달했으며, 대부분 명동 쪽에 몰렸고 강남에도 있었다. 무심코 훑던 현우의 눈이 번쩍이며 두 주먹이 떨렸다.

‘수일금융!’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작년에 미행했던 사무실과 같은 위치였다.

‘그래! 잘하면 이 연놈에게 복수를 할 수 있어.’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현수 형, 팩스 오면 갖다 줘요.”

이 희열을 동인이 깨뜨려 계획을 잠시 미뤄야 했다.

“조금 전에 전화드렸던 김 실장입니다. 억당 30만 원까지 해 주면 서류를 넣을게요. 가능하다고요? 그러면 그쪽 잔고증명 양식을 저희 사무실 팩스로 보내 주세요.”

동인은 업체명, 담당자, 전화번호 등을 대포폰 뒷면에 적어두었다. 이는 작업 중에 휴대폰이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철두철미함에 현우는 감탄하면서도 질렸다.

잠시 후, '뚜' 소리와 함께 팩스기에서 10여 장의 용지가 쏟아졌다. 대양금융에서 보낸 잔고증명에 필요한 서류였다. 동인이 문을 잠그고 현우에게 말했다.

“이 서류와 수수료를 대양에 보내서 잔고증명 작업을 할 거예요.”

“몇 번이나 해야 해?”

“원하는 정보를 빼낼 때까지요.”

“근데 수수료는 뭐야?”

“일반인이 잔고증명을 의뢰하면 보통 수수료가 1억당 4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에요. 물론 더 비싸게 받는 곳도 있어요. 공시 가격이 정해진 것도 아니니, 부르는 게 값이지요. 그런데 제가 동종업체라고 하니까 30만 원, 즉 도매가로 준 거죠. 센터링하는 우리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 손님을 보내지 않겠어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현우는 엉뚱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잔고증명의 돈은 당일 입금하고 다음 날 일찍 인출한다. 만약 1억을 투자해 풀로 돌린다면 주말을 제외하고 한 달에 20번 자금 회전이 가능하다. 수수료를 최하 40만 원으로 잡아도 월수입이 800만 원에 이른다. 요즘 은행에 1억을 맡겨도 한 달에 30만 원 이자를 받기 힘든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익이다. 게다가 지하 자금이라 노출되지 않으니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도 없어 전부 순수익이다.

‘역시 돈이 돈을 벌고,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구나’라는 생각에 현우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작업에 드는 수수료가 상당할 텐데?”

“빈 바늘로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잖아요. 미끼를 줘야죠. 그래서 최대한 빨리 정보를 빼내는 만큼 비용을 아끼는 거예요.”

“그거 어렵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죠. 잔고업체마다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그걸 푸는 게 관건이에요. 이제 형도 있으니 함께 머리를 맞대야죠. 동수 형은 이런 면에서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거든요.”

동인이 혀를 날름하자 동수가 흰자위를 희번덕거렸다.

‘삐리릭 삐리릭.’

처음으로 광고 전화의 벨이 울렸다. 순간 세 사람의 눈길이 전화기로 집중되었다.

“다한컨설팅입니다.”

현우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거기가 대출 사무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광고에 실적으로 대출해 준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이에요? 저는 주부라 사업자도 아닌데 정말 5천만 원까지 가능한가요? 진짜 은행 대출이 맞나요?”

여자는 질문을 쏟아냈다.

“전화하신 분의 명의로 통장을 개설한 후 저희가 거액을 입출금 하죠. 그러면 은행에서 그 실적을 근거로 대출을 해주는 거예요.”

“대출 이자는 어떻게 되나요?”

“은행 대출이므로 연 8~10%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수수료는 얼마이고 대출은 즉시 이루어지나요?”

“수수료는 대출금의 10%이며, 대출은 실적을 쌓는 기간이 필요하므로 서류 접수 후 2주에서 3주 정도 걸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사무실에 방문하셔서 상담받는 것이 좋겠네요. 그리고 먼저 대출 최고 금액을 저희와 거래하는 은행에 확인을 해야 합니다. 신용불량인 경우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으니, 바쁘신데 헛걸음하시면 서로 미안하잖아요. 대출을 받을 의향이 있으시면 성함과 주민번호, 연락처를 알려 주시겠어요?”

여자는 한 치의 의심 없이 자신의 인적 사항을 말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기립 박수가 터졌다.

“거 봐! 이번 작업에 현수가 꼭 필요하다고 했지?”

“형, 처음인데 대단하네요.”

동인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현우도 뿌듯하여 어깨를 으쓱했다. 

“현수 형, 이 광고를 지역정보지에 내줘요.”

그것은 부동산 담보대출과 잔고증명의 광고 문구였다.

“정말로 이걸 하려고?”

“아니에요. 이 광고를 게재하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째, 작업하려는 업체에서 불시에 우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어요. 가령, 이 지역에 와서 정보지를 수거하거나 영업 내용을 팩스로 요청할 수 있죠. 우리가 부동산 담보대출과 잔고증명을 한다고 했지만, 그에 대한 증거가 없잖아요. 지금 나가는 광고는 신용 대출이라서 파트가 다르기에 큰일 나죠. 바로 우리 사무실을 의심할 거예요. 저들은 잔고증명의 돈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에 늘 불안해 하거든요. 둘째, 진짜 잔고증명 손님이 오면 의뢰하는 거예요. 어차피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수수료를 줘야 하니, 우리 의뢰인이 있다면 수수료를 절약하면서도 정보를 얻고 일거양득이죠. 이 광고로 들어오는 상담 전화는 제가 담당할 테니 그렇게 아세요.”

그의 철저한 준비와 수익을 고려한 전략에 현우는 넋을 잃었다.

두 번째 전화는 점심 식사 후에 울렸다. 현우는 한층 여유롭게 전화를 받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다음에는 수월하기에 상습범이 되는구나."

상대방은 카센터를 운영하는 개인 사업자였다. 상담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동인의 강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의로 5천만 원까지 대출이 된다고 하자, 카센터 사장은 내일 사무실에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현우는 일일 캘린더 메모지에 '오전 10시 카센터'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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