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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소망 채집가와 유모차 대 유아차

왜구구단은

by 복습자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8835906

근래에 유모차는 어르신들이 보행기 대신에 사용하시기도 하고, 애견인들도 끌며, 아빠엄마 구분 없이 몬다. 그래도 언어는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다음은 김필영 작가의 평범하게 비범한 철학 에세이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을 설명한 부분이다.


<아를의 침실>이라는 세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침실에는 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파란색 벽에 다섯 개의 사각형 액자가 걸려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의자가 있고, 창문이 하나 있다."

그런데 고흐의 이 그림이 위 문장으로 다 설명된 것 같나요? 아니죠?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를의 침실>그림이 가진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은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언어 이상의 것, 생각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핵심 주장 두 개는 이것입니다. "언어와 세계는 일대일 대응한다. 그리고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나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언어와 생각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곧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흐의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 같은 것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언어의 세계, 생각의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소유라는 표상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를 한때만 대변했던 사람과 여전히 이 단어에 잘 어울리는 사람을 각각 그려봤다. 참 단순한 생각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망 채집가 문장을 옮겨본다


"당신이 바로 그 '상징'인가요?" 상징. 분명 내게는 그런 이름도 있었다. (중략) "어차피 당신들은 상징이 아니어도 경험하게 될 텐데." (중략) 그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볼지 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진짜 나의 얼굴은 나를 예언했던 사람들이나 나를 전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이 바로 나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와아~! 작가는 작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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