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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leeAjean Sep 05. 2024

[단편 소설]
찌그러진 백조 : 白光(백광)







 평소 시끄러운 축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조용한 서커스장만이 남았다. 마지막 공연이라 손님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대부분의 관객이 마을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고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한 명의 관객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서커스장에서 아버지는 와이어를 잡고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백조 역할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조 역할이지만, 아버지는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이었다.


 처음 서커스 단장이 아버지를 찾아와 고용하려 했을 때 아버지는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었다. 하지만 마땅한 돈벌이가 없었던 아버지는 얼마 후 이 제안을 수락했다.



 평소 마을 사람들로부터 죽 한 그릇도 빌리지 못했던 소심한 아버지는 서커스단에 들어가고부터는 가족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부끄러웠지만, 어느 날 발이 퉁퉁 부어오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서커스단은 마을 축제마다 많은 손님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마을 축제에 관심을 잃었고, 그나마 서커스를 챙겨보던 아이들은 다 성인이 되어 도시로 떠나버렸다.


 결국 수익이 떨어진 서커스단을 유지할 수 없었던 단장은 마지막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다. 단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반대하고 싶어 했지만, 눈에 띄게 줄어든 관객 탓에 할 말을 잃었다.




 이번 공연에는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평소 어머니는 아버지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지만, 아버지는 재미없는 공연을 돈 들여가며 볼 필요 없다며 단호히 말씀하셨다.


 아마도 자신이 힘겹게 일하는 모습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았기에 어머니 앞에서는 서커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공연만큼은 관람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어머니를 서커스장으로 모셨다.




 한창 무대 준비를 하던 아버지는 관람석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고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단장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빨간 리본으로 장식된 상자에서 마이크를 꺼내 들었다. 흰색 마이크는 때가 묻어 더러워 보였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고 박수를 보냈다. 단장은 박수에 화답하듯 입에서 색색의 스카프가 끝없이 나오는 마술을 펼쳤다.




 이어 서커스의 주역들이 등장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곡예를 선보였다. 그때 아버지도 와이어를 타고 백조 연기를 펼쳤다. 공연을 처음 보는 어머니는 한순간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공연에 몰입했다.


 시간이 흘러 박수와 웃음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울 무렵,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각자의 묘기를 뽐내는 순서였다. 이때만큼은 아버지 역시 모든 이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붉은 가발을 쓴 광대가 물구나무서기로 공 위에 오르는 묘기를 마치자, 기다리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아버지는 한쪽 팔을 휘저으며 와이어를 타고 공연장을 날아다닐 참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이 광경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에 차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탄 와이어가 비정상적으로 늘어지더니, 허리를 감고 있던 와이어를 놓친 아버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공연장 한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북소리는 뚝 그쳤고, 당황한 단원들이 서둘러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나 역시 당혹감에 휩싸여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목을 뺐다. 그 순간 옆자리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공포에 질린 비명이라기보다는 슬픔에 젖은 절규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안색이 하얗게 질린 어머니가 앉아 계셨고, 나는 격앙된 어머니를 부둥켜안았다.




 그 뒤로 시골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새하얀 구급차가 마을에 도착했고, 한 마리 백조가 들것에 실려 갔다. 의사는 의식을 잃을 만큼 심각한 부상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화장을 다 지우지 못한 얼굴을 적신 수건으로 닦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병원 옥상에 올라서자 처음 보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 하나 보이지 않았고, 골목 여기저기서는 요란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건물 안쪽에서 누군가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백조가 세상을 떠나는 소리 같았다.














소설 : leeAjean

썸네일 사진 : nicole k ALEXANDER

배경 사진 : alexander s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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