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취 직후부터 다음 날까지, 예측 못한 일들이 지속되다
#9. 난자 채취와 후폭풍(1/2) https://brunch.co.kr/@lee22/19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채취를 마치고 안정을 취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이제야 진료다. 16개 채취됐단다. 장하다, 원래 같았으면 1년 반 동안 나올 난자를 한 번에 키우다니. 그런데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결했다가 다음 주기에 이식을 하자고 하신다. 며칠 전 검사한 혈액 재검사 결과, 풍진 항원 항체 수치가 그대로 높게 나왔다. 재감염 혹은 위양성이 아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검사를 할 텐데(그래서 피를 또 뽑아야 하는데) 그 결과가 2주 걸린 단다. 문제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가는 게 좋으니 즉시 이식은 하지 말자고. 다 확인하고 하자고. 예상 못한 시나리오여서 당혹스러웠다.
채취 후 동결이식으로 진행하게 되면 과정은 이렇다. 채취한 난자는 당일~익일 사이 정자와 수정시킨다. (일부 난자는 하루 지나며 조금 더 성숙해져 다음 날 수정될 수도 있다.) 수정 결과는 전화로 알려준다. ('00개 수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정란을 키운다. 최소 3일에서 5일간 배양한다. 3일배아 또는 5일배아가 되면 냉동한다. 수정과 배양 과정을 모두 견딘 배아만 동결할 수 있기 때문에 동결한 배아의 상태와 개수는 일주일 쯤 지나야 할 수 있다. 이식 시점이 되면 배아를 해동해 자궁 안으로 넣는다.
나는 일단 생리가 터질 때까지 할 일이 없다. (악 생리를 또 해야 하다니!!) 다음 생리일부터 또 약 먹고 준비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과배란은 하지 않기에 먹는 약으로 진행될 거다. 착상이 잘 되게끔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하는 약을 먹으며 준비한 뒤, 배란기가 지나 적절한 시점(배란된 난자가 수정됐다면 3일 또는 5일이 지났을 시점)에 동결해뒀던 배아를 이식한다. 즉, 다음 주기에는 먹는 약과 상황에 따라 주사 등 추가 처방, 그리고 이식 과정이 있다. 이식까지 한 번에 했을 경우 임신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예상 시점까지 달력에 써 두었던 나로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리 힘들게 채취한 난자를 수정-배양하면서도 일부 소실하게 될 텐데, 동결-해동하면서 잃는 애들까지 생기면 아까워서 어쩌나. 이번 달은 수정-착상을 시도조차 못 해보다니 시간이 아까워서 어쩌나.
진료와 채혈을 마친 후(양쪽 팔이 다 푸르딩딩), 상담실에서 설명을 들었다. 사람마다 너무나 결과가 천차만별이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보통 채취한 난자 중 70% 정도가 수정이 되고, 3일 배양은 거기서 또 70%정도, 5일 배양까지 하게 되면 거기서 50%언더로 내려간단다. 즉, 3일배양까지 하면 0.7*0.7=0.49니 대략 절반 쯤이 남고, 5일배양을 하면 대략 30%가 남는 것. 난자와 정자의 질(Quality) 문제가 많이 작용한단다.
실망스러웠지만 우리는 한 달의 놀 기간을 벌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사도 없고 이식 후 안정기도 없고 절대 임신도 아닐 한 달 간, 여행도 가고 목욕탕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자.(목욕탕은 근데 감염 위험 때문에 사실상 당분간 불가) 당장 주말에 바다를 보고 오기로 했다. 이식과 안정을 위해 회사에 내 두었던 휴가들을 일부 취소했다.
[채취 후 주의사항]에 써있던 ‘고열, 오심’. 그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뜻밖의 찰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채취 후 회복실에 누워 있다 불현듯 맞은 엉덩이 주사다.
