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부터 여러 법을 들여다봐야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문득 법의 본질이 궁금해졌다. 어려운 전문 서적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집어 든 책이 전직 검사 출신 김웅 국회의원이 쓴 이 책이다. 전반부는 검사로서 다루었던 사건에 대한 에피소드를, 후반부에는 법조인으로서 법의 본질을 고민한 글이 실려 있었다. 특히 후반부의 ‘대체적’ 분쟁 해결 방법을 소개한 글이 업무와 조금 연관성이 있어 소개해본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는 미국이 자랑하는 인상파 화가이다. 하지만 당시 휘슬러의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떨어지는 불꽃>이라는 작품은 대중과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들었다고 한다. 존 러스킨이라는 평론가도 여기에 동참해 자신의 높은 학식과 품격에 비춰볼 때 다소 지나친 표현을 써가며 휘슬러를 비판하였다. 이에 격분한 휘슬러는 러스킨을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법이 개입한 분쟁 해결 시도는 휘슬러의 승소로 끝이 났고, 이에 따라 그는 손해배상금으로 1 파딩을 받았다. 지금 우리 화폐 가치로 따지면 10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고작 그 돈을 받기 위해 그는 막대한 소송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결국 파산했다. 그 결과 휘슬러는 죽을 때까지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받다 죽었다. 휘슬러는 파산했고, 러스킨은 대학교수직을 잃었다.
이렇듯 법적인 분쟁 해결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시대를 앞서간 휘슬러의 예술성은 소송이 아니라 시간이 증명해 주었다) 원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문제는 공동체에서 자체적으로 타협과 양보를 통해 해결했다. 요즘 말로 하면 조정, 중재, 화해와 같은 분쟁 해결 방법이다.
한편, 근대화와 함께 법이 많아지기 시작하여 지금도 그 수는 늘고 있다. 이와 함께 법률 서비스 수요도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법에 의한 해결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이기적인 행동, 공동체의 이익을 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이를 제재해야 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결국 법에 의한 해결은 모두 형사법으로 귀결되는데, 이것이 법의 속성이자 한계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검찰에서는 다시 종래의 조정, 중재, 화해에 주목하여 2006년 4월부터 형사조정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애초에 합의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고소까지 했을 리 없지만 검사가 조정을 해보라고 하니 혹시 동의하지 않으면 나쁜 인상을 줄까 봐 대개 동의하는 편이다. 달갑잖은 반응과는 달리 결과는 좋은 편으로 2014년에만 형사조정 의뢰된 5만 4,691건 중 무려 2만 5,523건이 조정 성립되었다는 내용이다.
형사사건에 연관되어야 접할 수 있는 제도라 무서움이 앞선다. 비교적 이보다는 높은 확률로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 관공서가 하는 공사의 미흡한 점과 본인 과실의 합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문제다. 위와 같은 취지에서 검찰은 국가배상 분쟁과 관련하여 길고 복잡한 법원의 판결 대신에 당사자가 제출하는 신청서 및 입증자료를 바탕으로 외부위원(판사. 변호사, 의사 등)이 참여하는 심의회에서 국가배상책임 유무를 심의하여 책임이 인정될 경우 배상금을 지급하는 절차로 국가배상심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글은 내가 하는 일의 홍보를 위한 보도자료 작성을 위해 썼던 글을 편집한 것이라 검사내전이 딱딱하게 부각되는데, 전혀 그런 책은 아니다. 법이 궁금한 이들 말고도 특히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같은(?) 공무원 저자라서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마지막으로 무언가 삶적으로(?) 좋은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은 저자답게 글도 잘 쓰고, 다음과 같이 깊은 생각들도 녹아 있다)
“모던보이의 낙관은 풍요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모던보이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견디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현실을 잊고 싶어 하게 하는 원인이 바로 그 현실과 현실의 연장에 불과한 미래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
모던보이를 자기 계발서들의 주된 주장이나 신자유주의 풍토로 바꿔보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