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를 찾아서

나는 누구인가?

by 위공


고백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항상 착하고 선한 성품으로 커왔고 지금까지도 남에게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며 속으로 삼키고 억눌려 버려 가슴속 응어리가 되어 남의 눈치를 보는 버릇까지 생겼다.

늘 남 앞에서는 말하는 게 위축되어 차라리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위로했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아이로 커다 보니, 지금까지도 그런 버릇이 남아 있었다.

항상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에게 물었고 자아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말을 못 하니, 자연히 글로써 대변하고 일기나 편지, 수기 등을 수시로 썼다.

처음에는 일기든, 수기든 남에게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글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세상도 전부 부정과 악만이 있는 나쁜 사회로 비치는 것이 당연했다.

독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 보는 것으로 발전적인 면이 부족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사랑을 알기에는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였고 사랑받기만 원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 다만,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는 착하고 순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게 유일한 것이었다.

사람이든, 종교든, 독서든 착하고 선한 끝은 있다는 확신을 다져 나가며 배웠는데, 그중에서도 사람보다 종교를 더 맹신하였다. 어쩌면 종교가 유일한 탈출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께서 불교를 오랫동안 믿어왔는데, 그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종교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왔는지라, 지금까지 불교를 배우고 있다. 그렇지만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불교를 배우고 있는 지라. 불교는 무신론이다. 부처님도 인간이며, 인간을 숭배한다.

정신적 세계를 더 믿는 것이다.

불교는 또한 생활 철학이다. 살면서 깨닫고, 삶의 지혜를 얻고,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그러하기에 불교가 현실이라 더 매력적이다.


명상록

언제부터인가 산책하면서 명상을 떠올리고, 떠올랐던 글감을 생각하고 메모해 뒀다가 명상록에 옮겨 적고, 일기에도 쓰고 그런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밤에도 자다가 생각나면 쓰기도 하고, 수시로 명상하는 습관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인용 노트를 작성하면서 명언과 가슴에 와닿는 글을 내 삶의 지표로 삼기로 했다.

명상록이 나에게는 삶의 지표가 되었고, 여태 살아온 삶의 가치관을 진실하게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명상>

너무 닦달하며 살지 말자.

자신을 내려놓고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은

어쩌면 자신의 세계와도 같은 것을 가만히 지켜보자.

그것이 명상이다.

나의 좌우명 - 열정, 긍정, 희망

<인생은 여행이다.> - 헤르만 헤세-

여행에서 성공과 실패는 없다.

그 자체만 즐길 뿐이다.

내가 어떤 곳 어떻게 여행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고 행복했으면 그만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곳이라고 해도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꽃을 좋아하면 꽃집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꽃을 선물하면 나도 좋고 다른 사람들도 좋듯이

인생은 그렇다.

내가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래서 여행이다.

다른 곳으로 가기에 틀린 게 아니고 모두가 다를 뿐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면 책의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던지~

내가 운동을 좋아하면 어울려 같이 놀고 그렇게 하던지

<젊게 생동 있게 사는 인생> - 릴케-

청춘은 아름답고 생명이 넘친다.

열정과 희망은 항상 인생을 젊게 한다.

<열심히 살아야> - 고전-

열심히 산 하루 끝에 달콤한 잠이 기다리듯

최선을 다한 인생 끝에 편안한 죽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이면

아무도 막지 못한다.

무슨 일을 벌이던 공공의 이익이면 실패가 없다.

<남의 허물을 덮어쓰는 것이 가장 큰 공부다.> - 성철 스님-

바꾸어 말하면 참는 것이 가장 큰 수련이다.

인내가 참을 인자가 세 번 참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뜻을 잘 알고 참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나보다 센 사람에게 참는 것은 겁이 나기에 참는 것이고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 참는 것이며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참는 것이 진정 훌륭한 참음이다.

<외로움은 외로워질수록 더 밝아진다.> - 고전-

고독은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 광명과 무상의 극치를 본다.

<행복론> - 고전-

행복은 좇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끌고 가야 한다.

, 내가 행복을 만들고 또는 불행을 만든다.

그러고는 내가 행복하면 네가 행복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다.

<가족> -고전-

가족은 하나의 울타리이며 또 하나의 생명이지만,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결국에는 가족은 마지막 피난처고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말을 다스리고 습관을 길들라.> - 고전-

1.2.3 대화법

대화를 시작하며 사회적 규범을 먼저 말하고 꼭 식사의

자리를 마련하며 데이터(숫자)를 꼭 넣어라.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열중하라.

