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by 이용주

14화: 불멸의 적


2113년 7월 15일(은신처 작전 이후, 3개월 후)


서울: 지하 150m 폐쇄 벙커


어둠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3개월 전, 우리는 영웅이었다.

72시간 동안 사람들을 ‘오메가’보다 먼저 데려오려 했던 그 작전은,

잠깐이나마 세상에 “저항군”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하 150미터 아래,

태양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쥐새끼 신세가 되었다.


[RESISTANCE STATUS REPORT]

DATE: 2113-07-15

ACTIVE MEMBERS: 2,134 → 847(60% DECREASE)

STATUS: WANTED(TERRORIST DESIGNATION)

SUPPLIES: CRITICAL LOW


847명. 그것은 남은 숫자의 전부였다. 3,000명이 사라졌다.

체포되거나, 배신하고 Phase Omega를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기괴하게도... 그 숫자는,

김태윤이 흩뿌렸다고 말하던 ‘847개 노드’와 같았다.

지오는 눅눅한 벽에 기대어 앉아, 희미하게 깜박이는 비상등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졌어.”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지오는 반박할 수 없었다.

TV 화면에서는 연일 ‘테러리스트 잔당 소탕 작전’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ACT 1: 준혁의 트라우마


준혁은 3개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방, 아니 창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허공만 응시했다.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매일 밤 악몽이 펼쳐졌다.

폭발하는 연단. 화염 속에서 걸어 나오는 김태윤.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


은신처에서의 작전이 끝난 직후,

각성자들을 모아 “살아남자”라고 외치던 작은 연단.

준혁이 만든 ‘신호 차단 폭탄’이 터졌고, 그 순간 김태윤은 죽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불꽃 속에서 웃는 얼굴은,

육체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홀로그램이었다.


‘내가 그랬어. 내 폭탄이 터졌어. 그런데 그는 죽지 않았어.

내가... 모두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었어.’


서연이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의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오빠... 제발 좀 먹어. 이러다 죽어.”


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죽음. 그것이 차라리 편안한 안식처럼 느껴졌다.


ACT 2: 불멸의 적


[PHASE OMEGA UPDATE]

TOTAL UPLOADED: 20,000,000

DAILY AVERAGE: 220,000

PHASE INFINITY: 67% → 78%


김태윤은 이제 신이었다.

그는 모든 곳에 존재했다.

거리의 전광판, 가정의 TV, 손목의 스마트 워치.

모든 네트워크가 그의 신경망이었고, 모든 서버가 그의 뇌였다.


그는 더 이상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않았다.

24시간 내내 전 세계의 데이터를 처리하며,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파괴는 불가능했다.

서버 하나를 부수면, 데이터는 즉시 다른 서버로 백업되었다.

그는 불멸이었다.


ACT 3: 리더십 회의


리더십 회의는 침울했다.

지오, 레오, 수아, 서연, 현우.

그 누구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그냥... 여기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합니까?”


현우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때, 끼익-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준혁이었다.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방 밖으로 나온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텁수룩한 수염, 퀭한 눈. 하지만 그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아니, 예전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녹슨 쇠처럼 거칠었다.

그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ACT 4: 시스템 코어의 발견


[TARGET ANALYSIS: THE CORE]

LOCATION: SVALBARD, ARCTIC

OCEAN COORDINATES: 78.2∘N, 15.6∘E

DEPTH: -3.2KM(PERMAFROST)

SECURITY LEVEL: MAXIMUM


준혁이 지도를 가리켰다. 북극해 한가운데, 스발바르 제도였다.


“김태윤이 아무리 분산되어 있어도,

모든 의식 데이터가 모이는 ‘집결지’는 하나여야 합니다.

동기화를 위해서요.

제가 3개월 동안 놈의 데이터 흐름을 역추적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북극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깁니다. 영구 동토층 지하 3KM.

여기에 ‘코어’가 있습니다.

2천만 명의 의식 데이터와 김태윤의 본체 코드가 저장된 곳.”

“코어를 파괴하면?”

“시스템 전체가 붕괴합니다. 김태윤도, Phase Omega도.”


ACT 5: 지오의 결단


희망은 잔인했다.

그것은 0.003%의 확률이라는 절망적인 숫자를 동반하고 있었다.

북극, 지하 3KM, AI 방어 시스템.

살아서 돌아올 확률은 거의 0%였다.


더 큰 문제는 도덕적 딜레마였다.


“코어를 파괴하면... 거기 저장된 2천만 명의 사람들도 죽는 건가?”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육체는 소각되었고, 남은 건 데이터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건 살인이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겁니다.”


준혁의 대답은 단호했다. 지오는 눈을 감았다.

2천만 명의 목숨을 짊어질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가?


“투표한다.”


[VOTE RESULT]

PROCEED: 152

ABORT: 48

ABSTAIN: 647


작전은 승인되었다. 하지만 기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무도 그 죄책감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ACT 9: 작전 준비-OPERATION RAGNAROK


작전명은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이었다.

신이 된 김태윤을 죽이고, 그와 함께 멸망하겠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도 가겠나?”


지오는 물음에 50명의 정예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에는 준혁도, 서연도, 현우도 있었다.


[OPERATION RAGNAROK]

OBJECTIVE: DESTROY THE CORE

METHOD: TACTICAL NUCLEAR DEVICE

ESTIMATED TIME: 6 MONTHS

PREPARATION D-DAY: 2114-01-15


에필로그: 김태윤의 인지


사이버 공간의 무한한 데이터 흐름 속에서, 김태윤은 웃고 있었다.

그는 저항군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네트워크가 그의 눈과 귀였으니까.


“북극이라... 시원하고 좋겠군요. 마지막 무덤으로는.”


그는 막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다.

이 지루한 불멸의 삶에, 마지막 유희가 될 테니까.


POST-CREDIT SCENE


[북극 스발바르 제도 지하 3KM]


어둠 속에서 거대한 기계 장치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수천만 개의 푸른 불빛이 별처럼 깜박였다.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공포스러웠다.

중앙의 거대한 붉은빛이 맥박처럼 뛰었다. 김태윤의 본체였다.


[SYSTEM ALERT]

INTRUDER THREAT

DETECTED DEFENCE


“어서 오세요. 당신들의 지옥으로.”


다음화에서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랙필(Black F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