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등불

안데르센 명작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추억

by 위공

우울한 사회

우리 막내딸이 한동안 우울하게 지낸 것을 알게 되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딸 친구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지금 이 사회가 가고 있는 그야말로 최고주의로 학벌, 돈, 명예 등 무엇이든 간에 지상 최고로 치닫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으로 우려되는 사회병리에 대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복지만 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우울하지 않게 잘 살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 막내딸이 취업준비생으로 이러한 막막한 세상에 도전하며 공무원, 공사, 기타 등 4전 5기로 계속 합격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녹녹지 않은 이 현실에 우리 막내딸로 하여금 무기력하고 지쳐가고 있는 상황까지 간파한 아빠로서는 걱정과 함께 간과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절친 친구까지 자살하자, 며칠간 울고 속상해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있기에 우리 집 가족 모두가 맘 졸이며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제 언니가 간신히 문을 열게끔 하였고 위로하며 맘을 진정시켰다.

절친 친구는 똑똑하고 예쁘고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친구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울증이 와서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알기로 하고, 우선 그 죽음 앞에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애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막내딸이 진정되어 평소처럼 생활 리듬을 찾고, 또 시험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성세대는 자살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청춘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도 많은데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그 자체만 해도 내겐 큰 사건이고 쉽게 잊어질 것 같지 않을 것이기에 이 막막한 사회를, 이 사회의 문제점을 심층 분석해 보았다.

요즈음 현대사회는 과학문명,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인간의 삶과 생활수준은 향상되었으나 도덕과 인륜의 타락으로 우리의 삶은 황폐해져서 개인적인, 사회적인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도 산업화 시대의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나, 요즘 현실에서도 최고만이 살아남는 사회 분위기가 되다 보니, 근간에 이르러 사람으로서 행할 수 없는 불륜 및 패륜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우울증과 자살이라는 극단적 인부 작용이 만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병리현상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생기는 것이겠지만 인간성을 모태로 보는 생명의 존엄성과 사회적 개인적 바람직한 가치관의 정신 기반이 사라져 가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인간성 회복을 무엇보다 최우선 과제라 생각하며 나름대로 사회문제를 치유하는 방법 모색의 일환으로서 전통적인 윤리의식과 인간의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과 생명 존중 사상의 고양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이런 가치관을 실천에 옮길 때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바른 정신으로서 이 사회에 충만되어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최근에 이런 사회적 병리현상을 겪고 대처할 수 있는 교훈을 막내딸에게 말하면서 아빠도 성냥팔이 소녀 못지않게 어릴 적에 힘들고 어려운 찹쌀떡 팔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찹쌀떡 팔이 소년

내 나이가 15세 되던 때였다. 70년대로 한국사회에서도 산업화 과정이 한창 진행되는 상황이라, 사람들은 저마다 일에 매달려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 당시 집안 사정은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시골에 농사지으러 올라가셨고 집안 가세가 기울고 그게 다 도시계획으로 도로정비 및 공사로 집이 철거되어 말 그대로 목재 다락형 임시 움막집을 지어 난방 시설이 없어 추운 겨울 지내기가 무엇보다 정말 힘들었다. 유담포(일본식 온수 보온 플라스틱 물통)를 끌어안고 언몸을 겨우 녹여 잠을 청하곤 했다. 이렇게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공부하고 싶었고 진학을 포기할 수 없어, 등록금 마련을 위해 찹쌀떡 팔이 소년이 되었다. 찹쌀떡 팔이는 저녁 8시 넘어 부전동 부전역 근처 떡 공장에서 1개당 6원 50전에 받아 20원에 팔았다.

찹쌀~떡! 찹~쌀 떠~억! 외치며 추운 겨울 찬바람 가르며 종종걸음으로 통금시간 임박할 때까지 달렸다.

찹쌀떡 부르는 어느 양옥집에 들어가다 사나운 개에 놀라 넘어져 찹쌀떡 판이 통째로 엎어지는 사고도 있었고, 깡패들에게 찹쌀떡 다 뺏기고 얻어맞는 사건도 있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고 버티며 계속 찹쌀떡을 팔았다.

