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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샤 Jan 13. 2019

아버지,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태어나다 

딸아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지금 병원에 있어. 너도 빨리 이리로 와야겠다. 


난 반 미친 상태로 울부짖었다.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곧 죽을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병원 응급실로 들어서는 길. 난 내 눈을 믿지 못했다. 아니 믿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하루 중 유일하게 내게 허락된 단 1시간의 시간. 중환자실 문을 열고 아버지 침상까지 걸어가는 동안 난 입술을 깨물며 울고 또 울었다. 눈물제어장치가 고장났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아빠를 내려다보며 아......아...아..아..아.. 몇 번 씩 ‘아‘라는 단어만을 반복해 말했다. 난 잠시 잃어버렸다. 말하는 법을.. 난 우는 법 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매일 같이 쓰던 단어. 20년을 반복한 단어. 내가 제일 많이 말하고 썼던 그 단어. 아빠..란 그 한마디 말이 매일 죽어 가는 아빠를 보며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우리 아빠는 아빠라고 부르면, 그래 우리딸. 이라고 말해주던 분이었는데. 내 귓가엔 아빠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부르는 내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아빠.. 아빠 딸 왔어요, 오늘은 안 운다고 약속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아버지..제발 오늘은 한 마디만 해주세요. ‘그래. 우리 딸 왔냐고’ 
누워계시지만 말고..제발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아빠..죄송해요. 사랑한다는 말을 그 동안 왜 그리 못했는지.. 사..랑해..요. 사랑해요..아빠 사랑해요. 반드시 일어나셔야 해요.“

1시간의 면회시간 그리고 23시간의 기다림. 중환자실 앞에서 나는 매일 같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드렸다. 신이 존재한다면 내 음성을 들어주길 바라며 난 울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우리 아빠를 살려주세요. 제발 우리 아버지를 데려가지 마세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살려주세요..데려가지 마세요..우리 아버지를..”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지 정확히 17일 후,

아버지는 그렇게 조용히 내 곁을 떠났다. 난 이 세상에서 우리 아빠를 제일 사랑하는 딸이었지만 아빠에게 사랑한단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난 후회하고 있었다. 그토록 사랑하면서 평생 그 한마디 못하고 무뚝뚝하게 살아온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건 내 인생 가장 큰 실수이자 비극이었다. 고장 난 내 눈물장치는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 매일 같이 스스로를 고통에 담금질 하며 울기만 하는 바보가 되었다. 

나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게 아니었다. 

한동안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내게 한 언니가 인도란 나라에 대해 들려주었다. 

언니는 내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도시 바라나시' 에 가보라고 말했다. 언니의 말처럼 그곳에 가면 내 고통과 절망이 사라질까? 그 때까지 난 인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홀로 인도로 떠났다.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홀로 골목길을 걸으며 지나가는 시체들에 길을 내주었다. 갠지스 강변 한쪽에 앉아 가지런히 놓인 시신들이 타들어 가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삶과 죽음이 함께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 곳에서 난 다시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다.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울기만 했던 바보는 첫번 째 인도 여행 이후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인도 여행 중에 가족이 생겼다. 


히말라야 라다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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