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
1. 회상
“그래 누가 뭐라 해도, 가마니 걸치고 하얀 눈을 먹을지라도 난 불을 살려 낼 거야!”라고 혼자서 중얼중얼하곤 했다. 불이 꺼지면 계부에게 일러바쳐 혼나기 때문이다. 물론 불만이 아니었다. 우물가에 물 길러 오다 얼음판에 미끄러져 물을 다 쏟고 아픔을 참고 또 물 길러 가면 계부에게 또 어디서 놀다가 온다고 거짓말을 하는 계부 동생(큰고모)이 정말 미웠다. 그뿐인가 술집을 하는 계부 동생이 손님들에게 술을 따르고 노래까지 시켰다. 눈물을 흘리며 어머님의 은혜를 불렀다.
차라리 내가 다섯 살 때 고아원에서 그대로 있었어야 했는데 생각이 들었다. 계부와 그 동생이 학대가 심해 할 수 없이 엄마가 고아원에 데려다줬는데 엄가가 보고 싶어 나온 것이었다. 어쨌든 고아원에서 나온 것이 이리떼들 소굴로 다시 들어와 고통과 슬픈 나날이 계속되었다.
엄마가 막내 동생 낳고 큰 병이 나서 내가 이를 악물고 엄마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늘 약을 달여 엄마에게 먹이고 동생들도 돌보며 사는 게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맡아하니 너무 벅찼다.
그렇게 고생 속에 어린 시절을 다 보내고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다.
신랑은 간판을 제작하는 일을 하는데, 일은 내게 맡기고 오토바이를 타고 봉사활동을 한다고 늘 밖에서는 놀고 결국 내가 일하는 기사 밥 해주고 그랬다. 그래도 나무땔감이나 연탄보다는 불 다루기가 가스불이 훨씬 편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가 악마가 늘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다. 신랑 여동생(큰 시누이)이 나를 못살게 늘 괴롭혔다. 내가 살림을 잘하고 아껴 친정에 도와준 것을 오빠 돈을 빼돌렸다고 신랑한테 일러바쳐 부부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누나! 일어나세요. 다 왔어요. 해운대!”
늘 삶에 지쳐있는 누나라서 그런지 수시로 잠을 자고 잠깐 자다 또 깨고 그런 일이 잦다.
“어~응~ 그래! 해운대구나! 내가 한참 잤지?”
“예~ 누나! 몸이 피곤하지, 꿈을 꾸는지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고함도 지르고 어쨌든 누나 요즈음 몸이 안 좋은가 봐요.”
누나 집에 불이 나고 가까스로 탈출해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 할 정도이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라 누나로서도 충격이 컸고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불에 늘 가까이 웅크리고 앉아 지켜보면서 여태까지 불과 함께 살아왔다 할 정도로 불을 안고 살아왔고 불을 가까이하면서 불에 덴 곳도 많고 결국 죽을 고비까지 넘긴 것이다. 그래도 누나는 늘 불을 좋아하고 불을 다루고 싶어 한다.
누나는 늘 이렇게 말을 한다. “불은 정말 좋다! 따뜻하고 환하게 나를 반기며 훨훨 타오르며 모든 시름을 다 잊게 하는 것이 불이다!”라고 늘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누나는 수시로 불을 지피고 켠다.
옛날에는 장작나무를 아궁이에 넣어 벌겋게 타오르는 숯불을 보며 불을 쬐고 그 자리에서 떠날 줄 모르던 누이였다.
시대에 따라 세월도 변했고, 불의 모습도 변했다. 요즈음은 가스불이 대세인데 휴대용 부탄가스 불을 늘 곁에 두고 수시로 불을 사용하는 것이다.
워낙 불을 좋아하고 불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보니, 지금도 나를 만나면 “동생! 고기 구워줄까?”라고 늘 불을 가까이한다.
