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500m에 위치한 히말라야 라다크. 내 가족을 만나러 간다.
"젯 에어웨이즈 2244호 레 직항 편 53번 게이트"
델리에서 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 게이트 53번으로 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인도 최북단 잠무 & 카슈미르 주. 티베트와 인도 히말라야 국경 사이에 자리 잡은 해발 3500M의 레.
보딩 게이트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피식 웃음이 났다. 물어볼 자시 고도 없이 내가 서야 할 줄이 한눈에 보인다. 커피색 인도인들 대신 나랑 비슷한 납작 얼굴의 라다키인들이 기다랗게 서 있다.
어깨 위로 붉은색 천을 휘감은 까까머리 승려, 흰머리를 양 갈래로 곱게 땋아 끝 부분만 묶어 내린 소녀 같은 할머니들. 매서운 라다크의 추위에 고질병처럼 얼어버린 빨간 양 볼의 꼬맹이들. 허리는 하늘색, 밤색으로 묶어 조이고 치마 깃이 여러 갈래로 발목까지 떨어지는 곤차(라다크 전통 드레스)를 입고 고르담(두건처럼 쓰는 머리천)을 걸친 아주머니들.
두터운 모직에 삐죽한 앞코가 특이한 전통 신발에 터키석 귀고리와 목걸이를 한 아저씨들. 햇볕에 그을려 검게 얼룩진 피부에 두툼한 등산 잠바를 걸친 젊은이들. 그리고 얼굴 하얀 나와 대부분의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갈색 피부의 검은 수염, 왕눈이 눈에 코가 높은 인도인 관광객 몇 명이 소수민족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인도 내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레. 옛날 옛적부터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터줏대감처럼 살아온 소수민족 라다키들이 사는 그곳으로 비행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내가 아는 보통의 인도인 얼굴의 스튜어디스들이 왔다 갔다 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승객은 나와 얼굴이 비슷한 라다키인들이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듯 한 아주머니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자 익숙한 일인 듯 남자 스튜어디스가 다가가 힌디로 괜찮다며 안심시킨다. 잔뜩 상기된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진 듯 보인다. 내 옆에는 검게 그을린 피부색에 눈가와 볼 주위로 깊은 주름이 파여 있는 할아버지가 눈을 감고 마니차(불교 기도 도구)를 돌리며 옴마니 반메 홈(티베트 경구)을 중얼거리고 있다. 나지막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혼잡한 도시 델리의 상공을 지나 어느새 히말라야의 굵직한 선을 가진 하얀 산새가 각을 이루며 창 밖으로 펼쳐졌다.
"와아" 여기저기서 탄성 소리를 내는 인도 관광객 무리가 창가에 달라붙어 찰칵찰칵 바쁘게 셔터를 눌러댄다. 복도 쪽에 앉은 이 들도 흘깃흘깃 창가 쪽을 바라본다. 매일 보던 풍경이라는 듯 무관심한 이 들은 눈을 붙이거나 좌석 앞쪽에 배치된 잡지를 들춘다.
뻘건 양 볼을 가진 라다키 꼬맹이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시선을 이쪽저쪽으로 둔다. 내 옆에 앉은 꼬맹이랑은 몇 번씩 눈이 마주쳤는데 검은 눈 속에서 나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와 닮은 저 여자는 라다키일까? 외국 사람일까?' 뭐 이런 종류의 느낌 말이다.
꼬마의 눈을 피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색 눈으로 뒤 덮인 히말라야가 병풍처럼 서 있다. 굵직굵직한 산새 사이로 계곡들이 깊게 골을 이루며 파여 있고 태양과 각이 만들어낸 회색의 그림자들이 산을 더 험하게 보이게 한다.
현대 문명과 격리된 높은 눈의 장벽 히말라야를 넘어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조금 뒤 쿵쿵 거리며 바퀴가 땅에 닿자 어떤 이는 박수를 치고 어떤 이는 옴마니 반메 홈을 외고 어떤 이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난..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튼 것 마냥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행기의 소음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나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이는 없었다. 잠바의 끝 소매가 눈물로 젖어들어갈 때쯤 내리는 이들 사이에 서서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펑펑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레의 풍경은 그대로인데... 볼가에 남은 눈물의 흔적 위에 차가운 영하의 바람이 따갑게 묻힌다. 입술을 꽉 깨물고 이동버스를 타고 입국장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큰오빠 툰둡과 샛 아빠가 나와 있었다. 감격에 포옹을 하고 차에 올라탔다. 오빠와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가는 길. 뼈만 앙상하게 남아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느티나무들과 갈 곳 잃은 듯 가만히 서 있는 당나귀들.
셔터가 굳게 내려져있는 가게들 그리고 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눈 덮인 히말라야가 눈에 들어왔다.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샛 아빠가 시장에서 뭘 좀 사 오겠다며 중간에 내리고 툰둡과 둘이 되었다.
"오빠, 아빠는 어디 있어..?"
금방이라도 울 듯 말끝을 흐리는 날 보며 툰둡이 말했다.
"데려가 줄게. 하지만 오늘은 집에서 푹 쉬어. 고산증이 오면 안 되잖아."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에 대한 염려가 느껴졌다. 집 앞에 차가 다다르자 매일 지나다녔던 골목길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얼음으로 얼어붙은 길을 조심히 걸어갔다. 눈에 익은 대문 앞.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어느새 차를 세우고 온 툰둡이 대문을 열어주었다. 난 익숙하게 돌계단을 성큼 올라 마당으로 들어섰다. 눈물로 흐려진 눈가에도 그녀의 실루엣이 보인다. 엄마다. 우리 엄마.
"아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와 나를 세게 껴안았다.
“아앙.. 엄.. 마.. 엄마..” 목 끝까지 올라왔던 슬픔을 터뜨리듯 난 엄마의 품속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가 소매 단으로 내 눈물을 닦았다.
“아샤.. 우리 딸.. 하나밖에 없는 내 딸..”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모녀를 오빠는 달래 듯 집으로 이끌었다.
방 안에는 이미 이모와 올케가 와 있었다.
"줄.. 레.." 훌쩍거리며 간신히 입에서 뗀 인사말을 나누고 포옹을 했다.
엄마가 옷깃으로 눈물을 훔치며 구루구루 티(버터 소금 티)를 내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캄.. 상.. 이날 레"(잘.. 지내셨어요..?)
벌써 4년.. 세월의 흔적이 엄마의 얼굴에 깊게 파여 있었다. 예전보다 더 검어진 얼굴, 작고 거칠어진 손.
난 엄마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오빠는 한숨을 푹 쉬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내게 휴지를 건넸다.
"아말 레.."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눈물이 눈가에 잔뜩 고인 올케가 감비르(발효시킨 전통 빵)를 내왔다. 엄마가 내가 온다며 저녁부터 반죽을 해 놓은 것이다. 이모와 올케 오빠가 차례로 와 내 목에 카닥을 걸어주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엄마가..
아샤 레 돈돈..(아샤야 얼른 먹어..) 흐느끼며 말했다.
.
.
.
.
우리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