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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박태원 완역)를 읽고

이야기의 힘

by 복습자

소설의 재미를 표현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하이먼-민스키 모델"에 <삼국지>를 대입해 본다. 가장 높은 꼭짓점은 "적벽대전"이다. 이후 한번 더 이만큼 재미있는 부분은 '제갈량과 사마의의 지략 대결'이다. 이다음 천하통일이 사마씨로 마무리되는 것을 알기에 사마의의 처세에도 흥미가 인다(사마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들 -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결국 이기는 사마의> - 도 있다 / 이 같은 연유인지 도서관에서 빌린 삼국지 9권과 10권은 앞에 권들보다 깨끗했다).


황석영 완역 <삼국지>의 마지막화(120화) 제목은 "삼분천하는 한바탕 꿈으로"이고, 이문열 평역 <삼국지> "나뉜 것은 다시 하나로"이다. 황건적이 대대적으로 봉기한 해(184년)부터 오의 멸망(280)까지 약 100년 간 수많은 영웅과 인재의 삶이 저 두 마디는다.


10대 때 읽은 <삼국지> 감상 중 가장 큰 울림은 조조의 죽음 뒤에 어렴풋이 느꼈던 "인생무상"이었고, 20대에는 세 나라의 주역들이 대업의 기반이 되는 "뜻이 통하는 인재"를 얻는 것이었다. 최근 30대 끝자락에 감상은 복합적인데,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적재적소"다. 이 단어에 알맞은 인물로는 - 수천 쪽의 박태원 완역 <삼국지>에서 각기 비중은 20쪽 정도로 작지만 - 위의 "학소"와 진의 "양호"다.


제갈량은 위 공략을 위해 매번 기산으로 향했다. 228년, 역시 기산의 중요성을 안 사마의는 학소를 추천하여 인근의 진창성을 지키게 하였다(정사에서는 조진이 발탁한 것으로 나온다). 같은 해 12월 먼저 제갈량은 항복을 권했으나 학소가 거부하자 진창성을 공한다.


학소군은 단 1,000여 명에 불과하여 중과부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촉군이 운제로 공격하자 학소군은 이를 불화살로 태워버렸으며, 충차를 끌고 오자 돌절구에 밧줄을 묶어 휘둘러 충차를 깨부쉈다. 제갈량이 다시 정란에서 화살을 쏘고 흙으로 산을 쌓아 참호를 메우고 성을 오르려고 하자 학소는 성 안에 두 겹으로 된 담장을 쌓아 그것을 막아냈으며, 제갈량이 이번에는 땅굴로 급습을 하려고 하자 성 안에 가로로 땅을 파 이를 막았다(나무위키 참고).


촉의 항복 이후 폭정을 펼치던 오의 손호는 육항으로 하여금 양양을 노려 강구에 군사를 주둔케 했다. 이에 위의 가충은 양호를 천거해 육항과 대치케 했다. 양호는 육항의 지모가 뛰어남을 알고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민생을 살피며 힘을 비축하였다. 육항이 오래도록 양양을 공격하지 않자 손호는 육항을 불러들이고 벼슬을 깎은 뒤 다른 장수로 그 자릴 대신했다. 그러자 양호는 사마염에게 지금 오를 공략 하자 이르나 다른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러지 못하고, 오의 멸망 2년 전에 숨을 거둔다. 이후 오를 정벌 하러 나서며 사마염은 저 때에 양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역사적으로 양호는 민정을 가장 성공적으로 시행한 군인으로 중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유명하며, 그 평가는 선정으로 이름 높았던 명재상 제갈량에 필적한다고 할 수 있다. 집안 인맥이며 개인 능력, 인격 어느 면에서도 당대 흠결이 없을 정도였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회, 가충, 순욱, 풍담, 왕융 등 수많은 이들에게 정적으로 간주되어 생애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시기와 견제를 당했고 스스로도 그런 입장이 난감했는지 육항 사후 오 정벌의 건의가 좌절되자 "천하의 일 중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열 중 일곱 여덟이구나(天下不如意 恒十居七八)"라고 탄식했을 정도였다.(나무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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