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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노 Nov 10. 2023

외향형 인간이 입원하면 생기는 일

길 위를 지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전신마취 상태였던 내가 깨어난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일반적으로 수술이 끝난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으며,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면 일반병실로 이동한다.


뉴스나 TV 드라마로만 보던 중환자실에 내가 있다니. 처음엔 신기하고 현실감이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곳에 익숙해져갔다. 그럼에도 하루빨리 중환자실을 탈출하고 싶었던 건, 침대를 벗어나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는 이동이 금지돼 침대 위에서만 생활이 가능했다. 휴대전화 반입도 안 돼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염없이 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보낸 뒤, 일반병실로 올라가 열흘 정도 병원 생활을 이어갔다. 이제 땅에 발을 붙이고 움직일 수 있었지만, 나에게 병원은 여전히 답답한 공간이었다.


나는 MBTI 검사를 하면 맨 앞에 ‘E’가 나오는 외향형 인간이다. 방구석에 가만히 있는 걸 참지 못하고 일단 집 밖을 나가며, 여러 사람을 만나 활동적인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인간. 그런 내가 며칠간 병원에만 있으니 속이 갑갑하고 몸이 근질거릴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 있다가 너무 답답할 때면 6층에 있는 옥상정원을 찾아갔다. 병원 밖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익숙한 신촌 거리 속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활기가 돌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웠다.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주점에 가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누군가에겐 그저 일상인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꿈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병원 3층 아트 스페이스에 전시된 작품


병원 3층에 위치한 아트 스페이스도 마음이 적적할 때 자주 방문했던 곳 중 하나다. 당시 아트 스페이스에는 한 작가의 팝아트 작품 20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각 작품에 드러난 입체적인 사물 표현과 풍부한 색채는 병원 생활에 지쳐있던 나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바깥 세상과 연결된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나만의 힐링 아지트를 찾아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교수님이 수술 후에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별다른 후유증 없이 몸은 빠르게 회복됐고, 병상에 누워 있어 말랑말랑해진 다리 근육도 다시 탄탄해졌다.   


병원이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어떻게든 활력을 되찾으려 한 외향형 인간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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