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고 우쿨렐레 배울게요

악기 하나쯤은 잘 다루고 싶어서

by 라노

글 쓰는 일을 하다가 서른 즈음에 육종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던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동안 미뤄왔던 버킷리스트를 실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 희망, 기쁨, 행복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처음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건강 회복이 우선이니 일단 푹 쉬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치료 초반에는 먹는 것도 힘들고 다리에 통증도 있어서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항암제를 바꾼 후 부작용이 사라지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여태껏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버킷리스트처럼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거의 없다. 회사를 다니면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엔 시간도 심적인 여유도 부족했다. 하지만 암환자가 된 후에는 회사를 다니지 않아 해야 할 업무가 없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과 마음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백수여서 갖는 죄책감이나 빨리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여느 때보다 자유롭고 가뿐한 상태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버킷리스트 중 가장 먼저 실천에 나선 건 바로 악기 배우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했다. 수많은 악기 중에서도 특히 기타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TV 속 가수들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멋있어 보인 탓이다. 신촌 거리에서 기타줄을 튕기며 노래하는 한 버스커의 황홀한 표정 또한 기타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고심 끝에 배우기로 결심한 악기는 기타가 아닌 우쿨렐레였다. 우쿨렐레는 기타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고 줄 수가 적어 기타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악기이다. 만일 악기를 배울 때 잘 못 치거나 실력 향상 속도가 지지부진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우쿨렐레는 기타보다 쉬운 난이도의 악기라 비교적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취미 활동을 할 때만큼은 주어진 일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싶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우쿨렐레 수업을 등록하기 위해 집 근처 음악학원으로 향했다. 마침 나와 비슷한 시기에 우쿨렐레를 시작한 분이 계셔서 매주 화요일에 같이 수업을 받기로 했다. 첫 수업은 설렘과 신남의 연속이었다. 악기 잡는 법을 시작으로 악보 보는 법과 기본 코드까지 배웠는데, 여태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을 익히는 게 흥미로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해서 앞으로의 수업이 무척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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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설렜던 첫 수업과 달리 이후 우쿨렐레를 배우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왼손으로 코드를 잡을 때는 손가락을 세우고 손끝에 힘을 줘야 맑은 소리가 나는데, 손가락의 유연성과 근력이 부족해 둔탁한 소리가 자주 났던 것. 특히 손가락 사이가 멀거나 한 손가락으로 여러 줄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코드를 연주할 땐 듣기 싫은 ‘팅팅’ 소리가 나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안 되는 코드는 없어요. 지금 잘 안 돼도 계속 연습하면 될 겁니다.”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나선 ‘이게 정말 된다고?’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속는 셈치고 집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처음엔 손가락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손끝에 생긴 굳은살 때문에 힘들었지만, 자꾸 반복하니 손가락에 힘과 유연함이 길러져 어려운 코드도 쉽게 잡을 수 있게 됐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인내와 끈기를 갖고 계속 도전하면 기어이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우쿨렐레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우쿨렐레를 배우면 배울수록 코드가 복잡해지고 주법도 다양해졌는데,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기쁨을 맛봤다. 어려워서 잘 못 치던 곡을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 시간에 깔끔하게 소화해 냈을 때의 그 희열이란. 우쿨렐레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곡을 악기로 연주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다른 분들과 합주하면서 함께 소리를 맞춰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벌써 우쿨렐레를 시작한 지도 두 해가 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매주 꾸준히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2년 동안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온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낀다. 초급 교재를 손에 쥐었던 초보 연주자는 이제 중급, 고급 교재까지 떼고 제법 높은 난이도의 곡을 다루는 숙련된 연주자로 성장했다.


내 방 서재의 한구석에는 여전히 우쿨렐레가 자리를 잡고 있다. 집에서 답답하거나 무료함을 느낄 때 우쿨렐레를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데, 적막한 공간에 청아한 음색이 울려 퍼지면 건조했던 마음에 살랑살랑 바람이 분다. 아무 걱정 없이 악기를 치며 여유를 즐기는 베짱이가 된 것 같은 내 모습에 피식 웃음도 난다. 삶에 활기를 더하는 취미를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손으로 멜로디를 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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