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흐르는 시간
푸르름이 가득 펼쳐진 어느 여름날 오후, 거실에 모여 어르신들만의 추억 속 여행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마침, 찐고구마와 시원한 식혜가 간식으로 전해졌다. 그 옛날 질리도록 드셨을 법한 음식인데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신다.
한 방에 여럿이 생활하시던 어르신 중, 늘 똑같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이 계셨다. 이날도 고구마 크기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유독 남의 고구마가 더 커 보이신 것 같다. 항상 그렇게 생각하신다.
똑같이 맞춰 드려도, 마치 매번 치르는 행사처럼 시끌벅적하게 소란스러운 시간이 한 차례 지나간다. 당신 것과 색깔, 크기, 위치, 움직임까지 다른 사람과는 달라선 안 된다.
젊은 시절 손해 보고 서운했던 기억들이 마음에 남아 계신 걸까? 먹는 것에 유독 애착도 많으셨다. 단기 기억 치매로 금세 잊어버리시지만, 당신 생각대로 우기실 땐 대책이 없다.
황당한 상황을 수시로 겪게 되지만, 집중을 다른 데로 돌리면 아기 달래듯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끌벅적하다.
일희일비 (一喜一悲) 한 번은 기뻐하고 한 번은 슬퍼한다
일소일노 (一笑一怒) 한 번 웃고 한 번 화낸다
모든 소동은 이 방의 어르신들 사이에선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각자 의견을 내시고 고집도 부리시지만 결론은 항상 해피엔딩, 잠시 후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온이 찾아온다.
그러다 다시, 툭하면 시끄럽게 투덕투 소리가 울려 퍼지는 90세 유치원 ‘병아리 반’. 서로의 체온과 온기를 나누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신다.
침상에 계실 땐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시고, 밖에 나오시면 다시 침상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시는 불안 장애가 있는 어르신.
수업 중 집중이 흐트러져 나가셨다가 금세 다시 돌아오시곤 묻는다.
“왜 나만 이 방에 혼자 있어요?” 옆에 계신 분을 애타게 찾으신다.
치매로 인해 상황은 늘 달라지고, 서로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눈만 뜨면 같이 먹고, 같이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한 몸이 된 듯.
“선생님, 이리 와봐요. 나 이거 없어요.”
앞치마 무늬가 다르다고, 자기 것인데 저 사람이 가져갔다며 칭얼대신다. 당신 것이 아님에도,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남이 사용하면 당장 내놓으라며 애걸복걸, 떼쟁이가 되신다. 소유욕이 유독 강한 천진한 5~6세 아이처럼, 모든 사물과 행동에 관심이 넘치시는 어르신. 녹음이 짙게 우거진 여름이건만,
어르신의 시간은 가을 풍경 속에 멈춰 있다. 90세 병아리 반은 늘 시끌벅적, 조용할 날 없이 바쁘다. 살아온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심술꾸러기, 장난꾸러기, 떼쟁이가 되신 거꾸로 흐르는 세상 속 어르신들.
바라는 건 단 하나, 지금처럼 옥신각신 다투시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