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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재독

by 복습자

이모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유심히 보고 싶어 져서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모의 모습은 그때도 지금도 무난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안진진의 최종 선택을 알고서 읽으니 그 선택의 복선이 될만한 문장이 나타나 주길 기대했다. 작가의 말을 포함해 300쪽이 조금 넘는 책인데, 중반인 157쪽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편, 사랑인가?에 대한 안진진의 기준점이 인상 깊었다.(219, 220쪽)


사랑의 유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중략)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끝으로 이모가 안진진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283쪽)와 갑자기 떠오른,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을 적어 둔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도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라디오 사연은 이렇다. 미취학 자녀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입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엄한 편이고, 원칙주의자입니다. 남편은 술 담배도 하지 않고, 특별한 취미도 없습니다.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옵니다. 남들은 제게 그렇게 착실한 남편이 어디 있냐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저랑 다른 삶의 가치관 때문에 힘듭니다.


정신과 전문의 패널이 말하길, 이분이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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