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시즌2: 최후의 전쟁(THE FINAL WAR)

by 이용주

6화: 12시간


12 : 00 : 00

[지오 상태: 육체 사망 / 의식 디지털 격리]

서울 상태: CRITICAL – 전면전 진행 중


ACT: 디지털 감옥 – 0.0초(하이브 내부)


무한한 검은 공간.

지오와 지유는 박진우의 의식으로 만들어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사방이 벽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벽이 아니었다.

박진우 자신이 벽이었다.

수천 개의 데이터 줄기가 마치 쇠창살처럼 그들을 에워쌌다.


“집에 온 걸 환영하네, 한지오 군.”

박진우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8년을 기다렸어. 자네와 지유가 함께 오는 날을.”


지오는 탈출구를 찾으려 했다.

어디에도 없었다.

의식만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는

‘힘’도, ‘속도’도 의미가 없었다.


“오빠... 미안해.”


지유가 속삭였다.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탈출 코드를 만들어뒀는데...

여기 들어오면서 박진우가 이미 무력화시켰어.”


ACT 2: 서울의 전쟁 – 11시간 47분


11시간 47분 남음: 노드 공격 개시


강남 Node 1. 수아는 혼자 달렸다.

쏟아지는 Phase 5 요원들을 피해 건물 지하 서버실로 파고들었다.

총알이 벽을 뚫었다.

그녀는 숨을 참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오, 아직 살아있지?”

대답은 없었다. 연결이 끊겨 있었다.


‘안 돼, 지금 무너지면 안 돼.’


영등포 Node 2. 민지는 서버 코어를 향해 폭발물을 설치하려다

보안 알고리즘에 막혔다.


“이게...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방어 프로그램이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박진우의 의식 조각이 각 노드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노드를 단순히 ‘파괴’하는 게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했다.


동대문 Node 3. 민호는 저항군 50명과 함께 건물을 포위했다.

하지만 내부에서 쏟아지는 Phase 5 요원 만 300명이었다.

“6대 1이야! 뚫을 수 없어!”


강북 Node 4. 레오의 무기가 떨어졌다.

그는 맨손으로 요원의 목을 잡고 키패드에 손을 갖다 댔다.


‘지오야, 너 죽으면 안 돼. 제발!’


송파 Node 5. 세라는 다리에 총을 맞은 상태로 기어서 서버룸을 향해 나아갔다.

“... 멈추면 죽어. 멈추면 죽어.”

자신에게 되뇌며.


ACT 3: 8년의 감정 – 하이브 내부


10시간 30분 남음: 하이브 내부


박진우는 지오와 지유를 향해 말했다.


“자네들, 마지막 12시간을 여기서 보내게 될 거야.

프로토콜 오메가가 완료되면,

1,000만 개의 의식이 이 하이브로 들어오지.

자네들의 감옥이 조금 더 북적해지겠군.”


지오는 감옥의 구조를 분석했다.

데이터의 쇠창살. 순수 정보로 만들어진 벽.

그것을 부수려면 더 강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때 지유가 조용히 말했다.


“오빠... 나, 8년 동안 여기서 뭔가를 했어.”


지오가 돌아봤다.


“박진우가 날 가두고 ‘검정 데이터 추출’을 해왔어.

내 슬픔, 내 외로움, 내 공포를 8년 동안 매일 뽑아갔어.”


지유의 눈이 빛났다.

“그런데 박진우는 몰라.

내가 그 데이터를 되돌려 보내는 방법을 찾았다는 걸.”


ACT 4: 지유의 반격(T- 09:15)

“감정은 정보야, 오빠.

데이터가 쇠창살이라면, 감정은 그걸 녹이는 열이야.”

지유가 손을 펼쳤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8년 치의 데이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슬픔 2,920일분.’

‘외로움 2,920일분.’

‘그리움 2,920일분.’


그리고 그 끝에 남아 있는 것.

박진우가 추출하지 못했던 단 하나.

사랑.


“박진우는 ‘부정적 감정’만 뽑아갔어.

슬픔이 상품이 되니까.

하지만 사랑은... 팔 수가 없었어.

가격을 매길 수 없으니까.”


지유가 그 감정 데이터를 감옥의 창살을 향해 쏘아냈다.

박진우의 목소리에 균열이 생겼다.


“이게... 이게 뭐야? 이런 데이터는 존재할 수 없어!”

