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여생의 꿈

by 위공

성자는 고씨에게 집 마련이 소원이라고 하며, 집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이야기를 꺼낸다.

성우 역시 평생 꿈이 누이와 함께 살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누이와 함께 어릴 적부터 지내다 보니, 누이가 있는 곳이 고향이고, 누이가 가는 곳에 항상 따라다니는 그런 동생이었다.


고씨는 두 사람의 꿈을 알아차리고는 교외 근교에 근사한 집을 지어주고 맘에 들면 거기서 살라고 했다. 돈은 벌어서 천천히 갚고 일단, 집부터 짓자고 했다.


"형님! 궁금한 게 있어요. 엄청난 부를 축적하시는데, 무엇을 위해 계속 모으시나요?" 성우는 다짜고짜 고씨에게 물었다. 고씨의 부에 비하면 자신의 모습이 초라했고, 지금도 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 엄청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다만, 더 모으고 어느 시점에 누군가에게 기부할 거야!"

"아니? 기부한다고요? 누구에게 요?" 성우는 놀란 듯 물었다.

"사회 약자 및 병자, 그리고 버려진 동물도 살리고 싶어." 고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왜 요즘 매스컴에서 보도된 것 봤잖아! 젊은 사람들이 석궁으로 죄 없는 길고양이와 닭을 쏘아 죽이고, 심지어 자기 애인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칼로 찔러 죽이고, 여하튼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얻고 해결하려 하잖아!"

성우는 지난날 코브라로 쉽게 돈을 많이 벌었고, 또한 순식간에 날려버린 생각이 났다.

"맨날 PC 방에 들여 박혀 게임만 하다 보니, 가상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못하고 빠져드는 거야!"

고씨는 약간 흥분이 된 듯, 톤을 높였다.

"누군가 망쳐 놓으면, 누군가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어?"

성우는 잠자코 듣고 있으면서, 고씨의 논리가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방 블루스! 대박! 등 이런 용어가 유행처럼 번져가는 사회분위기도 문제지."

성우는 도대체 고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집을 짓듯이, 차곡차곡 쌓고 기초공사도 단단히 하고 기다려야지. 안 그래?" 고씨가 갑자기 물었다.

"예! 당연히 그러야죠." 얼떨결에 황급히 대답했다.

"남들이 그런다고 따라 가면,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것이 없어! 진짜배기 내 것 말이야."

"형님! 혹시 결혼은 할 생각이 없는지요?" 성우가 갑자기 물었다.

"하하하! 왜? 홀아비 모습이 측은해?" 고씨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성우 씨가 소개해줘! 그럼 내가 당장 결혼해야지!"

성우는 누이와 고씨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결혼까지 바랬다.

"자~ 결혼도 다 때가 있는 법. 기다리면 될 것이고, 오늘 일은 이 정도로 하고 마칠까?"

고씨와 성우는 집 짓는 일, 농장 일도 다 같이 정리하고, 부산에 돌아가기 위해 서둘렀다.


부산에 도착해서 고씨는 곧장 사무실로 가고, 성우는 누이 가게로 들어섰다.

"누나! 다녀왔어!"

"응~ 어땠어?" 성자는 집을 어떻게 짓는지 궁금했다.

"집안 내부는 계속 내가 수리 중이고, 밖에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이야! 훌륭한 자연 예술작품이야."

성우는 만족스러운지, 계속 호들갑을 떨었다.

"밭이라기에는 정원 같고, 정원이라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뭐랄까?"

"그럼, 큰 농장이야?" 성자가 말을 받았다.

"집 앞 남쪽으로 쭉 펼쳐진 풀밭은 정원이 아니고, 초원의 들판이야!"

"저번에 갔을 때, 그곳이 아냐?"

"응~ 다른 곳이야! 남향집과 초원의 땅은 막힘이 없고 탁 트인 곳이라 가슴이 시원해!"

"그래? 마음에 쏙 들었나 보네."

