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책을 출간하며 느낀 것들

내가 떠나도 내 책은 세상에 남는다

by 라노

스포츠 기자 일을 그만두고 한 달간 동유럽을 다녀온 뒤,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서른 편이 넘는 글이 쌓이자 이 글들을 하나로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책을 출간하는 건 전부터 꿈꿔 온 일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예시를 참고해 나만의 출간기획서를 작성했고, 기획서와 원고가 담긴 메일을 출판사 몇 군데에 보내 책을 내고 싶다고 어필했다.


투고 메일을 발송한 지 일주일이 지날 무렵 한 출판사의 편집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OOOO 출판사인데요. OOO 씨 맞으시죠?”

“아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기획서와 원고 잘 봤습니다. 한번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사흘 뒤 용산에서 만난 편집장님은 내 원고와 관련해 궁금한 점을 묻더니 이내 출판계약서를 내밀었다. 줄곧 기다려 온 출간 제의를 받고, 나는 설렘과 떨림이 뒤섞인 손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벅찬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랜만에 SNS 게시물을 올렸다.

‘오늘 출판계약서를 썼어요. 여행 에세이 책인데 세상에 나오려면 몇 개월은 더 걸릴 거예요. 고생길이 훤히 보이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니까 열심히 만들어 볼게요!’


몇 개월이 될 줄 알았던 출간 준비 기간은 몇 년이나 걸렸다. 회사를 다닐 때는 업무와 병행하느라 책 집필 속도가 더디었고, 퇴사한 후에는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느라 진도가 굼떴다. 출간 시기가 미뤄질수록 과연 이 책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낸다는 마음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글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한 꼭지 한 꼭지 글을 쌓아가다 보니 마침내 최종 원고가 완성됐다.


책 표지와 내지까지 확정한 뒤 출간일을 내 생일로 잡고 일주일 전부터 예약 판매를 진행했다. 길고 험난했던 여정 끝에 맺은 결실은 꽤나 달콤했다. 출간 소식을 접한 지인들이 책을 많이 주문해 준 덕분에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온라인 서점 주간 베스트 순위에 내 책 <잃어버린 길 위에서>가 이름을 올린 것. 평생 잊지 못할 만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생일 선물이었다.


작가 데뷔 후 가장 기쁘고 설렜던 순간은 광화문의 한 서점에서 출간기념회를 연 때였다. 가까운 친구, 친척, 직장 동료 등 나와 연이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축하 인사를 건네고 책을 구매해 갔는데, 넘쳐나는 꽃다발과 사인 요청에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 나를 응원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가끔씩 친구 결혼식에 가면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는 친구의 모습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비혼주의자인 나는 ‘내 인생에선 저런 순간을 경험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육종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이러한 단념의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랬던 내가 책 출간이라는 꿈을 이루고 출간기념회의 주인공이 되어 열렬한 축하 세례를 받다니.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차올랐고,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출간 후 서점 투어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목동, 영등포, 강남, 잠실 등 서울 시내에 있는 서점에 방문해 내 책이 매대에 잘 놓였는지, 재고는 얼마나 남았는지 살펴보았다. 운이 좋으면 내 책을 구매하는 사람을 직접 보기도 했다. 서점에 온 손님이 내 책을 집어들고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다가 계산대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했다. 서점에 있는 수만 권의 책 중 내 책이 선택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인데, 그런 기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게 놀라웠고 감사했다.

라디오 방송 출연 당시 모습

책 출간은 언론 인터뷰, 라디오 출연 등 다양한 기회로 이어졌다. 기자로서 다른 사람을 인터뷰해왔던 내가 작가로서 인터뷰에 임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 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곡으로 듣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책을 쓰는 건 정말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기에 책을 또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느낌이 좋다. 독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책 리뷰나 내게 보낸 인스타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면 일면식도 없는 독자들과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독자의 반응이 비로소 책을 완성시킨다는 걸 작가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


책을 출간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서점에 가서 혹시 내 책이 있나 살펴본다. 발달장애인인 남동생이 평소엔 잘 웃지 않는데, 서점에서 내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책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으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는다.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책을 낸 스스로가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만일 차기작을 낸다면 그때는 동생 이름을 더 많이 써야겠다. 내가 세상을 떠나도 내 책은 계속 가족의 곁에 남을 테니까.


잃어버린 길 위에서 - 알라딘

잃어버린 길 위에서 - 예스24

잃어버린 길 위에서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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