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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Oct 24. 2021

갑작스러운 취업, 그리고 비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새내기 비건과 사회인이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

 2019년은 벽돌집에 많은 일이 벌어졌던 한 해다. 도고는 비건을 시작했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꿈꾸던 회사에 취업했다.


 그즈음이 벽돌집 두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가벼운 시기였을 거다. 사람이 홀쭉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취업이요 다른 하나는 비건이다.


 우리는 각각의 이유로 홀쭉하게 말랐다. 둘 다 건강한 방법이 아니라는 건 보증한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다이어트 비법을 기대하고 이 글을 읽으러 온 사람은 기대를 버려주시기를. (혹은 이 묶음의 다른 글을 읽으셔도 좋습니다. :D)


 날 마르게 한 건 회사 스트레스였다. 입사한 주부터 야근을 했는데, 인턴임에도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일했다. 야근 식대는 회사에서 지원해주니까 밥을 먹고 일하라던 사수는 그다음 달, '인턴은 야근 식대 적용이 안 된다더라' 하는 말만 던지고 칼퇴했다. 나야 대환영이었다. 안 그래도 밥값이 비싼 강남구에서 열 장이 넘는 식대 영수증을 올리기도 눈치 보였으니까.

 그렇게 매일 저녁을 밖에서 혼자 해결했다.


 나는 아직 내 음식 정량을 모른다. 눈앞에 음식이 남아 있으면 계속 집어먹는다. 금붕어도 배부르면 밥 먹기를 멈춘다는데, 나는 그걸 모른다. 더 최악은 내 스트레스 해소법이 먹기라는 거다. 정말 힘든 날에는 메뉴 두 개를 한 번에 먹고도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산다.

 같이 음식을 먹는 누구라도 있으면 먹는 속도를 맞춰 먹기를 멈췄을 텐데. 인턴 이박은 혼자였다.


 그렇게 먹고 돌아온 날엔 꼭 속이 쓰려서 서너 시에 잠에서 깼다. 삼십 분 앉아서 졸다가도 속이 가라앉지 않으면 토하러 일어났다. 괜히 적당히 토했다가 또 아파서 깰까 봐 아예 처음 먹었던 음식이 보일 때까지 변기와 끝장 싸움을 했다.

 먹는 양이 많음에도 몸무게는 도통 늘지 않았다. 오히려 기력이 떨어져  병뚜껑도 혼자 못 땄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딸려오는 손떨림과 두근거림은 덤이었다.


 그즈음 도고의 육체가 내 마음과 같았다. 살이 죽죽 내려 뼈만 남았다.

 도고가 마르는 건 식습관 변화 때문이었다. 도고의 육체는 갑자기 바뀐 식습관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뎠다. 그 다양한 채식 형태 중에서도 비건이었다. 갑자기 먹는 음식이 바뀌니까 체중이 갑자기 줄었다. 하루아침에 고기를 끊어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그동안 조금씩 부식이나 반찬으로 먹던 음식들을 '주식'으로 먹으면서 생긴 문제였다.


 도고는 자꾸 몸이 가렵다고 했다. 원인은 콩이었다. 육류와 부산물을 콩 가공식품으로 대체했는데 도고는 콩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콩고기, 두부, 두유 같은 콩 식품을 먹으면 도고는 몸이 간지러웠다. 심각할 때에는 발갛게 피부가 달아오르며 두드러기가 났다.


 "나 여기 간지러운데 뭐 났는지 좀 봐줘."


 도고가 걷어낸 등에는 발갛게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었다. 나는 두드러기보다 옆구리를 타고 등뼈 쪽으로 도드라지는 갈비뼈 모양이 더 무서웠다. 이러다 도고가 죽을지도 몰라! 비건의 좋은 점이나 채식의 의미와는 별개로, 그땐 정말 심각하게 비건을 말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도고는 비건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도고는 발품을 팔아서 여러 채식 식료품을 찾았다. 비건 페스타에 갔다가 신기한 음식도 많이 찾았다. 주말마다 도고는 서울의 채식 식당을 쏘다니며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두부만이 대체하기 아쉬운 유일한 재료였는데, 콩 섭취가 줄어드니까 두부 정도는 먹어도 몸에 변화가 없었다. 근성의 승리였다. 이제 도고는 마르기는 했지만 전처럼 무섭게 마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몸무게가 붙었다.


 도고는 건강하게 견디는 법을 스스로 찾은 거다. 그리고 버티기를 끝낸 도고는 지금까지도 착실히 비건으로 살고 있다. 아주 행복하고 건강하게 버티다가 이제는 비건으로 우뚝 섰다.


 나한테도 버티기는 가장 당연한 선택지였다. 원하던 대기업에서 인턴 기간을 버티면 정직원을 시켜준다는데, 야근이 대수야? 동기들이 얼마나 힘든 취준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남들이 들어오고 싶어서 난리인 회사에 들어왔는데, 여기서 버티지 못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놈의 어른스러움이 날 '존버'하게 만들었다구.


 그 생각이 변한 건 인턴을 한 달 남겨놓은 어느 평일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누워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어? 나 왜 울지?' 싶었는데, 사실 왜 우는지 알았다. 회사가 너무 가기 싫었다.


 왜 나는 정직원도 아니고 인턴인데 이 고생을 해야 하나. 그런데 인턴이니까 정작 아직 사회에 발 하나밖에 못 걸쳐 놓은 건데 이렇게 투정 부려도 되는 건가. 남들 다 하는 사회생활이 이런 건가. 내가 못하는 건가.