어쩌면 어릴 적 추운 겨울 불만큼 강렬하고도 은은한 사랑을 흠뻑 빠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 누나 마음을 훨훨 태워주는 불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정월대보름 행사로 해운대 백사장에서 달집 태우기 할 때쯤이면, 누나는 아무리 바빠도 꼭 참석을 한다. 그리고 기도를 하며, “우리 엄마 다시 태어나면 부잣집 아가씨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우리 자식들 모두 부자 되게 해 주세요! 우리 막내 동생 훌륭한 작가로! 시인으로! 되게 해 주세요.” 하며 빌고 또 빈다.
어느새 달맞이 고개에 도착했다. “누나! 다 왔어!” 그러자, 누나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엔가 가고픈 그런 표정이었다. “왜? 누나!”라고 묻자, “응! 동생~ 저 해운대 바닷가 한 번 다녀오지 않을래?”라고 하며 뭔가 아쉬운 듯해서 내가 그러자고 동의했다. “누나! 노래 부르고 싶어?”라고 물었다.
“동생부터 먼저 불러!”라고 누나가 말을 했다. “ 아니야! 누나 먼저 불러요.”
그러자 못 이긴 듯 누나가 바위섬을 불렀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나서 한동안 바다를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한참 시간이 지났다. 내가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소원이 있으면 말해봐?”라고 하자, 누나는 기다렸듯이 말했다. “ 그래~ 누난 저 배를 타고 바다 건너에 뭐가 있는지 끝까지 가고 싶어!”라고 하자 내가 말했다. “ 크루즈 타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싶은 게 꿈이야?” 했더니, “엄마가 있는 곳까지 가고 싶어!”라고 말하기에 “누나!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지! 우주선 타고 가야 돼! 우주선 타면 돈이 많이 들어.” 그러자, “동생! 난 이제 늙어 그렇게 많은 돈을 못 벌어!”라고 푸념하듯 내뱉는다. 다시 내가 말했다. “누나! 천국에는 못 가지만 천국 같은 곳이 있어! 천사 초등학교는 천사 같은 어린이들과 동물들이 있는 곳이야! 한 번 가보지 않을래? 즐겁고 신나게 놀고, 항상 따뜻해! 모두들 그렇게 대해주는 곳이야! 그리고 그곳은 동물과 애기도 하고 새들이 늘 우리와 함께 있어 하늘에 가서 어머니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 돼요.”
불과 같은 누이, 불을 사랑하는 누이, 늘 불과 가까이 살아온 누이라, 불하면 누이가 항상 떠오를 수밖에 없다. 자신도 불을 끔찍이 사랑하고 불을 다루는 게 최고라고 늘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그렇지만, 불 때문에 좋지 않은 일들도 많았다. 얼굴에 살짝 데인 흉터나 팔이며 다리 등 온몸에 불로 인한 상처와 흉터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 결국, 마지막에는 집에 불까지 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어떻게 보면 불은 누이와 생사를 같이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누이를 지킬 수 있었던 게 불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힘들고 괴로운 나날이면 불을 지피고 따뜻한 불속으로 자꾸 들어만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해운대는 누이의 삶의 터전이었고, 우리 가족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결혼하기 전, 해운대에서 아내에게 송창식의 ‘사랑이야’를 생음악으로 들려주며 사랑을 고백했는데, 그때 그 사연을 막내딸은 잘못 전해 들었는지 “아빠와 엄마는 노래방에서 만났대요.”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바람에 박장대소가 터졌다.
그런 추억과 함께, 누이도 고달픈 삶의 현장이었던 곳이 해운대였다.
워낙, 강한 성격의 누이고 험한 세상을 거칠게 살아온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해운대는 바다지만, 뜨거운 불같은 누이와 잘 어울린다.
성난 파도는 훨훨 타오르는 불길같이 바위며, 모래사장이며 돌진해온다.
해운대에 오면 누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누이를 위한 시를 한 수 읊어 본다.
오륙도
밀면은 6개요
빠지면 5개로
하루에도 두 번씩
그렇게 보여주는 너
저 바다 건너 현해탄의
아픔의 역사가 있다고
분노하듯 철썩이는
하얀 포말의 파도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큰누이도 자주 찾는
오륙도에서
무슨 사연이 그리 많은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고통이 아른거림인가
사무치는 그리움인가
한 많은 여인의 한숨을
오륙도는
토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