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시험관 시작 전 해두면 좋은 것들

시작한 뒤엔 못해서 아쉬우니깐

by 둘둘

시험관을 시작하려는 이가 있다면, 미리 해 두면 좋은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주로 몸과 관련한 것들.


먼저, 부부 모두의 건강 관리는 필수다. 시험관을 시작하면 먼저 과배란을 해 난자를 채취하고 정자와 수정을 시켜 배아를 만들어두게 된다. 여러 개의 난자가 채취되고 배아가 여럿 만들어진다면, 이번에 배양된 배아들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부부 모두가 과배란 기간 이전부터 건강을 챙겨야 한다.


술과 담배를 멀리 하는 건 기본이다. 엽산과 오메가3 등의 영양제를 부부가 같이 챙긴다. 필요에 따라 코큐텐이나 비타민D등도 섭취하는데, 적절한 영양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혈액검사를 포함한 산전검사를 해두자. 운동도 필수다. 혹여 임신을 하게 된다면 신경쓰기 어려울 살도 빼둘 겸 육아를 위한 체력도 만들 겸이다. (물론 운동은 마음에도 최고 좋다.) 임신 초기에 걸리면 안되는 풍진(그놈의 풍진! https://brunch.co.kr/@lee22/18)과 A형간염 항체가 있는지 검사를 미리 해두고, 없다면 예방접종을 맞아두는 것도 좋겠다.


시험관은 시작하면 장기전이다. 한 번에 성공하더라도 바로 임신 기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최소 1년간은 이런 저런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고로, 향후 1년 이내에 하려 했거나 하고 싶을 것 같은 활동들을 미리 해두면 좋다.


1) 건강검진이다. 엑스레이나 내시경 등 임산부가 할 수 없는 항목들이 있다. 이식 후 임신 가능성이 있는 (결과를 알 수 없는) 기간에도 이러한 것들은 금지다. 그러므로 건강검진 비용을 아깝게 날리고 싶지 않다면, 과정이 시작하기 전에 해두면 좋다. 2) 치과 치료다. 미루고 있던 충치치료, 신경치료, 스케일링을 미리 해두자. 일부 치과 진단과 치료는 곧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3) 레이저, 보톡스 등 피부과 시술을 정기적으로 받는다면? 이 또한 미리 해두는 게 좋겠다. 검진, 치료와 시술까지 했다면? 4) 미용실에 가자. 파마나 염색은 임신 초기에는 권장되지 않는 데다, 배아가 착상하는 데 강한 향이 해롭기 때문에 배아 이식 무렵에는 향이 많이 나는 곳을 자연히 피하게 된다. 뿌리염색이나 파마는 미리 해두는 게 좋다. 5) 혹시 날음식을 좋아한다면 구충제도 미리 복용해두는 게 좋겠다. 임신기간엔 절대 먹어선 안되기에 이식하기 전에 먹는다. 6) 목욕을 좋아한다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므로 탕목욕을 해 두는 것도 추천. 나의 경우 괜히 생각날 때가 있었다.


실용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엔 감성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시험관을 시작하면 나의 일상이 주사와 약 복용 시간에 맞춰 돌아가게 된다. 가족 혹은 친구와 여행을 가거나 식사 시간에 약속을 잡는 것도 이전처럼 쉽지 않다. 시험관을 결심하면서 마음이 복잡할 수 있겠지만, 여행이나 모임의 기회가 생긴다면 참석할 것을 적극 권한다. 당분간 조금 외로울 수도 있는데, 즐거운 추억들을 미리 만들어두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외롭기만 할까. 터놓을 데는 없어 답답하고, 약과 상황으로 인해 감정 기복은 심해지고, 살은 자꾸 찐다. (3kg 쪘는데 꾸준히 우상향이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는 의지, 는 준비하기 어렵겠지만, 여러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다는 , 정도는 갖고 있기로 한다. 나의 경우 배우자에 대한 무한 신뢰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함께 상의하고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과 유대가, 여러 상황에서도 멘탈을 붙잡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이 가진 걱정과 불안을 배우자와 함께 나누기 시작하자.




1차 이식이 비임신으로 종료되자, 다음 이식까지 약 3주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첫 날은 울었지만 다음 날부턴 기운을 냈다. 막상 시험관을 시작하니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이 기간 동안 몇 가지라도 하기로 했다.


몇 달 뒤로 잡아뒀던 건강검진 일정을 옮겼다. 엑스레이와 위내시경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했다. 구강검진에서 치료가 필요한 치아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치료까지 마쳐 버렸다. 건강검진에서 문득, 내가 조금은 강인해졌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내시경을 비수면으로 한다. 수면마취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어서다. 벌써 대여섯 번은 했으려나. 아주 조금씩은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매번 용트름을 내뱉으며 고통스럽게 했던게 비수면 내시경이었다. (내시경이 들어가는게 역하기도 하고, 위 내부를 잘 관찰하기 위해 기구 끝에서 바람을 내뿜다보니 자꾸 배에 바람이 차서 구역질같은 트름을 하게 된다.) 근데 이번에는 긴장도 하나도 안했고, 내시경이 들어갈 때와 나갈 때 한두번 정도 구역질을 한 것 외에는 정말로 고요-하게 진행했다. 코로 들숨, 입으로 날숨을 깊게. 옆으로 눈물은 줄줄 흘렀지만 (이건 어떻게 조절이 안된다.) 의사선생님 말대로 '잘 하고 있'는게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다. 과배란, 이식, 배주사,.. 시험관을 하며 멘탈과 심호흡법이 조금은 강해진 걸까.


또, 구충제를 복용했다. 구충제는 임신 기간엔, 특히 임신 초기에는 절대 먹으면 안되는 약이다. 날 음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몇 년 간 먹지 않았었던 게 괜히 갑자기 생각났따. 맘카페 등에서 검색해보니 복용 후 1개월 동안은 임신을 삼가라는 내용 등이 눈에 띄어 망설였다. 그러나 주치의 선생님께 문의하니 이식 전에는 무방하단다. 검색 결과로 봤던 내용은 기억에서 깨끗이 삭제되었다. 그만큼 주치의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더 다져진 것을 느꼈다. 시험관은 많은 처방과 진료가 수반되며, 개인의 상황과 이력을 잘 알고 있는 담당 의사와의 합이 정말 중요하다. 담당 의료진을 신뢰하지 않으면 매사 의심하게 되고, 불안은 더욱 증폭될 테다. 더 신뢰하는 마음으로, 다음 주기를 도전할 준비가 됐다.


IMG_8494.jpeg 가벼운 여행으로 잠시 보고왔던 바닷가 기억이 위로를 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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