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토트넘 경기를 직관하다
2022년에 육종암 진단을 받고 나서 이듬해 7월에 인도네시아 발리를 다녀왔다. 암환자의 신분으로 해외를 가는 건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가족과 함께였기에 용기를 내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좋은 컨디션이 유지돼서 여행을 잘 마무리했고, 몇 개월 뒤 괌 가족여행도 무사히 마쳤다. 성공의 경험이 쌓이며 자신감이 붙은 나는 결심했다. 아프기 전에 즐겨했던 ‘나홀로 여행’을 다시 해보기로.
암환자가 된 후 첫 ‘혼자’ 해외여행, 목적지는 영국 런던이었다. TV로만 보던 손흥민의 토트넘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 축구팬으로서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기 때문에 2024년 4월 토트넘 홈경기 일정에 맞춰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영국에 간 김에 프랑스까지 돌아보기로 하고 호기롭게 여행 준비를 시작했는데,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져갔다. 치안이 안 좋은 유럽에, 그것도 과격한 팬이 많은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장에 혼자 가도 괜찮을까. 경기가 끝나면 늦은 밤인데 혼자 지하철을 타면 위험하지 않을까. 옆에 보호자도 없는데 몸이 아프거나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과한 염려로 인한 스트레스 탓인지 런던을 가기 일주일 전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한쪽 눈이 거의 감길 만큼 퉁퉁 부은 것이다. 밤탱이가 된 눈은 사흘 만에 제자리를 찾았지만 ‘언제든 갑자기 몸이 아플 수 있다’는 가정이 사실임을 몸소 겪고 나니 여행을 더욱 주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 건 손흥민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여행을 포기하면 이미 결제한 왕복 항공비와 호텔 숙박비, 그리고 경기 티켓 값까지 수백만 원을 몽땅 날려야 했기에 그저 무탈한 여정이 되길 기원하며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인천에서 런던까지 14시간의 긴 비행을 견뎌내고 이튿날 토트넘과 노팅엄의 경기를 보러 갔다. 경기 시작 2시간 30분 전이었는데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앞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팬들로 북적였다. 마치 지역에 큰 행사가 열려서 온 동네 주민들이 거리로 다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구단 기념품샵을 구경하거나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일행과 담소를 나누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축제를 즐겼다.
손흥민 유니폼을 사기 위해 들어선 토트넘 기념품샵은 한국의 나이키 아울렛을 방불케 했다. 직원과 손님 상당수가 한국인이라 여기저기서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왔고, 매장 곳곳에는 ‘캡틴’ 손흥민의 사진과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매장에 진열된 유니폼 중 절반이 손흥민의 7번 유니폼이었는데, 이마저도 많이 팔려서 스몰이나 미디움 같은 인기 사이즈는 품절 상태였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닌 선수인지, 또 팬들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념품샵에서 구매한 손흥민 유니폼을 입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갔다. TV로만 보던 6만 석의 연두색 잔디 구장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경기장의 압도적인 규모와 생생한 현장감에 가슴은 더욱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형 스크린에 손흥민의 토트넘 소속 400경기 출전을 기념하는 영상이 나왔다. 2015년 23살의 나이에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은 1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 결과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토트넘을 상징하는 레전드가 되었다.
손흥민이 걸어온 발자취를 담은 기념 영상을 보며 그가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을지 생각했다. 반복되는 생활에 금방 싫증을 느껴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어려운 나로서는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르고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갖게 된다. 손흥민의 경우 나와 동갑이어서 더욱 마음이 가고 그가 이뤄낸 업적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경기를 앞두고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입장했다.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이 토트넘 선수단 맨 앞에 서서 선봉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한국인으로서 그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린 후에도 나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었다.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 기술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플레이를 직접 가까이서 보니 감격스러웠다.
현장에 있으니 TV 중계 화면으로는 보기 어려운 손흥민의 장면들을 포착할 수 있었는데, 끊임없이 선수들을 독려하며 뛰는 모습에선 주장의 책임감이 느껴졌고, 수비의 집중 견제로 인해 지쳐 있는 모습에선 에이스의 고독함이 느껴졌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손흥민은 화려한 스타였는데, 이면에 감춰진 그의 노력과 헌신을 경기장에서 보니 역시 겉으로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손흥민의 골은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는 토트넘의 3-1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 후 토트넘 선수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눈 뒤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라운드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선수는 손흥민이었다. 이날 풀타임을 소화한 손흥민은 체력적으로 힘들텐데도 경기장 한 바퀴를 돌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 인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라커룸에 들어가는 그를 보며 일종의 경외감을 느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오랜 시간 지내와서 팬들의 성원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질 법한데, 여전히 감사함을 잃지 않고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일이 표현하다니. 진정 위대한 선수만이 할 수 있는 행동 같아 보였다.
손흥민이 그라운드를 빠져나간 후에도 경기장에는 자리를 지키는 토트넘 팬이 많았다. 팀 승리에 신난 팬들은 비틀즈의 ‘Hey Jude’를 목청 높여 불렀고, 나도 함께 떼창을 하며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긴 여운을 남긴 첫 직관의 현장을 뒤로 하고 화이트 하트 레인역으로 걸어갔는데, 사람들이 수백 미터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엄청난 인파를 보니 오늘 안에 숙소에 갈 수 있을지 겁이 났지만, 다행히 줄이 빨리 빠져서 기다린 지 30분 만에 열차를 타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 전에 이런저런 걱정을 했지만 우려했던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장 안에 열정적인 팬들은 있어도 난동을 부리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은 없었고, 경기가 끝난 뒤 밤늦게 혼자 지하철을 탔어도 사건사고 없이 안전하게 숙소로 귀가했다. 여행 중 갑작스런 통증이 생길까 봐 진통제를 챙겨갔지만 몸은 아프지 않았다.
괜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런던에 오는 것을 포기했다면 많은 걸 놓칠 뻔 했다. 축구 경기를 2시간 동안 관람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무려 14시간을 날아왔지만 축구팬으로서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을 만들고 세상에 다시 홀로 설 용기를 얻어 감사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