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시작과 끝.
1. 같은 작가의 단편소설 대표작 중 <칼자국>을 인상 깊게 읽었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도 그렇다. ※ 두 단편은 <침이 고인다(2007년 9월)>란 소설집에서 읽었다.
2024년에 두바이초콜릿 열풍이 불었다. 유행 초기엔 맛보기 어렵지만, 머지않아 그 맛이 내게도 온다. 여기서 느껴지는 독특한 식감은 '카다이프'때문이다. "카다이프는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존재했던 디저트이자 현재는 튀르키예를 비롯하여 그리스 등 주변 유럽 국가들 및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발칸반도와 캅카스에서도 먹으며, 면이 정말 가늘다. 삶거나 튀겨서 꿀, 조청, 시럽 등을 발라 먹었다고 한다. 주식보다는 간식으로 주로 먹는 면 중 하나이다." - 나무위키 참고 -
한편, AI에게 "카다이프를 쉽게 설명해 줘"라고 묻자, "약간 바클라바랑 비슷한 느낌인데, 바클라바는 얇은 필로 반죽을 쓰고, 카다이프는 실처럼 생긴 반죽을 쓴다는 점이 달라."라고 답한다. 나는 필로 반죽을 사서 바클라바를 만들어 보았다.
그래서 처음 두바이초콜릿을 맛볼 때 아내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AI의 설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위에 두 단편을 읽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칼자국> 속 엄마가 칼국수를 판 것처럼 우리 엄마는 옥수수를 소매했었고,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주인공들이 노량진을 오갔듯이 나도 노량진을 거쳐왔다.
2. <이중 하나는 거짓말(2024년 8월)>은 두 단편보다 보통의 체감 정도는 낮다. 대신 나이가 들어가며 가지게 되는 "혼자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채운은 뭉치(애완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러곤 나지막이 속삭였다. "세상에 우리 둘 뿐이야. 알고 있지?" (30쪽)
"세상에 너랑 나랑 둘 뿐이야."
"······"
"알고 있니?"
용식이(애완용 도마뱀)는 눈꺼풀 없는 눈으로 지우를 빤히 응시하다 허공에 좁고 가는 혀를 내밀었다. (46쪽)
(스포) "둘 뿐이야"란 시작은 '혼자'로 끝이 난다.
3.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앉아 있는 독수리 한 마리는 저 혼자서 이 세상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한 마리는 외롭고 또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 외로움은 완벽한 존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본래 혼자일 뿐이라는 운명을 일깨운다. (중략) '하나'라는 존재의 모습은 늘 나를 질리게 한다. 산속의 무덤들은 여럿이 모여 있지만 그 모임은 군집일 뿐 소통은 아니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개별적 행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들 혼자 죽어서 저 혼자만의 무덤을 이룬다. (중략) 이 세상은 세 마리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새 세 마리는 따로따로 혼자서 날아가는 새들이다. 하나 됨을 잃지 않고 셋을 이루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 것이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셋" 중에서 -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 <이중 하나는 거짓말>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