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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며

일맥상통

by 복습자

토기의 색은 흙의 깊은 안쪽에 들어 있는 것인데 그것들은 불의 힘에 의해 세계의 표면으로 끌어올려진다. 그 색들은 원래 흑의 캄캄한 안쪽에서 억만 년을 매몰되어 있던 색들의 잠재태일 터이다. 불이 그것들을 끌어올려 살아나게 한다. 그 색의 가능성들이 색의 발현태로서 끌어올려지는 과정은 매우 길고도 즐거운 여정이리라.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 쓰여지는 나의 글은 그 여정에서 보여지는 저 은밀한 이야기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중략) 가마에 불이 꺼지고, 토기들이 쏟아져 나올 때, 완성된 토기는 저마다의 운명의 색깔로 반짝이거나 혹은 조용하다. 그것들은 저마다 개별적인 표정을 띠고 있다. 토기가 쏟아져 나올 때 그것들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참고 있는 것인가. 그것들이 걸어오는 말에 나는 응답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공통된 본질 위에서 개별적 운명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그 비밀에 응답하지 못한 채, 토기 한 점을 사서 서울로 돌아왔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가마" 중에서 -


눈앞에 있어도, 형제자매라도, 가슴속은 이렇게 멀다. 세계의 끝처럼. - 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중에서 -


속담에 이르길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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