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작가들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책에 빠져 지냈더라. 나는 그렇지 않았고 지금 그렇다. 소설을 집필한 작가의 에세이를 거쳐 곽아람 기자의 에세이 「쓰는 직업」을 읽게 되었다. 책에서 찾는 재미 중 하나는 다른 작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신문의 문화섹션에 책을 소개하는 기자라서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소풍이야 초중고 모두 갔었지만 보물 찾기는 초등학교 때만 했다. 학교마다 가장 자주 가는 소풍장소가 있다. 우리 학교는 청풍문화재단지. 아마 선생님 한분께서 오전 어느 시간에 공책이나 색연필 같은 학용품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담장틈, 마루틈 같은 곳에 숨겨 두셨을 거다. 학생으로서 공부하면서 필요해서 꼭 사서 쓰는 물건이다.
점심으로 엄마가 싸주신 김밥을 먹고 친구들과 자유시간을 가지고 나면 보물찾기 시간이다. 찾은 쪽지를 선생님께 가져가면 거기 적힌 학용품으로 바꿔주신다. 보물을 찾아서, 물건이 생겨서 기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사주시는 학용품이지만 무언가 엄청 기분이 좋다. 결국엔 쓰던 물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쓰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끔은 의미를 부여 – 디자인이 이뻐서 눈길을 주기도 하고, 공책표지가 이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거기에 쓰인 글귀를 유심히 읽어보기도 - 하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문학을 읽는 것이 이렇지 않을까. 도처에 보이는 것, 나의 관심으로 존재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것만으로 살아도 충분하다. 작가들은 그때 선생님들이 숨긴 쪽지 - 같은 인간으로서 자기가 보고 관심을 준 것들에 대해서 적은 - 를 숨기고, 나는 그것을 찾고, 기뻐한다. 결국 다 같은 학용품이 돼버리는 것처럼 작가의 이야기도 내 이야기와 섞여버리고 말 테지만. 가끔은 의미를 부여해 추상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삼는 이야기도 있고, 구체적으로 글귀를 외워두기도 한다.
봄소풍 보물 찾기에서 아니 에르노를 찾았다.(단순한 열정, 집착) 의미부여가 되더라. 그 시절 보물 찾기로 갖게 된 공책에 매료되었던 디자인을, 마음에 닿았던 글귀를 발견 경험과 비슷하다. 아니 에르노는 어떤 복잡함이나 기억하고 싶은 구체적인 글귀가 많은 편은 아니다. 아니 에르노라는 공책을 받아서 촤르르 해보았다. 표지부터 중간중간 사진, 그림, 글귀에 내가 소풍날 일어나서 김밥을 싸는 엄마를 돕는 모습,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가 담겨있었다!
가을 소풍 때는 버지니아 울프(큐가든 – 꼭 블루 앤 그린이란 제목으로 엮인 단편집에서 본 -, 밖에서 본 여자대학)를 얻었다. 그 소풍날 내가 학교까지 걸어가면서 보았던 풍경과 그때 품었던 생각이 공책에 녹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