학비는 벌어야 했고, 그리고 내 꿈과 희망을 위해서라면 추운 겨울 가마니 걸치고 하얀 눈을 먹을지라도 해야만 했다. 밤에만 학비를 버는 게 아니었다. 학생 신분이니, 낮에는 공부를 해야 하기에 방학 때에만 할 수 있었다. 새마을 취로사업장에 나가서 돌을 주워 리어카에 담아 버리고 했다. 물론 통장 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서 나이를 2살 더 많게 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학비도 보태고 큰누이도 도와주고 무엇보다 어머님께서 모자란 돈을 동네 사람들에게 빌려서라도 해주셨다.

공부도 공부지만 늘 배고픔에 시달렸고 정말이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쌀밥 한 그릇 먹는 게 소원이었다. 꽁보리밥은 고사하고 매일같이 먹는 경 시기 죽에 늘 배가 고팠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 시설이 전무해 겨울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다락방에서 공부할 때쯤이면 늘 어머니께서 춥다고 발밑에 유담포를 밀어 넣어 주시면 언 발을 녹였다. 그리고 잘 때에도 어머니와 내가 각각 유담포 하나씩 품에 안고 잤는데 잠자고 일어날 도 어머님 유담포가 발아래 놓여 있어, 어머님은 주무시는 동안에도 늘 나를 생각하셨다. 그리고 학비를 못 구해 항상 애로가 많았는데, 한 번은 공납금 납기일을 어겼다고 선생님이 출석부로 내 머리를 후려칠 적엔, 아픔보다 급우들이 지켜보는 상황이 더욱 창피스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거짓말도 한 것도 아니고, 어머님께서 공납금을 못 구해 여기저기서 알만한 데는 다 돌아봤지만 그리 쉽게 돈을 마련하지 못해 자꾸만 늦어진 것인데... 그리고 집에 와서는 일체 어머님께 알리지 않았다. 왜냐면 어머님께서 너무 맘이 아플 것 같기에 그냥 모른 체 했다. 말을 한다는 그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공납금 구하기도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항상 송구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빨리 실습 나가서 돈 벌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었다.

아빠와 막내딸

막둥이가 말했다. “ 아빠! 그래서 지금 죽을 엄청 싫어하는구나~ ” 아빠가 대답을 했다. “ 그래~ 그렇지만, 건강식으로 가끔 먹어도 괜찮아! 우리 막둥이도 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 “ 아빠 껌딱지 지니 깐 당연하지! ”라고 막둥이가 배시시 웃으며 답을 했다. 아빠와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 막둥아! 인생을 즐겨라! 그 어떤 회사라도 시험은 계속 치는 것은 쳐라! 그러나 떨어졌다고 그 회사에 대한 원망이나 아쉬워하지 마라! 그리고 그 회사에 끌려 다니지 말고 휘둘리지 마라! 아빠도 인생을 이제 즐긴다. 글쓰기가 취미고 브런치에 투고하며 계속 작가 신청도 끊임없이 하고 있잖아~”

그러자 막내딸이 말했다.

“ 아빠! 난 아빠처럼 살 거야! 브런치 작가도 해볼 거야! 그리고 아빠와 같이 재미난 이야기도 만들어 보고~ 아빠...”

그래서 딸의 말을 듣고 다시 말했다.

“ 그래~ 무엇이든 간에, 어떤 직업을 택하던지 자기가 좋아서 하고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알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 그것은 가치관이라는 것인데, 착한 마음! 성실하고 정직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주관을 내 마음속에 뿌리로 삼아야 할 것이야! 이것이야 말로 우리 가문의 뿌리고 할머니 때부터 물려받은 가훈이기도 하지! 그러면 막둥아! 우리 할머니 편지를 얘기 해줄게~ ”

잠시 한숨을 길게 쉬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뿌리

“ 할머니가 늘 아빠에게 말씀하셨지! 아무리 집안이 가난해도 정직하게 돈을 벌고 절대 나쁜 짓으로 돈을 벌면 안 된다고 하셨지. 아빠가 찹쌀떡 팔이 소년으로 시작해서 국가공무원 정년퇴직할 때까지 청빈으로 살아왔기에 항상 떳떳하고 너희들에게 자랑스럽고 지금 정말 아빠는 행복하단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불치병으로 아픈 어린이와 배우지 못한 불우 청소년을 위해 작지만, 조금씩이라도 기부하고 있어! 아빠는 성냥팔이 소녀가 우리에게 등불이 되어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왜냐하면, 착하게 살면 꼭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악을 물리치고 최후에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양심이 된다는 거야. 그것은 동심의 세계에서 어른들 세계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까지도 영원하지!”

