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 1. 고향
설 연휴에 구미 주변을 둘러보고 고향집을 찾았다. 여행계획을 짜면서 구미 옆 칠곡군도 방문해 보려 블로그를 살펴보았다. 구상문학관이 검색됐고, 어느 블로그에서 읽게 된 아래 시가 <수의>다. 속으로 "그럴 수 있지" 했다.
삼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시골집에 도착했다. 여전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끼시며 불편함이 익숙한 집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을 뵈니 이 시가 떠올랐다.
# 2. 항변
연일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그를 본다. 세칭 "레이더 사건"으로 재판장에 서게 된 구상 시인은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조국에 모반한 죄목을 쓰고 유기형수가 되느니 보다 사형이 아니면 무죄를 달라."
수의
아내의 시신을 영안실에다 옮기고
나는 대합실 돗자리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참 뒤 사무실 직원이 오고
며느리가 딸애랑 저희 이모랑
수군대더니 나에게 다가와
수의가 한 벌에 50만 원부터
최상품이 120만 원인데
65만 원짜리를 골랐으니
'아버님 의견은 어떠시냐'란다.
평소 같으면 나는 의레
'알아서들 하렴'이었겠지만
힐끗 영정을 쳐다보니
한복도 양장도 아닌 진료의 차림이라
'평생 옷 한 벌 해 줘 본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ㅡ그거 120만 원짜리,
120만 원짜리로 해라!
마치 역정난 사람처럼 내뱉고는
옆으로 돌아앉아 버린다.
그리고 다시금 곰곰 헤아리니
아내는 비록 저승에서 일망정
이런 턱없는 호사를 탐탁혀 않지 싶고
한편 나는 그녀가 다시 살아난다면
아마 홑 20만 원짜리도 안 해주지 싶어
마음이 자못 개운치가 않다.
※ 구상시인의 아내는 칠곡군 왜관읍에서 순심의원을 운영한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