병원에 갈 때는 배가 고팠는데, 막상 나올 때에는 입맛이 없었다. (수면마취라 금식하고 가야 했다.) 그래도 나잘알 남편은 집에 가자는 나를 초밥집으로 데려갔다. 초밥을 먹자 기운이 났다. (맛있었다.) 실망했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집에 와서 낮잠을 아주 한참이나 잤다. 자다 깼는데 맑던 창 밖에 갑자기 미친듯이 비와 우박이 섞여 내렸다.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샐쭉했다. 방금 내가 겪은 게 꿈인 건가.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을 보니 꿈은 아녔다. 날씨마저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배나 허리가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난소 과배란 증후군은 다행히도 없는 것 같았다. 혹시 몰라 이온음료를 500ml정도 마시긴 했다.(과배란으로 복수가 차는 경우 이온음료가 복수를 빼는 데 도움이 된다) 재채기를 하거나 배에 힘이 들어갈라 치면 조금 불편하긴 했다. 출혈도 조금씩 계속 됐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잘 쉬어준다면 내일이면 괜찮겠다, 싶은 정도였다. 그런데 어쩐지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주사 맞은 부위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밤에는 맞은 쪽 다리의 허벅지와 종아리 전체가 저리듯 아팠다. 전반적인 컨디션 탓이겠거니 하고 일찍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이 떠진 건 몸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몸이 뜨거웠다. 엉덩이는 불에 덴 듯 아프고 도무지 만질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여전히 다리도 저렸다. 열을 재니 37.7도. 이게 무슨 일이지. 과배란 증후군? 감기? 다시 유행한다는 코로나? 수술 중 감염? 아니면 진짜 풍진???
채취 전후 처방 받아둔 항생제 아침분을 먹자 구역감까지 올라왔다. 간단히 아침도 챙겨 먹었는데. 위산이 넘어오는 듯하고 속은 울렁거렸다. 전화가 울렸다. 수정은 9개 성공. 평균에 못 미치는 저조한 실적에 마음까지 울렁거렸다. (그렇다. 수정만으로 이미 56%였다. 보통 정도로 70%를 생각했건만.) 점심을 지나고 오후가 될 수록 열은 계속 올라 38.3도에 달했다. 죽을 시켜 먹자 토할 것 같은 건 가라앉았지만 열과 두통, 그리고 엉덩이 통증은 심해만 졌다. 엉덩이가 아파 화장실을 갈 때도 다리를 절고 다녔다. 앉아도 아프고 걸어도 아프니 주사를 맞지 않은 쪽으로 조심스레 누워 있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잠도 안왔다.
병원에 연락했다. 이게 무슨 주사인가요. 타이유 주사입니다. 2-3일 정도 아플 수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처럼 너무 아픕니다. 뭉치면 더 아프니 찜질하고 풀어줘야 합니다. 타이유주사 폭풍 검색. 욕만 없지 온갖 악평이 쏟아진다. 세상에, 이렇게 아픈 주사를 그렇게도 아무렇지 않게 맞게 하다니. 설명도 없이. 게다가 이식 전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하기 위해 맞는 주사라는데?! 병원에 다시 물었다. 저는 이번에 동결인데 왜 맞았나요. (너무 아파 화가 나 있었음) 채취 시점에 미정인 상태였어서 맞았습니다. 이번 주기 호르몬에 지장을 주는 주사는 아니에요. 맞지 않아도 됐을 주사를 맞고 이렇게 아파야 하다니. (마음 속 험한 말)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열은 아마 주사 부작용 때문이었을 것 같다.
앓으며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 날부터 일부러 나가서 걸었다. 절뚝거리던 게 줄어들고 걷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엉덩이 통증도 감소했고 열도 덩달아 내렸다. 몸의 신호였던 것 같다. 과배란의 피로도, 채취의 공포도, 동결의 충격도, 새로운 주사의 아픔도, 그간 몸이 감내해야 했던 부담을 이런 방법으로라도 며칠 푹 쉬고 갈 수 있게. 그러고 나선 힘을 내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난자 채취가 예정돼 있다면 어떤 일이 이어질지 모른다. 넉넉하게 쉬는 시간을 준비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