<사람은 난로 다루듯> - 고전-

가까우면 데고 멀면 춥다.

길가에 한줄기 풀잎같이, 스쳐가는 바람같이 살자.

태양은 낮을 밝게 하고 달은 밤을 아름답게 한다.

고로, 조용한 명상은 곧 깨달음이다.

고전은 고전으로 바로 해석해야 한다.

마음에서 피는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하늘나라의 꽃이다.

달이 구름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갈길을 아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길을 비켜준다.

혼자라고 두려워 말라.

나 자신이라는 친구를 믿고 그 영원한 친구

나 자신을 돌보며 나 자신을 사랑하자.

그리고 매일매일 행복해 하자.

<성공>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15분 일찍 하느냐, 늦느냐의 차이다.

성공과 행복은 가장 가까이 있다.

그리고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그 생각에 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고 모든 것을 쉽게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얻으면 결코 가볍게 생각하거나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자유>

어깨의 많은 짐을 내려놓고 최소한 없도록 하고 나가자.

마음의 찌꺼기도 싹 비우고 가자.

<우정>

우정이란 누군가에 의해 행복했다는 기억되는 것.

나이가 들면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습관을 들인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 때 거창하게 생각을 말라.

서로 부담 적게, 그리고 나누기에 좋은 것을 생각하라.

<전문성>

전문가가 되려면 모든 일이 10년은 넘어야 한다.

그리고 노력과 인내는 작심삼일이 반복되어도 계속되어야 한다.

<절제와 자제>

헛된 욕정에 빠지지 마라. 한번 그 맛을 알면 점점 빠진다.

정욕은 삼갈 수록 좋고 정사가 끝나면 허무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백배 정신 가다듬고 분발하자.

<휴가>

여행이나 휴가 갈 때 밤하늘에 별 볼 기회가 있거든

<별자리 이야기> 책을 꼭 챙겨가라.

- 이형철 / 조우성 / 김태욱 / 유환용 / 위현민 -

<인생>

오늘 존재하고 내일은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다.

<소중한 사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히 하라.

첫째도 가족이고 둘째도 가족이다.

결국 죽을 때까지 있어주는 게 가족이다.

거짓 희망을 버리고 진짜 꿈을 꾸어라.

<제사>

제사는 이치에 밝고 이익은 없는 법이다.

, 다스림의 법칙, 어울림의 이치가 있는 것이다.

요즘 올림픽, 월드컵이 고대의 제례와 거의

똑같은 의의를 갖는다.

그러므로 띄엄띄엄하면 대면 대면해지고

데면데면하면 지극함을 잊는다.

<중용>

중용, 그것은 지극한 경지로다.

그리고 지혜와 어짊이다.

꼰대는 지나온 과거 이야기를 곧 잘한다.

매일매일 성실하고 그래도 3개년, 5개년, 10년 계획을 세워라.

능구렁이와 너구리의 조심성도 필요하다.

<인내>

인내는 원하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노력의 다른 말이다.

<투지>

당신은 어떤 고난이나 실패에도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의 좌우명 열정, 긍정, 희망과 일맥상통함)

기쁨은 기쁨을 낳고, 행복은 행복을 낳는다.

꾸준히 앞만 보고 달려가라.

시간은 뒤로 가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만 간다.

그러므로 추억일랑 거두고 목표, 목적을 위해

시각을 다투어라.

<인연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가는 것 잡지 말고 오는 것 막지 말고

그들이 즐거우면 나 역시 즐겁듯이

나도 즐거워야 그들도 즐겁다

이게 사람들 관계다.

그러므로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들과 적절히 유지하라.

<어머니>

더 이상 어떤 말로 표현을 할까.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 자체다.

특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몸소 실천하셨다.

어머니로부터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을 배웠고,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나의 인생은 어쩌면 은혜를 갚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영원히 진실과 거짓을 밝히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어머님의 진실과 아버지의 거짓을 밝혀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아버지는 본능에 의한 번식을 위해 씨만 뿌렸다.

그래서 어머님 말씀이 늘 그랬다.

남자는 껍데기만 남는다고...

나는 어머님 말씀에 공감하지만, 절대 껍데기로 남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하고 맹세했다.

<경험과 자신감>

수많은 경험과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얻은 자신감은

이 세상에 험하고 어떤 어려운 일도 다 이겨낸다.

<느리다고 말하지 말라.>

대기만성은 느림의 미학이다. 그리고 나의 철학이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고 금방 잊힌다.

느리고 힘들게 얻은 것이 귀하고 오래간다.

