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확신한다. 콩고기는 비건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인이다. 애초에 '콩으로 만든 고기'라는 게 말이 안 된다. 고기면 고기고 콩이면 콩이지 왜 콩으로 고기 맛을 내려고 한담? 그렇다고 그 맛이 진짜 고기 같은 것도 아니다. 겹겹이 쌓아서 눌러놓은 유부 맛이다. 어떤 콩고기는 지우개 씹는 맛이 난다.
'비건을 시작하면 앞으로 고기 대신 이런 걸 먹어야 해요!' 하고 콩고기를 들이밀면, 누가 비건이 하고 싶을까? 인류가 수렵을 시작한 뒤로 쌓아놓은 수천수억 가지 고기 맛있게 먹는 법을 버리면서 말이다.
우리의 첫 채식 음식점은 인사동 골목길 안쪽 한식당이었다.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지 메뉴판에 영어와 한자 일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식당 안 손님들도 우리 빼고는 다 외국인이었다.
도고는 비건을 시작하고 처음 하는 외식이었고, 나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걸 즐겼다. 우리는 신나서 채식 고추장 불고기와 돈까스, 양념치킨을 시켰다. 우리가 아는 음식들을 채식으로 먹으면 어떤 맛일지가 궁금했다. 맛이 똑같지는 않아도 새로운 매력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우리는 수저를 들었다.
음... 우리는 먹는 내내 말을 잃었다. 돈까스에 들어간 콩고기는 질겅질겅 뻑뻑했고, 고추장 불고기는 질겅질겅 흐물했다. 양념치킨은 튀김옷이 너무 두꺼워 씹기가 어려웠다. 고기 뜯을 때보다 더 강하게 물어뜯은 양념치킨 안에는 튀김옷보다 연하고 약한 정체불명의 익힌 마늘색 채소가 들어있었다. 전체적으로 양념이 너무 맵고 짜서 둘 다 음식을 남겼다. 제발 그 식당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식이 다 그런 거라고 알고 가지 않았기를!
음식을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식당 문 앞에 방문 연예인 싸인을 붙여놓듯 채식을 하는 유명인 사진을 붙여 놓은 걸 발견했다. 그중에 마이클 잭슨이 눈에 띄었다. 잭슨 선생님. 선생님은 채식을 시작하면 이런 콩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콩고기를 먹으면서도 채식이 즐거우셨나요? 신발장 앞에는 냉동 콩고기가 가득한 유리문 냉장고가 있었다. 설마 다른 비건 식당도 저 콩고기로 똑같은 요리를 하는 건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물론 위 식당이 특이 케이스인 것도 맞고, 맛있는 비건 식당이 있는 것도 맞다. 도고랑 나도 가끔씩 먹고 싶다, 하고 떠오르는 비건 식당을 찾았으니까. 하지만 대체적인 비건 음식에는 맛없다는 이미지가 깔려있다. '맛있는 비건 음식도 있는데요!'하고 반박을 하면 받겠다. 하지만 그게 논비건식과 비교해서 맛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절레절레다.
비건 음식은 맛없다. 그리고 그게 나를 포함한 잠재 채식 고려 인구 수 만명(너무 애매한가?)의 결심을 방해한다.
채식은 왜 맛없을까? 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까? 나는 그 이유를 콩고기에서 찾았다.
콩고기를 처음 먹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고기의 식감은 절대 아니니까. 고기도 아니면서 콩'고기'라고 이름 붙여 놨으니 고기 맛을 기대하고 먹는 게 당연한데, 그게 불린 유부맛이라면? 아무리 나 같은 유부 러버라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고기'라는 말에 우리는 기대하는 맛과 식감이 있다.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콩'고기'는 '고기'로서 맛이 없는 거다.
조리 방식이나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기존 음식 이름을 차용하는 채식 요리가 많다. 콩고기를 대표로 채식 버팔로윙, 채식 치킨, 채식 함박 스테이크 등 고기류 이름을 넣는 요리가 자주 보인다. 그런데, 고기 소비를 줄이기 위해 시작하는 채식인데 비건 요리 이름에 고기 메뉴 이름을 붙이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비건이 고기 못 먹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이건 꼭 고기가 너무너무 먹고 싶은 사람이 대체 음식을 먹는 느낌이다.
대체 음식은 그걸 못 먹는 사람만 먹는 거고. 결국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만 비건식을 먹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채식은 그 이미지만큼 맛없지 않다. 오히려 맛있는 음식들도 많다. 앞에서는 유부 겹친 맛이라고 잘근잘근 씹어놨지만, 사실 난 콩고기가 싫지 않다. 유부를 좋아하거든. (첫 비건 식당이 특이 케이스였지만) 콩고기를 잘 볶으면 젓가락이 자꾸 가는 고소한 반찬이 된다.
그래서 난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채식이 맛없다는 이미지를 만든 건 바로 채식 그 자체라고. 채식하는 사람들이 샐러드만 먹나? 하는 건 논비건의 편견이지만, 논비건들이 비건식을 논비건식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게 만든 데에는 비건 요리의 이름에 대 한 문제도 있다.
애초에 주재료가 전혀 다른 요리를 같은 카테고리에 묶어 경쟁을 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알리오 올리오와 크림 파스타는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지만, 두부 스테이크와 티본스테이크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애초에 둘은 다른 음식이니까.
비건식 발전을 응원하는 논비건으로서, 채식의 기존 이미지를 타파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사실 이제 고기 요리 이름에 속아 비건식과 눈물을 함께 삼키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고 고급진 방법을 제안한다. 이름하여 호텔 레스토랑 코스요리 작법
'불린 콩에 버섯을 곁들여 찰기 있게 빚은 경단'
콩고기 이름을 새로 지어봤다. 파인 다이닝에서 재료와 조리법을 요리 이름으로 구구절절 풀어놓는 걸 보고 생각한 방법이다. 주문할 때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뻘쭘하게 '이거랑 이거요...' 하게 만드는 단점은 있지만, 재료와 조리법을 적은 덕분에 낯선 음식에서 대충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할 수 있다.
들어가지도 않은 식재료를 연상시키는 것보다, 먹는 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을지 예상하고 주문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싫어하는 재료(콩이나 콩이나 콩!)가 들어간 메뉴는 피할 수도 있고 말이다.
태어나서부터 채식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나는 비건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비건을 하면서도 아는 맛이 그리울 때가 있겠지. 고기 메뉴 이름이 들어간 비건식은 그들을 위한 훌륭한 대체 음식이다.
다만 채식이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논비건은 '대체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채식 요리를 좋아하는 논비건으로서, 채식이 맛없다는 이미지를 벗으면 소프트 비건이 훨씬 늘어날 거라고 확신한다. 고기를 먹든 먹지 않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건 동물의 본능이거든!
코로나 시국을 맞아 수많은 맛집들이 문을 닫았다. 도고랑 내가 좋아하던 병아리콩 패티 버거집 역시 잠정 운영 중단이다. 서울 사람들 전부를 고객으로 둔 일반 음식점도 운영이 어려운데, 그보다 고객층이 얇은(코어 팬은 많겠지만!) 비건 요릿집은 또 어떨까?
더 이상 서울의 맛집을 잃고 싶지 않기에, 구구절절아마추어의 솔루션을 남긴다. 부디 모두 살아남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