"주위엔 논과 밭만 있고 멀리 아스라이 야산과 저수지가 있어."

성자는 성우의 말에 가슴이 셀레는 것 같았다.

"누나! 형님과 결혼할 생각은 없어?" 성우가 뜬금없이 물었다.

성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말했다.

"청혼이 들어와야지! 그렇다고 내가 결혼하자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럼, 형님이 청혼하면 하겠다는 말이네?" 성우는 재촉한다.

"그래, 사장님이 하자면 해야지. 안 그래?"

'누나는 적극적인데 반해, 형님은 왜 뜸을 들이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성우는 고씨 사무실에 들러, 고씨가 일 마치기를 기다렸다.

"왜? 성우 씨!" 고씨는 성우에게 물었다.

"형님! 제가 오늘 술 한잔 사겠습니다. 가시죠?"

"일은 성우 씨가 많이 했는데, 내가 사야지!"

"아닙니다. 형님! 오늘은 제가 살게요."

"그래그래, 누가 사던 알았어." 사무실 정리하고 둘은 나왔다.


"성자 씨도 데려올걸, 삼겹살 좋아하잖아?"

"누나는 장사해야죠. 나중에 만두 사가면 좋아해요."

"그래? 그렇긴 하지만...." 좀 아쉬운 듯 말했다.

"형님! 누나가 형님을 엄청 좋아하고 있어요. 아시죠?"

고씨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누나가 빨리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누나가 행복하다면, 저는 무슨 일이던 다 할 수 있어요."

"으음...." 역시, 고개만 끄떡일 뿐이었다.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누나는 저를 공부시키고 장가까지 보냈어요."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나왔다.

"저는 못된 짓만 하고, 누나에게 죄만 지었어요."

"아니야, 누나는 성우 씨 착하다고 동생 자랑만 하던데?"

"누나는 지금 40인데, 더 늦으면 아기 낳기가 힘들 수 있어요."

잠자코 듣고 있던 고씨가 무겁게 얘기를 꺼냈다.

"옛날이야기지만, 첫사랑인 아내와 내 아이를 몽땅 잃어버린 충격으로 인해 한 동안 살아갈 기력이 없었지."

"아~ 그랬군요." 성우는 조용히 고씨의 입만 바라다보았다.

고씨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고는, 이내 소주잔을 비웠다.

"길다면 긴 세월이었지. 20년이 다되어 가니...."

더 이상 물을 수도, 말도 꺼낼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고씨는 한 잔의 술을 비우고 말했다.

"그래, 성자 씨가 내 삶에 변화를 준 것은 틀림없지." 자세를 바로 잡으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성우 씨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다 알아, 나도 성자 씨를 좋아하고...."


성우가 고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잠시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키가 작고 못생긴 짜리 몽땅한 모습이지만, 속은 바다처럼 깊고 넓은 분이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진짜 거인처럼 보였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 초조, 불신, 부정적인 과거로 한 발짝도 전진을 못하는 자신에 비해, 고씨는 자신보다 더 큰 시련을 극복하고 현실에 대한 강한 투지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신 자세가 성우에게 강렬하게 와닿았다.

옛말에 '사람의 마음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고 했지만, 고씨의 일관된 언행과 행동은 성우로 하여금 존경심과 함께, 자신이 여태까지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 있고, 고씨가 사람과 세상을 보는 것은 배울 점이 많았다. 또한 죄의식, 수치심, 열등감으로 과거에 얽매인 나머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자신을 철저히 깨달았다.

'과거 아픔도 후회가 되지 않게, 인생을 꿋꿋이 잘 사는 분이기도 하고, 여하튼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보다는 희망을 펼치는 대인이야, 멋진 분이고....'

성우는 용기와 힘이 되어준 고씨야말로 자연히 우러러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의지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고씨가 일어섰다.

"가자! 성자 씨 가게로 가서 2차 하자고."

고씨가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성우가 재빨리 가로막으며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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