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인간 군상

by 둘둘

직장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말과 동의어다.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그 성적을 차치하고도 그렇다. 외모나 외양의 다채로움에서부터, 영향력과 구설수, 일에 대한 태도, 정치적 행보, 풍기는 분위기, 동료를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각 개인은 제각기 다르고 갖가지다. 한 명 한 명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정말이지 흥미롭다. 모두가 개성을 뽐내는 가운데, 최근 나의 이목을 끌었던 몇 가지 부류를 언급해보고자 한다.


1. 인플루언서 / J님

그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를 안다는 것은 ‘우리 회사에 J님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의 이름은 조직과 직무를 뛰어 넘어 곧잘 입에 오르내리는데, 그에 관한 정보는 상향평준화 되어 있다. 나의 경우에도 그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많은 걸 알고 있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전 직장은 어디였고, 서울 어디에 살고,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더라-, 수준이다. 직접 들은 적이 없고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른다. 회사 게시판에라도 올라왔던 걸까? 높은 직책자도 아니고 특별히 인기가 있을 법하지도 않은 그를 그저 인플루언서라고 밖에 명명하지 못하겠다.


2. 야망가 / S님

야망이라는 것이 특히 우리 나라에선 뽐내기 어려운 것일진대, S님은 거침이 없다. 회사생활은 한 자리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하는 그의 눈은 빛난다. 바라는 바가 너무나 명확하고 표현하는 태도는 너무나 투명하여 오히려 신뢰가 간다. 호박씨를 깔 것 같지 않다. 작은 조직을 맡고 있는 그는 직위를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또, 야망을 해하는 환경에 자주 분노하고 더 자주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한다. 맡은 업무가 축소되거나 직위가 위태로워질 위기에 처하면, 그리고 그걸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마뜩잖으면, 대표이사에게 라도 돌진한다. 당장의 면구스러움이나 수고로움은 별 것 아니다. 그와 같은 팀이 된다는 건 화력이 센 무기로 무장한 아군을 한 명 얻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목적 지향에 내가 걸림돌이 되면 즉각 적군으로 돌아설 것 같은 불안도 있다.


3. 충성맨 / D님

D님에게 그의 상사 K님은 존경을 넘어 추앙과 헌신의 대상이다. 이토록 확실한 팬을 경험하게 될 줄K님이라고 예상했을까. K님이 슬퍼하면 D님은 울고, K님 신변에 변화가 생기면 D님은 퇴사의 계획을 세운다. 어쩌면 D님의 회사 생활은 회사라는 거대한 사회 속에서 크고 작은 인력과 척력을 경험하는 하나의 원자의 삶이라기 보단, K님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의 삶에 다름아니다. 그는 끊임 없이 K님을 관찰하고, 동의하고, 공감하며, 따라하고, 흡수한다. 때론 맹목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다행인 점은 그의 상사 K님은 내가 봐도 본받을 점이 많은 이라는 점이다. D님에게 양분이 될 것 같기도 하다.


4. 슬픔이 / M님

그는 슬프다. 주눅들어 있고, 목소리가 작고, 자기 탓을 하고, 잘 놀란다. 물론 그에게도 기쁨과 분노와 불안 같은 다양한 감정이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슬픔이 상태이다. 비난이나 비판이라고 볼 수 없는 아주 사소한 피드백에도 의기소침해진다. 몇 번쯤 그가 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힘들어서 였던 적도 있었고, 감동을 받아서 였던 적도 있다. 어쩐지 짠한 그는 대하기에 꽤 어려운 존재다. 슬픈 상태가 디폴트이기 때문에 자연히 위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가 왜 슬픈지 모르므로, 의도했던 위로는 어색한 동정이나 겸연쩍은 조심스러움으로 전락하기 쉽다. 짧게 말할 수 있는 내용에 괜히 쿠션 멘트를 넣다가 핵심이 모호해진다거나, 억지로 유쾌하고 밝은 이야기만 하려다가 대화가 공허해지기도 한다. 회사가 그를 슬픔이로 만든 걸까? 마음 아프다.


5. 개인사업자 / Y님

그는 주어진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 꽤 괜찮은 성과를 내기도 하며 상사의 인정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어쩐지 외롭다. 동료인 내가 하고 있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업무가 다르면 자연히 서로 모르는 구석은 있게 마련이지만, 때론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옆 사람의 업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알 필요가 없다 생각할 수도 있고 뭐가 맞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약간은 섭섭하다. 각자가 자기 사업 영위하기 바쁜 개인사업자가 된 것만 같다.


6. 방송국 / H님

자기 얘기를 노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H님은 그러므로 타인도 자신과 같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만다. 근처에 있던 나는 무심결에 H님과 그가 속한 팀원들의 자가 보유 현황, 자녀계획과 같은 민감한 정보를 들어버렸다. 그들이 H님께 직접 얘기한 건지, 그 혼자 알기를 바라며 얘기한 건지도 알 수 없는 상세한 사생활들. H님이 그러나 차분한 것을 보니, 말하지 않았어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 따윈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비밀이 없다. 빅 마우스라고도 하던가. 그러나 그는 인기가 좋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가십에 예민한 주변 사람들을 그러모은다. 그러므로 그의 방송 행위는 오히려 자꾸만 강화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어떻게 인플루언서, 야망가, 충성맨, 슬픔이, 개인사업자, 방송국이 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도 언젠가 이 중 하나였을 수도 있고 언젠가 이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알지 못한다.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소중하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군상이 사회를 이뤄 회사가 된다. 동료들의 기묘한 개성은 회사 생활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피곤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같은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창의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누군가, 특히 위 사람들 중 하나가 만일 내게 태그를 붙인다면 그건 무엇일까? 팩폭러, 회의주의자, 조용해서 의뭉스러운 사람…. 슬프게도 부정적인 것들만 떠오르는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는 있을까? 각자가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 간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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