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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 달님

부부의 순애보

by 이미숙

13.


부부는 함께 살다 보면 닮아간다고 하지요. 이 어르신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두 분은 마치 마음과 행동까지 꼭 닮은 듯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작은 체구에서 풍기는 날카로운 카리스마, 오랜 공직 생활로 다져진 근검절약의 생활 습관은 남자 어르신의 삶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침상 이불 속에는 쓰다 남은 일회용품부터, 심지어 화장실 사용 후 휴지까지 버리지 못하고 고이 모아두십니다. 자리를 비우실 때마다 몰래 수거해야 하는 수고가 따라붙지만, 자식들 돈 쓰는 게 아까워 드시고 싶은 것도 사양하시는 그 마음은 왠지 짠하게 다가옵니다.


다른 어르신 간식에 체면을 내려놓고 숟가락을 조심스레 들이시는 모습도 그렇지요. 말려보아도 소용없습니다. 내 것을 사치라 여기고, 모든 것을 아껴야 한다는 습관이 온몸에 배어 있으신 분이시니까요.


두 분은 서로를 부르는 호칭부터 남다릅니다. 남자 어르신은 아내를 "엄마" 혹은 "어머니"라고 부르시고, 아내는 남편을 "이보시게" 또는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이유를 여쭈었더니, 여성의 몸에서 남자가 나왔으니, 아내를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는 황당하면서도 진지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오래도록 그렇게 불러오신 듯, 장난기보다는 진심이 담긴 존경의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항상 다정히 마주 앉아 담소 나누시다가도 금세 투덕투덕 다투기도 합니다. 아내 어르신은 그간 쌓아둔 서운함을 잔소리로 풀어내시고, 남편 어르신은 묵묵히 등을 돌린 채 ‘자는 척’으로 대응하시며 아무 말씀 없습니다. 결국 승자 없는 작은 전쟁은 그렇게 끝납니다.


치아가 없으셔서 죽과 반찬을 오래도록 꼭꼭 씹으며 끝까지 드시는 모습은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로 침상에 머무르시려는 어르신께 말벗이 되어드리거나 움직임을 유도하려 해도, 특히 기저귀 케어를 도와드릴 땐 눈을 부릅뜨시며 "니들 뭐하는 짓이냐!"며 제지하십니다. 치매로 인해 가끔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예민하게 반응하시지만, 그 기억도 금세 잊으십니다.


하지만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외출하거나 병원에 다녀오시면 남은 분은 곧잘 불안해하며 찾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요.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분은, 노년의 삶을 함께 지탱해 주는 좋은 벗이자 동반자이십니다.


오랜 세월 주고받은 미운 정 고운 정, 함께한 삶의 무게 속에서 쌓인 연민일까요. 때로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서로를 꼭 안아주는 모습이 참 애틋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네 평범한 어머님, 아버님들의 현실적인 순애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오신 두 분이, 깊어가는 밤 따뜻한 온돌방처럼 오래도록 손 꼭 잡고 아름다운 백년해로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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