지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남은 의식 전부를 지유의 감정 파동에 실었다.


“지유야. 네 덕에 살았어.”


ACT 5: 탈출의 대가(T-08:00)


지오가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디지털 공간 속에서 그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유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오빠, 나는 못 나가.”

“뭐? 왜?”

“8년 동안 너무 많은 데이터를 쏟아냈어.

내 의식이 이미 이 공간의 일부가 됐어.

나가면... 나는 소멸해.”


지오가 지유의 손을 잡았다.

“그럼 둘 다 남는다. 함께...”

“오빠!”


지유가 강하게 손을 뿌리쳤다.

“지금 서울에서 500만 명이 죽어가고 있어.

레오가, 수아가, 민지가, 민우가, 세라가 죽을지도 몰라.

그리고 오빠가 여기 있으면 Node 7을 아무도 못 부수잖아.”


‘오빠가 해야 해. 오빠만 할 수 있어.’


“지유야...”

“나는 8년을 기다렸어. 오빠 목소리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오빠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지유가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기쁨이었다.

“다 됐어. 가. 오빠. Node 7을 부숴줘.”


ACT 6: 동시 타격(T-MINUS 00 : 30 : 00)


지오는 제주 코어를 향해 날아갔다.

서울의 팀원들에게 신호가 전송됐다.

레오가 눈물을 닦았다.


“이 바보가...”


그리고 다시 총을 들었다.

6개의 팀이 동시에 최후의 돌격을 시작했다.


세라가 총에 맞은 다리를 끌며 서버룸 코어에 손을 얹었다.


“지오야. 난 여기까지야.”

그녀는 기폭 장치를 누르기 직전, 한마디를 남겼다.

“잘 부탁해.”


ACT 7: 제주 코어(T-00 : 10 : 00)


지오가 박진우의 핵심 의식과 마주쳤다.

Node 7. 제주 코어.

그것은 거대한 빛의 폭풍이었다.

박진우의 의식 70%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탈출했군. 지유 덕분에. 역시 감정은 통제할 수 없어.”

“그래서 당신이 틀린 거야.”


지오는 주머니를 열었다.

지유가 마지막으로 건네준 것.

8년 치 감정 데이터의 핵심 파일.


“이게 뭐냐고?”

“지유가 당신 모르게 8년 동안 만든 거야.

‘감정 폭탄’.

당신이 추출할 수 없었던 감정들로 만든.”


지오는 주저 없이 눌렀다.


ACT 8: 동시 폭발(T-00 : 00 : 00)


서울 도심의 신경 방송 탑들이 하나씩 꺼졌다.

업로드를 기다리던 시민들의 뇌파 신호가 사라졌다.

Phase 5 요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무기를 내려놓았다.


레오는 서버룸 바닥에 주저앉았다.

“끝났어?”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ACT 9: 지오의 귀환(T- 00 : 15 : 00)


서울. 안전가옥 앞.

레오, 수아, 민지, 민우가 서 있었다.

세라는 구급차 안이었다.


신경 인터페이스 의자에 누워 있던

지오의 심박 모니터가 갑자기 경고음을 울렸다.

삐삐삐... 삐... 삐... 삐...


심박이 돌아왔다.


레오가 달려들었다.

“지오! 야! 야! 눈 떠봐!”


지오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흐린 시야. 아직 현실이 어색했다.

그러나 레오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살아있네.”

“야 이 자식아.”


레오가 지오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수아도, 민지도, 민우도 달려왔다.

다섯 명이 한데 엉켜 한참을 울었다.

그 누구도 부끄럽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이 끝난 새벽에, 그들은 그저 사람이었다.


ACT 10: 7일 후

T+7일: 잠깐의 평화


평화는 조용하게 왔다.

Phase 5 요원들은 의식을 되찾았다.

업로드 센터들은 폐쇄됐다.

박진우의 의식은 87% 파괴되었고,

나머지 13%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오가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유야. 넌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감정으로 나를 살렸어.

사랑이 무기가 되는 세상이라니...

당신은 알고 있었니, 박진우? 감정은 거래할 수 없어.

감정은 느끼는 거야.’


그때 민우가 달려왔다. 얼굴이 하얬다.


“지오, 큰일 났어.”

“... 또?”


민우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서울시청 지하 5층.”

Phase 6는 끝났다. 하지만 박진우의 13%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더 조용하고, 더 치밀하고,

더 위험한 방식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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