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노 Oct 25. 2024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눈을 뜨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고 난 후에는 다리 통증으로 걷는 게 불편해서 이동할 때 주로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하지만 차가 너무 막히는 시내나 주차가 어려운 곳을 가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곤 했다.


아프고 나서 지하철을 탈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다름 아닌 엘리베이터의 위치였다. 그동안 역 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오갈 때는 계단을 이용했기에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튼튼했던 나에게 엘리베이터는 쓸모없는 장치나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하철 계단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오히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지 않아도 되니 좋네’라고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 환자가 된 후에는 지하철의 계단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밟아 나가도 승강장(혹은 출구)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까마득해서 한숨만 나왔다. 결국 계단 지옥을 피해 엘리베이터를 찾아다녔는데, 복잡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발견하는 건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았다. 주로 엘리베이터는 좁다란 통로의 끝 등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찾아가려면 먼 길을 빙빙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계단은 무척 거슬리는 존재였다. 예전에는 가볍게 밟고 올라갔던 계단이 이제는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다. 겨우 교통카드를 찍고 나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해서 손잡이 하나에 온몸을 의지해야 했다. 누군가는 빠르고 편리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배려없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몸이 아프지 않을 땐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장애인, 어르신,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었던 내가 불면증의 세계에 눈을 뜨기도 했다. 다리 통증은 밤만 되면 유독 더 심해져서 잠이 드는 것을 방해했다. 진통제를 먹고 간신히 꿈나라에 빠져도 새벽에 잠이 깨어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많았다. 잠이 안 올 때는 수면을 취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는데, 그중 하나가 유튜브에 ‘잠이 잘 오는 음악’ 또는 ‘통증 완화 음악’을 검색해서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음악 영상의 댓글창에는 각자의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댓글을 통해 자신의 삶의 고단함을 털어놓으면서도 따뜻한 말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해주고 상처보듬어주었다.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꼈다. 나만 힘든 아니라는 사실은, 홀로 어둠을 견디고 있던 나에게 꽤나 위안을 주었다.


상처를 입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깊이 이해하고 어루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30대에서 암환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많은 것에 제한이 생겼지만, 나만의 아픔이 생긴 덕에 그간 잘 살피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라는 좁은 세계에 갇혀 있던 시야가 사방으로 확 트인 느낌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면서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요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끼를 3시간 동안 먹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