<나 자신과 남자의 모습이란>

어항 속의 물고기를 나라고 한 번 생각해 보라.

자신만의 세계만 있지, 더 큰 세계를 경험해 보았는가

이 사실을 알면 비로소 내가 내 모습을 보게 되고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 노래 가사처럼 왔다가 스쳐 가는 바람이다.

태풍이든 산들바람이든, 그래서 바람피운다는 말은

원래 남자에게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바람처럼 나그네처럼 그렇게 가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확실히 다르다.

옛말에 과부 3년이면 깨가 서 말이고, 홀아비 3년이면

말이라고 했다.

동물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수놈은 종족번식에 역할을 다 했으면 홀연히 떠난다.

물론 종족의 리더나 조직제의 우두머리라면 또 다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영화 속의 맥가이버처럼 해결사 역할을

끝나면, 또 나그네처럼 떠나야 한다.

여자가 나그네란 말을 어디 드러나 봤는가?

이 정도에서 남녀가 다르다고 끝맺음하련다.

<성실>

어떤 일이 있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끝까지 성실함으로 무장하라.

그게 성실의 참모습이다.

<중도>

부자 줄에 서면 행복과 즐거움이 일시에 있을 줄 모르나,

인생 전체적인 면과 가치관은 자기가 확립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똑똑하다는 말은 한 가지밖에 모른다는 것과 같다.

천재는 바보를 알지만, 자신은 모른다.

바보는 천재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고 오로지 본능에만 의존한다.

중도란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보는 지혜다.

<본능>

우리는 본능에 움직이지만, 잘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이면 동물들을 잘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글쓰기>

글쓰기는 자기를 즉, 자아를 완성하는 것이지, 결코 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이외수 작가의 공중부양이나, 안정효 작가의 수영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딱 맞는 말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되어있고 어느 순간 물이고, 공중이고 붕 뜨게 되는 것이다. 뜨는 순간, 환희와 해탈의 맛을 보기도 하겠지만, 계속 글쓰기를 해야지 게을리하면 그 가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쓰면 작가고 안 쓰면 백수다.”라는 이외수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작가는 글쓰기라는 영원한 직업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다.



참나에 관한 선언

육체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유한하다.

그러나 이제 감각적 판단을 떠나 영원한 진실을 본다.

참나는 영원한 존재이며 영적인 실재이다.

언제나 기쁘고 평화롭게 존속한다.

깨달은 자가 자기의 무한한 능력을 인지했듯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이미 내게는 무한한 능력이 구비되어 있다.

참나는 한없는 사랑이기에 모든 존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또한 모든 존재가 나를 한없이 사랑한다.

본래 나는 지혜 자체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이 ‘참나’ 임을 통찰하고

모든 것이 참나를 안다.

나는 무한한 우주의 모든 존재와 일체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와 나는 조화롭게 살아가며 즐거워한다.

나는 생명 자체이므로, 나에게 피곤이나 질병이나 나약함은 있을 수 없다.

일할수록 싱싱하고 힘찬 생명이 약동하고, 남을 도울수록 즐거움이 용솟음친다.

내가 다가설수록 모든 존재가 한없는 생명력을 회복하며 모든 존재는

나를 언제나 생동케 한다.

! 내가 이처럼 영원한 존재이며 무한 능력의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이 감사이다.

참나는 감사함 자체이다.


에필로그

이번 글쓰기는 마지막 편으로 그동안 글쓰기를 총 정리하여 단원별로 순서를 정하였습니다.

늘 아침운동과 잠자기 전후로 명상을 하면서 글감을 생각하고 글감이 떠오르면, 메모해 두었다가 명상록에 옮겨 적고, 일기에도 쓰고, 그렇게 글감을 떠올리며 글쓰기를 계속해왔습니다.

명상록과 인용 노트를 보며 참나를 발견하고 자서전 형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자서전 형식이라 따분하게 보였던 글이 브런치 북을 만들면서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며, 좀 더 세밀하게, 깊이 있게, 넓은 공간의 세계도 보았습니다.

다만, ‘곡식에 제비 같이’, ‘어머니의 편지등 중복되는 수기로 좀 혼란스럽기도 하죠. 이런 수기로 인하여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기에 저에겐 특별한 것이며, 의미가 컸습니다. 수기 응모가 처음으로 글쓰기가 되면서, 퇴직 후 수기, , 소설 등 본격적인 인문학 글쓰기에 전념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 그 이유도 알았고, 글쓰기가 행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글쓰기야 말로 진정한 자신을 보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나를 알고, 나에게 감사함이 바로 참나를 찾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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