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에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에 내 다음 기수 후배들이 들어왔다. 난 이들보다 고작 5개월 선배였고, 몇몇 후배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이런 후배들과 같이 일을 배우면서 두 해를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2016년 1월. 나보다 6살 어린 여자 후배 은수가 바로 내 밑으로 들어왔다. 은수는 내가 하던 일의 반과 전임자 업무의 반을 맡았다.
아직은 나도 저 연차였지만, 진짜 후배가 생겼다는 즐거움에 은수의 자잘한 질문에도 친절히 답을 해주었다. 25살의 은수는 순수한 성격에 엉뚱한 면이 있었지만 본인의 일은 - 과장님이 놓치신 연말정산 환급금을 신청해 주는 등 - 꼼꼼히 해냈다.
한 번은 은수의 순수함이 우리 팀원들에게 웃음을 안긴 일이 있었다. 은수 담당 업무와 관련해 우리 과장님이 상급기관의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출장 하루 전 은수는 전화로 상급기관의 담당자에게 세부일정을 묻고 있었다. 이를 듣던 우리 팀장님이 "은수 씨, 밥 주는지 물어봐"라고 하셨고, 연이어 바로 "그런데 은수 씨, 설마 밥 주냐고 물을 건 아니지?" 하셨다. 이 말을 듣고 은수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푸흡" 했다. 팀장님은 재빨리 "은수 씨! 오찬 일정은 있어요?라고 물어봐"하고 수습해 주셨다.
며칠 뒤 나는 우리 기수 모임에 나가 "우리 팀에 신규 은수란 아이가 있는데~~ 하하, 재미있지? "라며 위 일화를 들려주었다. 동생 태민이 묻는다. "형, 은수 좋아해요? 형 표정이 너무 밝아요"라고 한다. 난 "어? 아.. 아니.. 재미있는 후배지 무슨~ 하하하"라고 답했다.
또 한 번은 사내 게시판에 우리 직장과 2시간 거리에 있는 상위기관에서 급히 받아올 서류가 있는데 본인은 출장이 어렵다고. 그래서 그날 상위기관에 출장 가는 직원을 찾고 있는 글을 보았다. 글쓴이는 영규선배였다. 이 선배는 직장에서 내게 도움을 많이 주었고 나와 같은 동네의 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은수는 이날 상위기관 출장이 있었다. 은수에게 물어보려니 자리가 비었기에 우선 긍정적으로 형에게 메신저를 했다. 얼마 뒤 은수가 자리로 돌아왔다. 형의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은수는 부담스러워했다. 아직 자기는 운전도 부담스럽고 자신의 일정과도 맞지 않는다며.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우리 은수 씨가 출장이 있기는 한데, 은수 씨가 어렵다고 말을 해서요, 부탁은 못 들어 드리겠어요" 선배는 다시금 조금만 신경 써줄 순 없는지 물어왔고, 나는 안된다고 했다. 선배가 끝에 그랬다. "하하, 야 너 꼭 여자친구 챙기는 것처럼 말한다? 알았어. 다른 사람 찾아볼게" 난 "하하, 아니에요. 형 무슨. 아무튼 죄송해요 형"
(나중에 태민이 이야기를 은수하게 하니 자기도 자기 기수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마침내 달콤한 색감이 번질 만큼 번져버린 걸까. 우린 유독 휴일에 비가 잦았던 2017년 초여름 내내 서로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인사발령으로 내가 부서를 옮겼고 마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마법의 주문이 된 비가 그치고 영화가 끝나듯 우리 둘만의 영화도 막을 내렸다.
그 순간의 태민과 영규가 보고, 들었던 달콤한 색감은 어떤 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