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있고 싶은데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은데, 더 이상 이런 마음이 불거지면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할 때도 있다. 함께 있고 싶다기보다 함께 있지 않으면 더는 함께 있을 수 없을 듯한 느낌. 함께 있으면서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연인들처럼 들러붙어 있지 않으면 내 마음을 잃어버릴 것 같다.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지 않게 해 줘, 하고 생각한다. 절실하게. (중략 / 이 부분은 마치 어쿠스틱콜라보의 "묘해, 너와"같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 올린 풍경에. 나는 남편과 함께 본 도치기의 별밤과 나가노의 고추냉이밭만큼이나 내가 보아온 풍경과 남편이 보아온 풍경을 사랑한다. -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풍경 중에서 -
그런데 위 두 문단 사이엔 이런 내용이 있다.
신나게 부부 싸움을 하면서 화가 나서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지르다가 혼자서 황량한 장소로 나가 버리는 일이 있다. 끝났다, 고 생각한다. 나갈 때다. 나갈 때다. 아무튼 가야 한다, 아무튼. 현관을 가로막고 선 남편이 말한다. "일시적인 변덕으로 그런 짓 하면 안 되지."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고답적이며 어리석은 울림에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이게 일시적인 변덕이라면 결혼은 항구적인 변덕이겠지." 내가 그렇게 말하면, 남편은 잠시 생각하고서, "그렇지 않아."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절망에 찬 남편의 눈은 당신 말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남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온몸에서 한꺼번에 힘이 빠진다.
이 부분은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에 나오는 다음 문장과 결이 같다.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 (중략) 나는 변화가 완수된 듯 보여도 그것이 지속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울하게 곱씹었다.
만추는 늦가을이다. 한 번의 봄 여름 가을선에서는 만추를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고, 다시 봄 여름 가을에 이르러야 만추를 안다. 앞의 남편도 알고 있는 것, 뒤의 나가 우울하게 곱씹은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