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96세의 어머니께서는 몇 년 전부터 가장 사랑하는 큰아들 가족과 함께 지내고 계십니다. 평생 바라왔던 큰아들과의 합가, 오랜 바람이 이루어진 만큼 행복하실까요. 어머니는 유독 아들 선호 사상이 강하셨고, 큰아들에게 기대고 싶은 믿음이 컸던 분이셨습니다.
여러 자식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늘 큰아들에게 먼저 향하셨고, 다른 자식들의 마음은 자연스레 그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딸 역시 자식이라 말씀하셨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난 아들이 셋이나 있다"라며 아들과 살아야 한다는 자부심과 자존심을 내세우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내외와 상의 없이 모든 짐을 정리하고 큰아들 집으로 떠나셨던 날, 따님은 하염없이 목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가슴 한쪽이 내려앉고, 배신감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서운함이 컸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셨습니다. 아들들의 도시락에는 하얀 쌀밥에 달걀을 얹어 주셨고, 딸의 도시락에는 "출가할 사람이니까"라며 보리밥만 담아주셨습니다. 아들과 딸을 향한 사랑의 크기가 다르셨던 어머니, 그러나 따님의 극진한 사랑을 잊은 것은 아니었겠지요. 다만, 잊은 척하셨을 뿐.
원하던 대로 큰아들과 함께 살게 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되셨던 걸까요.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평생 따로 살아왔고, 기대했던 이상과 다른 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소신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힘없는 목소리는 따님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말없이 전하고 있었습니다. "너 집에 있니? 나...가도 되겠냐?" 하지만 따님은 단호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원하신 선택이었고,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효자 아들과 며느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셨습니다. 나이 들어 아들 집에서 도움 없이 살아간다는 것, 폐를 끼친다는 부담이 컸던 것이겠지요.
파란만장한 세월을 견뎌오신 어머니.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난한 집안의 첫째 딸로, 18살 어린 나이에 부잣집의 둘째 며느리로 시집을 가셨습니다. 층층 시어른이 있는 대가족 속에서 며느리로 살며, 생계를 책임지며, 아들딸 6남매를 낳고 키우셨습니다. 딸 둘은 홍역으로 잃었고, 남은 네 자녀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셨습니다.
살림이 기울고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신을 챙긴 적이 없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삼시 세끼를 건너뛰며, 보릿고개를 풀죽으로 견디셨습니다. 생선을 보며 비린내를 싫다고 밀어내고, 고기를 먹지 못해 비위가 맞지 않는다며 된장과 고추를 찍어 상추쌈을 드시는 어머니. 평생을 그렇게 견뎌내셨습니다.
된장국과 청국장이 물리도록 드셨을지언정, 그 모든 음식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층층 시어른 아래서,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 이제는 주름이 깊어진 할미꽃이 되어 계십니다.
"난 친정 부모 사랑도 못 받고, 남편 사랑도 못 받고, 자식 사랑도 없이 산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대체 무엇을 바라며 살아오셨을까요? 그토록 사랑했던 큰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계시지만, 여전히 부족한 무언가가 마음 한구석을 채우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살면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참아내며, 늘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먹고 싶어도 괜찮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우리는 얼마나 무심했던 걸까요.
어머니께서는 알갱이는 자식들에게 건네고, 껍질만 남은 채 살아오셨습니다. 이제 그 남은 여정이 애달프도록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원하셨던 큰아들과의 삶이,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모자란 사랑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셨던 어머니. 그 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남은 시간 동안, 당신이 주셨던 사랑만큼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자식들도 영원히 어머니를 기억하며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