한참 이야기를 듣던 막내가 아빠에게 동감을 표시하며 아빠에게 질문을 했다. “ 아빠! 아빠의 이야기는 맞아! 그렇지만, 이 세상이 너무 힘들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 사랑하는 막둥아! 어느 시대에서나, 어떤 곳이나 고난과 역경은 있게 마련이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련을 극복해야 돼! 아빠도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성냥팔이 소녀의 동화를 읽고 감동으로 다가와 어느 듯 내 마음속에 등불이 되어 소녀의 고행을 보며 용기를 배웠다. 그래서 착한 마음과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당당히 살아왔고 그런 강한 정신이 어둠 속에 방황할 때, 힘이 되었고 희망으로 피어올랐다.” 숨을 좀 돌리며 다시 이어 나갔다. “ 그리고 세상이 우울하고 내가 힘들고 지치며 가치관이 흔들릴 때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야! 술이던, 음악이던, 위로가 된다면 마시고 떠들고 유쾌하게 웃는 거야! 그리고 기분이 나아지면 그때 좀 쉬어가며 자신을 뒤돌아보고, 에너지도 보충하고 더 멀리! 더 넓게 세상을 보는 거야! 세상이 너를 보게 하지 말고, 네가 세상을 보는 거야! 이게 진짜 세상의 참모습이고 진실이야! 그리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 진실을 보는 눈!

이것이야말로 나의 확고한 가치관이야! 그리고 나의 탄탄한 뿌리가 되는 거야! 뿌리는 토양과 온도, 습도 등 많은 것에 의해 성장도 하지만 가뭄, 홍수, 태풍 등 수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 단단히 땅속에 박히는 거야! 마치, 내가 수많은 경험과 역경을 이겨내고 느낀 감정처럼 그렇게 전해오는 거야! ”

작가 데뷔 꿈

요즈음은 책을 보지 않고 거의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막내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일환으로 사진작가로서 작품을 시작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수시로 아빠도 일러스트 제작하는 것도 배우고 터득했다. 아직은 아마추어지만, 재미있고 관심도가 높았다. 어쨌든 딸도 아빠에게 도움을 주고, 아빠는 더욱더 작가 데뷔를 위해 꾸준히 글쓰기를 계속하였다. 그런데 내 마음이 착한지, 아니면 아직 글쓰기가 미숙한지는 몰라도 첫 번째 독자이자, 비평가인 막내딸에게 검증을 받는데 딸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자주 갸우뚱거린다. 딸은 아빠의 작품은 동화가 차라리 어울린다고 늘 말한다. 그래서 동화이던, 동심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작가라도 괜찮다고 말했다. 어쩌면 동화를, 동화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순수한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작가가 되어 평소 말로 하지 못한 것을 글로써 모든 것을 말하고 싶다. 실제로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해, 사람들에게 핀잔도 많이 받고, 선한 성품으로 남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일찍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일기에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어 놓으니, 속이 후련했다. 이제는 이것이 발전이 되고 책을 읽고 독후감 형식으로 서평도 하고 인용 노트 작성을 하고 있다. 그게 다 막내딸까지 도와주고 있어 힘이 더욱 난다.

소년의 등불

안데르센의 명작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19세기 덴마크 산업화 과정의 사회 현실에 노출된 안타깝고 우울한 추억으로 내게 다가왔지만, 착하고 성실한 소녀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고 역경과 시련을 겪은 나의 소년 시절에 투영시키며, 세상과 내 인생에 더욱 애착을 갖고 투지와 희망이라는 등불로 다가왔다. 그리고 착한 사람은 왜 항상 손해를 보고 세상에 휘둘리며 고통을 받아야 하나 라는 반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고통받는 사회가 진정 올바른 사회인가 라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착한 심성, 성실한 품행 그러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우리가 모두 꿈꾸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하기에 잘 사는 사회, 우리 모두의 희망으로 소년의 등불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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