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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Oct 17. 2021

스님도 모기 잡으니까 비건도 모기 잡는다

하우스 메이트가 있으면 1등으로 좋은 점

 우리의 낡은 벽돌집에는 틈이 많아서 벌레가 자주 나온다. 겨울에는 그나마 낫지만 여름이 고비다. 바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칠 때도 있고,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나방이나 돈벌레도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게 들어온다. 전에는 자꾸 무섭게 툭, 툭, 소리가 들리고 이상하게 뭔가에 맞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까 검지 손가락 크기의 귀뚜라미였다. 그때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서 처음으로 아랫집 주인집에서 전화가 왔다. 진짜 큰일이 난 줄 아셨다고.


 난 벌레를 못 잡는다. 무섭다. 벌레를 치우려면 직간접적으로 나랑 닿아야 하는데, 그러느니 나랑 접촉이 없는 벌레 친구를 공포에 떨며 그저 지켜본다. 차라리 벌레가 어디로 숨는 게 낫다. 적어도 내 눈에는 안 보이니까. 그렇게 방 안에서 커져가는 코끼리를 외면하는 게 이박이 벌레를 대하는 스타일이다.


 반면에 도고는 벌레를 잡는다. 도고는 모든 벌레를 잡을 수 있다. 다리다 6개던 6개 이상이던 도고한테 적수가 못된다. 그래서 나는 벽돌집에서 벌레를 보면 도고를 불렀다. 하도 불러서 도고가 부르는 요령도 알려줬다. 벌레가 나오면 자기가 놀라지 않게 차분하게 부르고 벌레의 인상착의를 설명해달라고. 내가 도고를 호출해서 벌레를 신고하면 도고는 휴지로 벌레를 휘리릭 잡아서 변기에 내렸다. 도고는 내 기준 최고의 하우스 메이트다.


 다만, 도고가 비건이 되고 나서는 조금 변했다. 벌레를 잡으면서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한 거다.


 "난 비건이라 고기도 안 먹는데, 벌레를 죽이는 게 맞을까?"


 도고의 혼란은 곧 이박의 위기였다. 벌레 잡아주는 하우스 메이트가 없어지면 앞으로 벌레는 누가 잡으라고! 그래서 도고가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마다, 나는 도고 옆에 찰싹 붙어서 당근을 뿌렸다.


 "야, 도고 덕분에 오늘도 벌레 걱정 없이 꿀잠 자겠다! 혼자 있었으면 계속 소리 질렀을 텐데 도고가 최고네! 집에 도고 없었으면 어쨌을까 몰라. 혼자 살았으면 벌써 집 버리고 울면서 도망갔다! 도고는 우리 집 지킴이! 최고의 하우스 메이트! 이박 선정 서울 최고 매력왕!"


 그래도 도고가 힘들어하면, 나는 설득하는 방법을 썼다.


 "넌 우리 집을 지키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나라가 혼란할 때마다 죽창을 들고 일어서는 승병 같은 거야. 스님들도 살생 안 하고 고기 안 드시잖아. 그치? 그리고, 요새는 절에서도 에프킬라 쓴대."


 그렇게 말하면 도고는 '그래?' 한다. 그래도 찜찜해 보인다.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면 능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한 회사원의 입장으로서, 최고의 하우스 메이트를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벌레를 방생한다.


 사실 벌레를 방생하는 건 도고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담장 밖으로 방생한 벌레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온 이후로(진짜 그 벌레였다! 두 마리가 들어왔던 게 아니라, 한 벌레가 두 번 들어온 거다!) 벌레를 죽이냐 살리냐 화두가 떠오른 거다.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던지라 벌레를 비닐봉지 안에 잡아놓고 방생과 변기의 토론을 이어가던 우리. 승자는 도고였다. 최고의 하우스 메이트가 고민이 된다면, 내가 들어줄 수밖에.


 대신, 우리는 벌레를 더 먼 곳에서 방생하기로 했다. 벽돌집 코앞에 있는 동네천 고수부지 말이다. 집 밖에 풀어놨는데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건 그만큼 그 환경이 별로였다는 거니까 벌레가 살기 더 좋은 곳으로 니즈를 맞춰준 거다. 설마 거기서부터 또 따라오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도 있고.


 여전히 도고는 벽돌집 벌레 담당이다. 여전히 도고는 벌레 잡기를 망설이지만, 이제는 죄책감보다는 귀찮음이다. 내가 하도 벌레를 못 잡고 벽돌집에는 벌레가 너무 많아서. 어떤 관계든 아쉬운 사람이 지는 거라서 나는 벌레가 나올 때마다 도고한테 살랑살랑 끼를 부린다. 잡아주면 같이 방생하러 나갈게, 오는 길에 과자 사 오자, 하고.


 단, 벽돌집에서 절대 살아나갈 수 없는 벌레가 있다. 모기다. 스님도 모기를 잡는 것처럼 도고도 모기는 잡는다. 불자도 비건도 아직 모기는 용서할 수 없나 보다. (나야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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