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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료시제

왜구구단은

by 복습자

어느 날 언니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볼펜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야, 미래가 어떻게 '완료' 되냐?" - 김애란 도도한 생활 -

대강을 뜻하는 "정도". 행사계획 보고서에 꼭 등장한다. 참석인원 옆에 30명 정도. 숫자와 함께하는 정도 덕에 지시자와 보고자 모두 처음과 끝의 정확한 범위를 인지한다. DMZ가 있는 휴전선처럼.

그런데 기준점이 숫자가 아닌 추상적 지향점일 땐 보고가, 결재가 쉽지 않다. 그 기준이 숫자더라도 애초 둘의 차가 크다면 이 또한 상황이 어려워진다. 위아래 폭을 용인하는 정도는 비슷하더라도 말이다. 이래서 사전조율이니 탐색이니 하는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 차에서 휴일 나들이 계획을 떠올린다. 곧바로 머리에서 아내의 "(이사 계획 중) 돈 없어"라는 - 영어에서 시간부사와 같은 - 힌트*가 반짝인다. 오답일 보기에서 체크의 싹이 움트다 만다. *완료에서는 주로 just, yet, still, already 등과 같은 부사와 함께 쓰인다.

이상기후 탓에 싹을 틔어버린 꽃나무의 어쩔 수 없어하는 - 영양가 없는 - 모습이 창에 비친다.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귀에 스친다. 사치스럽게도.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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