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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노 Jan 20. 2021

나도 화려한 궁전에서 살고 싶다

여행 10일차: 오스트리아 빈, 미술과 음악에 눈뜨게 한 예술의 도시

2019.10.01 여행 10일차 오스트리아 빈

트렌드 호텔 메센 빈 조식 레스토랑
트렌드 호텔 메센 빈 조식
트렌드 호텔 메센 빈 근처 대학교로 향하는 학생들
트렌드 호텔 메센 빈 근처 대학교로 향하는 학생들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조식을 먹으러 1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창가 자리에 앉았더니 학생들이 호텔 앞 대학교로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의 대학생 시절이 떠오르면서 '참 좋을 때다', '부럽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호텔을 처음 예약할 때는 시내에서 거리가 멀어 걱정했는데, 막상 와보니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히려 동네가 한적하고 안전해서 관광지가 있는 시끌벅적한 번화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드 호텔 메센 빈 근처 놀이공원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트램 타는 곳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조식을 먹은 후 벨베데레 궁전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트램 안에서 본 빈 거리의 풍경은 프라하와 비슷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여러 대의 트램이 지나다녀서 운치가 있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사보이 왕가의 왕자 오이겐이 기거했던 곳으로 1716년에 하궁이, 1723년에 상궁이 지어졌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꼽히며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벨베데레 궁전을 눈 앞에서 마주하니 민트색 지붕과 광활한 프랑스식 정원이 돋보였다. 커다란 연못과 정원이 있는 이 곳이 내 집이면 어떨까 잠시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벨베데레 궁전 카페
벨베데레 궁전 카페
벨베데레 궁전 카페
벨베데레 궁전 카페

정원을 돌아본 후 상궁 미술관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었다. 오래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궁전 안 카페로 노선을 변경했다. 카페 곳곳에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고전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소품들이 있었다. 대리석 테이블에는 예쁜 꽃이 꽂힌 화병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자리를 잡고 레몬에이드를 시키자 얼음이 든 컵과 병 음료가 나왔다. 카페 분위기만 보면 레몬을 직접 갈아서 만들어 줄 것 같았는데 실망스러웠다. 카페 안에 있는 큰 창문으로 궁전 정원을 보며 시원한 음료를 들이켜고 나니 실망감은 금세 행복감으로 변했다.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 빨간 옷 할아버지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카페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바람이 살랑 불어서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산책하는 사람들 가운데 빨간색 옷을 입고 뛰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는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도 언덕길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한계를 이겨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 사이 상궁 미술관 입장이 원활해져서 표를 구매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3층에 올라가 사실주의, 인상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색채가 현란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그림이 아니라 사진 같았다. 나도 그림을 배워서 멋진 작품을 만들고 나만의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

아래층으로 내려가 상궁 미술관의 하이라이트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찾았다. 3개월 전 제주도에서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를 관람했는데, 클림트의 진품을 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수많은 관광객을 뚫고 '키스'의 원본을 가까이에서 본 순간 거대한 그림의 크기와 화려한 금박 장식에 압도를 당했다. 그림 속 꽃밭에 서 있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을 둘러싼 금빛 아우라 덕분에 연인의 사랑이 더욱 황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자의 오그라든 손과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까치발은 한없이 달콤할 것만 같은 사랑의 이면을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을 한참 감상하다가 단체 관광객이 몰려와 자리를 비켜줬다. 

클림트의 '캄머성 공원의 산책로'
클림트의 '소냐 닙스'
에곤 실레의 '포옹'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의 평원'

클림트의 다른 작품도 감상했는데 개인적으로 '캄머성 공원의 산책로'가 인상 깊었다. 우거진 나무들이 숲을 이룬 산책로가 캔버스를 빽빽하게 채워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클림트 외에도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에곤 실레 등 다양한 화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에곤 실레의 '포옹'은 거침없는 드로잉으로 인간의 성적인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점이 눈에 띄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작품은 반 고흐가 그린 '오베르의 평원'이었다. 오베르는 프랑스 파리 북동쪽의 작은 마을로 반 고흐가 죽기 전 머물렀던 곳이다. 그림 속 오베르의 전원 풍경은 얼핏 평화로워 보였지만, 덧칠한 물감과 꾸불거리는 선은 반 고흐의 불안했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며칠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작품에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에서 립스 오브 비엔나로 가는 길
립스 오브 비엔나
립스 오브 비엔나
립스 오브 비엔나에서 주문한 카이저 흑맥주
립스 오브 비엔나에서 먹은 립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쇤부른 궁전을 가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일정을 건너뛰기로 했다. 조식을 먹은 뒤 8시간 동안 공복 상태라 맛집 립스 오브 비엔나에 가기로 결정했다. 식당 오픈 시간이 5시라 거리 구경도 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립스 오브 비엔나 간판을 발견하고 고기 뜯을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웬걸, 대기하는 손님이 많았다. 식당이 문 연 지 10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줄을 서 있다니, 정말 유명한 식당인 듯 했다. 


20분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왔는데 직원이 "대기 손님이 많으니 혼자 온 다른 분과 합석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 본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됐다. 에델바이스 맥주와 립스 오브 비엔나를 시킨 뒤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통성명을 했다. 내 앞에 앉은 분은 싱가포르에서 온 연구원 J였다. J는 컨퍼런스가 있어서 빈에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나는 대학생 때 싱가포르 여행을 갔던 이야기를 하며 J와 친밀감을 쌓았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먼저 나온 맥주를 다 마셔서 카이저 흑맥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평소에 흑맥주를 좋아하는데, 카이저는 내가 여태껏 먹어본 흑맥주 중 가장 맛있었다. 쌉쌀한 커피향이 나서 달달한 바베큐 소스의 립과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호프부르크 왕궁
호프부르크 왕궁
호프부르크 왕궁
호프부르크 왕궁
호프부르크 왕궁

저녁을 푸짐하게 먹은 후 J에게 "이제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J는 "호프부르크 왕궁에 가려고요"라고 답했다. 마침 나도 호프부르크 왕궁에 갈 예정이었기에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호프부르크 왕궁은 약 6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다. 왕궁에는 총 2000개가 넘는 방이 있는데, 일부는 현재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 관람을 하면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가 생활했던 공간을 볼 수 있지만, 우리가 갔을 땐 입장 마감 시간이 지나 외관만 구경했다. 화려한 건축물과 드넓은 광장은 당시 왕가의 위엄을 느끼게 해주었다. 왕궁 앞에서 J와 번갈아 사진을 찍은 뒤 각자 숙소로 가는 길이 달라 헤어졌다. 여행 10일차에 접어들면서 무기력에 빠졌는데, J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 권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다가 오페라하우스 밖에 설치된 화면으로 실시간 공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서 혹은 앉아서 오페라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광화문 광장에 모여 거리 응원을 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나도 자리를 잡고 화면으로 송출되는 오페라 공연을 관람했다.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공연을 시원한 야외에서 실시간으로 즐기다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무척 감명 깊었다. 평소 문화생활을 하는 편이 아닌데, 한국에 돌아가면 뮤지컬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페라 공연을 넋 놓고 보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레몬맥주 한 캔을 들고 호텔로 복귀했다. 빈에서의 마지막 밤을 특별하게 마무리한 것 같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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