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났다. 피 냄새였다.
가만히 있어라 절대, 너만 조용하면 된다.
나는 2405번이다.
아니 그렇게 불린다.
‘그 사람’은 날 2405번이라고 불렀다.
스트레스와 인류의 공격성 해소를 위해 원숭이가 태어났다. 원숭이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주어진 숙명을 다해 구타를 당하면 된다. 그렇게 죽도록 맞다가 죽으면 된다.
아 되도록 오래 버티면 더 좋다.
자기 숙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어리석은 녀석이 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3250번이 죽었다. ‘그 사람’에게 죽은 것이다. 축 늘어진 녀석은 어느 순간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슬펐다. 슬펐지만, 녀석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의미 있는 사건이 되지 못했다.
‘쿵’, ‘킁’
생각하는 사이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쿵’, ‘쿵’
익숙한 발걸음 소리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문이 열렸다. ‘그 사람’이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묵직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주먹은 어디라 할 것 없이 내 몸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 사람의 시선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머리, 가슴, 배. 어디를 때려야 상품이 고장 나지 않는지 설명서에 나와 있다. 하지만 그걸 읽는 사람은 없다. 상품을 개봉할 때 모두가 상품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악물고 소리 내지 않았다. 맞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소리를 안내야 한다.
“우끼끼!”
비명을 지르던 때도 있었다. 그럴수록 구타가 길어졌었다. 때리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느낀다나 뭐라나.
“으아악!”
갑자기 그 사람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 주먹이 내 이빨을 때렸을 때, 이빨에 손이 베인 것이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앞에는 부러진 이빨이 놓여 있었다. 눈을 돌려 그 사람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고통에 신음하며 자신의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사람은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수의사가 캐비닛을 들고 그 사람을 찾아왔다. 앞서 죽은 3250번의 시체와 그 사람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또 다쳤어요. 연고라도 발라주세요.”
그 사람이 수의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수의사는 끄덕이며 들고 온 작은 가방을 뒤적였다.
수의사는 연고를 하나 꺼내 그 사람에게 건넸다.
“이거 원숭이용 연고 아닌가요? 사람한테 발라도 돼요?”
그 사람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수의사에게 물었다. 동물용 연고를 쓴다는 게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음… 유전자는 별 차이 없으니 안심하게 쓰셔도 됩니다.”
수의사가 무심하지만 친절한 어조로 답했다.
그 사람이 연고를 짜내며 손에 바르는 동안, 수의사는 망가진 3250번의 시체를 가져온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캐비닛의 문을 열었다.
‘3250’이라는 숫자가 적힌 캐비닛 안에는 새로 구입된 아기 원숭이가 들어 있었다.
아기 원숭이는 주위를 경계하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눈빛을 피했다. 그냥 눈을 감았다. 그러자 몸에 남겨진 고통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욱심 거림, 피가 빠지며 동반되는 두통, 어지러움, 피로에 절여진 몸. 아 쉬고 싶다.
수의사는 주섬주섬 가져온 물건을 챙기더니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단골이시니, 이번에는 물건 값을 조금 깎아드릴게요!”
수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 안 그러셔도 되는데, 고맙습니다! 배웅이라도 해드려야겠네요.”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웃으며.
그 사람과 수의사, 둘이 방을 나가자 아기 원숭이와 나만 덩그러니 방에 남았다.
냄새가 났다. 피 냄새였다.
앞서 죽은 3250번의 냄새…아 내 냄새도 섞여 있었다. 아차 내 냄새란다. 내 이름은 2405번이다. 2405번의 냄새가 났다.
소설 : leeAjean
썸네일 사진 : dominik scythe
배경 사진 : jesper aggerga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