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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공무원은 여기서부터 꼬였습니다

삼프로tv 출연 노한동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by 복습자

먼저 제목에 영감을 준 유튜브 언더스탠딩 채널의 "삼성전자 여기서부터 꼬였습니다"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왜 삼성은 SK처럼 HBM을 양산하지 못하죠?"란 질문이 시청자도 사회자도 가장 궁금한 점이다.

내가 이해한 출연자의 답은 이렇다. '반도체 생산과 가까운 순서대로 필요한 연구를 나열하면, 양산 - 공정 - 선행이다. 이 사이에 관계가 곱하기로 이어져 있다고 보는데, 과거 삼성은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단 이유로 HBM 개발 같은 선행연구를 등한시했다. 눈앞에 이익을 위해 늘 해오던 메모리 반도체 관련 공정과 양산 연구에 몰두했다.'


지자체 공무원 조직이 딱 저런 결정을 할 때 삼성의 모습이다. 지자체장도 눈앞에 이익 - 재선에 도움이 되는 가시적이고 당장에 주민 체감이 높은 사업(민원) - 에 많은 신경을 쓴다.

그들은 기업의 선행 연구 또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스템 2와 같은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는 사업(민원)엔 관심이 적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가 뻔한 사업을 추진하고, 유사한 축제를 개최한다.


우리나라 재벌은 총수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그 자리에 머문다. 지자체장은 4년 동안만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3선에 성공한다면 총 12년도 가능은 하다. 재벌 밑에 각 계열사 사장이 회사를 이끄는 기간도 지자체장과 비슷하다.

큰 규모의 회사 조직에서 기획, 총무, 감사, 회계부서는 안티프래질 하다. 이중 앞의 기획, 총무 부서는 기업이든 공무원 조직이든 장을 중심에 두고 인의 장막을 펼치기 쉽다. 두 부서는 인수위에도 관여하고, 장의 취임 이후에도 기획력(취합력)과 인사라는 키로 장의 가장 가까이에 존재한다.

이 시기에 이뤄지는 보고 역시 위에서 말했듯이 시스템 2의 원리에 입각한 - SK가 꾸준히 선행 연구에 투자한 사례와 같은 - 보고 보단 단박 듣기 좋은 시스템 1의 원리가 적용되는 보고가 지자체장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초선 지자체장은 재선의 꿈을 꾼다. 미리 준비해야 하니까 최대 3년 안에 주민들 눈에 확 띄는 성과가 필요하다. 지자체장 밑에 간부 공무원들도 이 기간 안에 승진을 해야만 한다. 이들도 단기적·외향적 성과에 열을 올린다.

최종 결재권자에게 가는 모든 보고가 이런 논리에 맞춰 작성된다. 결론이 정해진 보고서로. 뻥튀기가 되는지, 도출될 해결책이 적당히 - 해결 가능한만큼 - 어려운지 등 좋은 결론 도움이 되는 내용만 보고서에 담긴다.

결국 이런 보고서만 위로 올라가므로 우리 부서에서 만든 보고서가 결재권자 눈에 들려면 보고서의 형식과 편집(디자인)의 세세한 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보고서 초안 검토를 받으면 상급자는 이런 식의 지시를 한다. 문제점은 부각하지 말며, 더 파지도 마라. (엄청난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여기 "줄고 있음"은 "감소"로 고치고, 여기 글자 크기는 "중고딕 12포인트"로 해라. 노한동 작가가 말하는 보고서의 평탄화*고, 가짜 노동이다.

*보고서는 복잡한 현실을 간결하게 요약함으로써 의도적인 평탄화를 강요받고 있다.


닭 한 마리와 부재료가 들어간 찜닭 같은 요리는 못하게 하니 맛있게 훈연한 계륵 요리만 가득하다. 연차는 늘어가고 공무원으로서 자기 효능감은 줄어만 간다.


J군 의회를 연결하는 통로에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구호가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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