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기다리며
이북 황해도,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신 어르신. 6.25 전쟁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북녘에 남겨둔 채 홀로 남한으로 내려와, 낯선 타지에서 당신만의 가정을 일구고 묵묵히 살아오셨다.
당신은 늘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 계신 줄만 알았던 부모님께 전상서를 쓰고, 형제들 얼굴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그리움을 견뎌내셨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나신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희미해져만 가는 고향의 모습에, 삶의 회한을 조용히 토해내신다.
“죽기 전에, 형제들 목소리라도 들어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그 말씀이 얼마나 간절하신지 안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계신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는 걸. 그래서인지 더 애달프고, 더 먹먹하다.
이야기를 듣는 나조차도, 그 시절을 살아온 대한민국 1세대 모두가 이 아픔에 공감할 것 같았다. 그 세대가 가슴속에 품고 살아온 상처, 그리고 한(恨).
당신은 오직 남편, 가족, 자식만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덮고 살아오셨다. 세월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을, 형제들과 웃던 골목을, 다시 떠올리신다.
어르신의 세대는 고향을 등에 지고, 한 세기를 견뎌낸 격동기의 산증인이었다.
현실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은 없을지라도,
다음 생에는 생이별 없는 따뜻한 상봉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빈다.
몇십 년을 타향에서 숨 한번 고르지 못하고 달려오셨다 들었다. 자식들을 먹이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늘 앞만 보고 살아오셨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할미꽃처럼 잔잔한 주름이 생기고 몸 이곳저곳엔 세월의 흔적들이 남았다.
이제는 신장까지 망가져,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위해 병원을 찾으신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모습에서는 여전히 총명함이 묻어난다. 똑 부러지는 말투, 단정한 성품. 당신은 좋은 어머니셨고, 훌륭한 아내셨다.
외롭지 않기 위해 많은 자녀를 두셨고, 지금은 그 자녀들에게 따뜻한 효도를 받으며 지내신다. 그러나 그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이북 고향의 봄’이 깊게 박혀 있다. 그 봄날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기에, 그 애달픈 기다림은 다음 생을 기약하게 된다.
강인하고 씩씩했던 당신.
지금은 아픈 몸도, 마음도 다시 일으켜
언젠가 들려올 고향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계신다.
가까우면서도 결코 손이 닿을 수 없는 이별. 그 오랜 아픔을 껴안고 살아오신 또 다른 이산가족. 망향의 동산 앞에 엎드려 통일을 위해 기도해 오셨다.
그 염원이 조금만 더 빨리 다가와, 당신의 오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황해도에서 오신 어르신. 이 힘겨운 세상을 ‘소풍’이라 부르시며 살아오셨던 그 시간. 이제 소풍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온다면,
그때만큼은, 당신의 영혼이라도 고향집 마당에 내려앉아 꽃구경 하시고 바람 한번 맞으시기를 바란다.
그날이 올 때까지,
부디 힘내시고,
조금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