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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노 Feb 22. 2021

블레드 호수에 떠 있는 신비로운 섬을 찾다

여행 15일차: 블레드, 그림 같은 성과 섬을 간직한 호숫가 마을

2019.10.06 여행 15일차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블레드

류블랴나 센트럴 호텔 조식

아침 10시에 블레드행 버스를 타야 해서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센트럴 호텔의 조식은 훌륭했다.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맛있어서 다섯 접시는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두 접시만 비우고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류블랴나에서 블레드로 가는 길
류블랴나에서 블레드로 가는 길

터미널 창구에서 예약 내용이 담긴 바우처를 티켓으로 교환하고 버스에 탑승했다. 맨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덕분에 두 좌석을 차지하면서 편하게 이동했다. 버스가 류블랴나 시내를 벗어나자 흰 눈이 덮인 알프스 산맥과 초원 위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 양이 보였다. 차창 밖 목가적인 풍경을 즐기다 보니 금세 블레드에 다다랐다. 류블랴나를 떠난 지 50분 만이었다.  

블레드 성으로 올라가는 길
블레드 성으로 올라가는 길
블레드 성으로 올라가는 길
블레드 성으로 올라가는 길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블레드 성으로 향했다. 블레드 성은 알부인 주교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2세에게 땅을 선물 받고 1011년에 방어 목적으로 지은 성이다. 무려 130m 높이의 호숫가 절벽에 위치해 있어 가는 길이 험난했다. 가파른 경사를 지나 수많은 계단을 오르니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숨이 너무 차서 중간에 한 번 벤치에서 쉬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블레드 성 입구
블레드 성에서 바라본 풍경
블레드 성에서 바라본 풍경
블레드 성에서 바라본 풍경
블레드 섬
블레드 섬
블레드 섬
블레드 성 레스토랑

마침내 입구 앞에 와서 입장료를 내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성에 둘러싸여 있으니 시간을 거슬러 중세 유럽에 온 느낌이었다. 뾰족한 주황색 지붕과 바람에 펄럭이는 슬로베니아 국기는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냈다. 블레드 성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왼편에는 아기자기한 호숫가 마을이, 오른편에는 동화 같은 블레드 섬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블레드 섬은 호수 한가운데서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며 떠 있었다. 자그마한 나룻배들이 에메랄드빛 호수 위에서 물살을 가르며 유유자적 지나가는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맑은 날씨 덕분에 블레드 호수의 영롱함을 만끽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블레드 성
블레드 성
블레드 성
블레드 성
블레드 성에서 바라본 풍경
블레드 성
블레드 성 인쇄소
블레드 성 인쇄소 작업 모습

전망대에서 한참 있다가 블레드 지역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을 둘러봤다. 이후 15세기 구텐베르크 활자 인쇄 방식을 재현한 인쇄소에 찾아갔다.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직원이 기념 엽서를 만들고 있었는데, 옛날 방식 그대로 금속 활자기를 이용해 문구를 새기는 광경이 무척 신기했다. 인쇄소를 나와 지하에 있는 와인 저장고를 구경하고 블레드 성 관광을 마무리했다. 성에 3시간이나 머물렀는데도 떠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여운이 남았다.

블레드 호수 둘레길
블레드 호수 둘레길
블레드 섬
블레드 호수 둘레길
블레드 맛집 Spica
Spica에서 주문한 모둠 고기와 하우스 레드 와인

블레드 성에서 내려오니 푸른 잔디 너머로 햇살을 받은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탁 트인 호수 전경을 감상하며 둘레길을 걷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 겸 바인 Spica를 갔다. 블레드의 신선한 공기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즐기면서 식사를 하고 싶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훑어보다가 '발칸반도 음식'이라고 써진 모둠 고기와 하우스 레드 와인을 시켰다. 먼저 나온 와인을 마시며 한적함을 느끼는 사이 모둠 고기가 등장했다. 스테이크 같은 고깃덩어리를 예상했는데, 고기가 소시지처럼 똘똘 말아져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한 입 먹어보니 맛은 떡갈비와 비슷했다. 다만 조금 짜서 생양파를 곁들여 먹어야 간이 맞았다. 천천히 현지 음식을 맛보고 싶었지만, 앞 테이블에 앉은 외국인의 담배 연기가 자꾸 나한테 와서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블레드 호수 둘레길
절벽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블레드 성
파크 호텔 카페
파크 호텔 카페
파크 호텔 카페
파크 호텔 카페에서 먹은 크렘나 레지나와 핫초코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파크 호텔 카페를 찾았다. 파크 호텔 카페는 블레드의 전통 케이크인 크렘나 레지나가 탄생한 곳이다. 원조라고 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보니 모던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카페 내부는 웬만한 식당보다 넓었는데 바로 앞이 호수라 전망이 기가 막혔다.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 끼고 싶지 않아서 맨 끝 소파 자리를 선택한 후 오리지널 블레드 케이크(크렘나 레지나)와 핫초코를 주문했다. 서빙된 크렘나 레지나는 페이스트리 위에 카스텔라, 크림, 페이스트리가 겹겹이 쌓여 있는 형태였다. 포크로 한 조각을 움푹 파서 먹어보니 카스텔라가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맛있어서 케이크를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서 류블랴나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걸어갔다. 아름다운 호수 마을의 풍광을 더 누리지 못하고 떠나야 해서 아쉬웠다. 블레드 일정을 1박 2일이 아닌 당일치기로 잡은 스스로를 질책하며 버스에 올랐다. 블레드는 아기자기하고 평온한 소도시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마을을 누비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고, 여행으로 지쳐 있던 심신을 치유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동유럽을 오게 되면 블레드는 무조건 재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블랴나 야경
류블랴나 거리의 밤 풍경
류블랴나 거리의 밤 풍경
류블랴나 거리의 밤 풍경
류블랴나 거리에서 드라마를 촬영 중인 스태프

1시간 후 류블랴나에 도착해 호텔에서 쉬었다가 프레셰렌 광장으로 나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시내에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았다. 영업 중인 기념품 가게를 찾아 마그넷을 하나 사고 거리를 거닐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을 구경하다가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이 들리는 곳을 따라갔다. 한 할아버지가 독특한 디자인의 바이올린을 신들린 듯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바이올린을 든 청년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자문을 구하는 멘티와 그런 멘티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하는 멘토의 모습 같아서 훈훈했다.

류블랴나 거리의 밤 풍경
류블랴나 거리의 밤 풍경
Kavarna Tromostovje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연주자
Kavarna Tromostovje에서 시킨 레몬꿀차
Kavarna Tromostovje에서 마신 레몬꿀차

숙소로 가기 전에 Kavarna Tromostovje에 들러 레몬꿀차를 주문했다. 잠시 후 따뜻한 물, 레몬차 티백, 꿀이 함께 나왔다. 완성된 레몬꿀차를 주는 줄 알았는데 직접 티백과 꿀을 넣고 제조해서 먹어야 했다. 양봉업이 크게 발달한 슬로베니아답게 꿀이 진해서 레몬꿀차 맛도 좋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라이브 기타 연주를 들으니 마음에 위로가 됐다. 류블랴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감성으로 촉촉하게 적시고 숙소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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