 마음속에서 사측 이박과 이박측 이박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뒤엉켜 굴렀다. 덕분에 속이 시끄러워진 나는 다시 침대에서 내려와 변기에 머리를 박았다. 몇 번 웩웩거리니까 저녁에 먹은 마라샹궈 중국 당면이 온전하게 튀어나왔다.


 '와! 그만둬야겠다!'


 도고의 비건을 견디게 만든 목표나 열정, 호기심이 나한테는 없었다. 그 셋 중 하나라도 있었으면 퇴사 결심을 망설였을 거다. 하지만 어쩌겠어. 회사가 나한테 남긴 건 변기 물을 내려도 빨갛게 남는 기름기뿐인데. 변기 솔에 바디워시를 짜서 기름기를 문지르면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내 퇴사는 도고의 해방이었다. 변기에서는 음식을 토하고 도고 앞에서는 회사 욕을 토해내는 나날과 이제는 안녕이니까! 도고는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한 번도 회사에 다닌 적 없는 도고는 이제 익숙해진 내 레퍼토리를 똑같이 읊으며 회사원처럼 회사 욕을 했다. 아직 퇴사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격려를 받았다.


 "그래. 고생 많았어."


 맞아! 나 진짜 고생 많았어. 나와 맞지 않던 빈자리에 억지로 나를 욱여넣느라 너무 수고했어. 그동안 버티느라 구겨져 주름진 부분들은 감쪽같이 다려지지는 않겠지. 그래도 착착 반듯이 펼쳐서 다시 나한테 맞는 자리를 찾을 거야. 그때까지는 푹 쉴 거야! 졸업 전에 취업해서 지금까지 달린 거니까 반년은 쉬어야지.


 그렇게 나는 '존버'를 마쳤다. 버틸 생각을 할 때에는 나 스스로가 남들보다 떨어지는 관심병사 같았는데, 퇴사를 결심하니까 그 전쟁터에서 귀향하는 생존자가 된 기분이었다. 누가 전에 그랬다. 남들보다 나은 점이 하나 있으면 남들이 몰아붙여도 여유가 생긴다고. 슈퍼맨이 신문사에서 그렇게 구르고 깨져도 개의치 않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내 앞에서 짖어라! 난 퇴사할 거니까.


  물론, 퇴사를 결심했다고 해서 몸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하도 먹고 토하고를 잦게 해서 배가 부르면 자연스레 토기가 올라왔다. 그래도 그만 둘 마음을 먹으니까 견디는 게 쉬워졌다. 전에는 없던 목표가 생겨서 그렇다.

  목표는 12월 셋째 주 인턴 종료일. 그때 회사를 떠나기로 다짐했다.


 그러니까 처음에도 말했듯, 이 글은 다이어트에 관한 게 아니다. 건강한 운동과 식이를 병행하며 살을 빼지 않는 이상, 갑자기 홀쭉해지는 건 몸과 마음의 변화(특히, 부정적으로) 때문이라는 걸 분명히 알아주시기를!


 변화와 받아들임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뭐든 변하면 적응의 시기가 필요하다. 철썩철썩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파도를 타고 들어가 서핑을 즐기는 것도 멋지지만, 젖은 신발을 말리면서 모래밭 일광욕을 즐기는 것도 좋지. 맞서고 견디고 물러서고 넘어지고, 그중에 답은 없다. 그때는 옳아도 지나면 틀리고, 지금은 틀린 줄 알았어도 사실은 맞을지도! 중요한 건 내가 망가지지 않는 거다.


 번데기 앞 개불처럼. 아직 누구 앞에서 잡을 주름은 없지만 경험한 바를 말해보자면, 나는 물이다. 나에게 옮은 쪽으로 흐른다. 물길이 어떻게 나있던 한테 의지와 목표가 있으면 구불구불 흘러도 목적지는 같을 거라는 말씀. 내가 변하지 않는 한 같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면, 조금은 천천히 흘러도 좋다. 햇빛에 말라서 바다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보다, 그늘에 고여 이슬을 모으는 것도 방법이지!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새 회사에 입사해 1년 넘게 직장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인턴을 하던 곳보다 큰 회사는 아니지만, 그만큼 기회가 많고 사람과 가깝다. '이 회사를 만나려고 거기를 퇴사했구나!' 할 만큼!(팀장님 보고 계시는가요?) 원하던 회사를 퇴사했는데도 나는 원하던 일을 하고 있다. 나에게 옳은 쪽으로 잘 흐르고 있다.


 도고의 비건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아직 흐르는 중이라면, 도고는 깊은 댐을 채우는 중이다. 이제 도고는 채식 가공식을 먹는 단계에서 벗어나 직접 요리를 시작했다. 치즈맛이 나는 효소랑 모짜렐라처럼 늘어나는 두유 치즈가 냉장고에 쌓인다. 식당을 차릴 기세로 공부하는 모습이 대단할 따름이다.


 우리는 각자의 변화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서로에게 받는 좋은 영향은 벽돌집 라이프의 큰 장점이다. 우리가 우리 몸무게를 되찾은 것처럼, 삶의 균형 무게 중심을 잡게 만든 덕은 다 서로에게 있다. 비건이던 논비건이던, 함께 있는 서로에게 고마운 나날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를 빌어 나의 직장 히스테리와 스트레스를 받아주며 함께 코인 노래방 아이스크림 밤 산책을 나서 준 도고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남긴다. 매일 신발도 안 벗고 신발장 앞에 누워 찡찡거리던 놈을 일으켜 씻기고 갈아입혀 침대까지 눕혀준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쓰는 이박이 있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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