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채식하는데 주방 세제까지 바꿔?
비건. 동물권 다음 환경을 향한 움직임
종류가 다양한 채식주의 중에서도, 비건은 가장 엄격하다. 크게 고기 유제품 난류를 못 먹는다고 하지만, 비건이 먹지 않는 건 더 많다. 동물 부산물이 생각보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배스킨 라빈스 블랙 소르베도 비건 아이스크림으로 홍보했지만 오징어 먹물이 들어가서 안 된다. 꿀벌 노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꿀도 안 된다. 젤리의 주재료인 젤라틴도 동물 부산물이라 안 된다. 와인 발효 효소도 동물성이라 비건 와인이 따로 있다고. 동물이 들어가지 않는 가공 식품은 정말 적다. 도고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사실들이다.
비건 도고 덕분에 나도 배우는 게 많다. 채식 노출도가 높아지니까 풀때기가 맛없다는 편견도 없어졌고, 비건 빵도 즐긴다. 시리얼과 먹는 우유는 아몬드 브리즈로 대체할 수 있고, 함께 있는 주말에는 도고와 식단을 맞춘다. 회사에서도 가끔은 샐러드를 먹는다. 식단 선택지에 채식을 추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먹기를 즐기는 사람이고, 채식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완전한 비건이나 채식인이 된 건 아니지만, 나는 이제 채식에도 거부감이 없다. 매일 고기 고기 노래를 부르던 대학생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정도면 논비건 치고는 비건이랑 같이 잘 사는 거 아닌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 가죽은 안 쓸 거야."
하루는 도고가 그랬다. 마침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라 가죽으로 된 가방과 신발, 옷이 자주 보이는 때였다. 나는 도고의 결심에 고개를 끄덕끄덕 해줬다. 동물권을 생각해서 비건을 시작한 건데, 동물 가죽으로 된 신발을 신는 것도 웃기니까! 도고는 한 번 결심한 일에 대해서는 단단한 심지를 세우는 사람이다. 곧 몇 없던 도고의 가죽 제품들이 창고로 들어가거나, 새 주인(주로 나!)을 찾았다.
"비건 화장품을 써 보려고."
도고가 처음 보는 화장품을 가져왔다. 동물성 원료를 빼고 동물 실험도 거치지 않은 거라고 했다. 이 부분도 나는 찬성이었다. 그 끔찍한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것도 좋았고, 화장품이 순한 것도 좋았다. 그날 나는 도고가 손등에 짜준 비건 에센스를 바르며 생각했다. 도고처럼 내 물건들을 비건으로 바꾸는 것도 괜찮을지 몰라. 하지만 그때의 나는 도고가 사 온 화장품 패키징이 종이팩이었다는 것에서 그다음 스텝을 읽었어야 했다.
"우리 주방세제, 비누로 바꾸자."
이미 우리가 쓰는 세제는 동물 실험 없는 세제였지만 우리는 다른 세제를 찾는 중이었다. 세제에 붙은 패키지 스티커에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는데, 그게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거기 적힌 내용은 대충 설거지 때문에 아내 손이 부르틀 걸 생각해서 더 순한 세제를 선물한다는, 되도 않는 로맨티스트 행세였다. 아내 손이 부르트는 게 세제 때문이겠어, 설거지 때문이겠어? 손이 부르틀 때까지 설거지를 시키는데 대신해줄 생각은 안 해? 우리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 글을 읽는 게 싫어서 스티커 위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 가렸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다음 주방 세제를 찾고 있었다. 이왕이면 과일도 닦아 먹을 수 있을 만큼 순한 걸로. 그때 도고가 주방 비누를 구해왔다. 말 그대로 주방 식기에 쓰는 비누였다.
도고는 세제 비누의 장점을 줄줄이 설명해줬다. 그냥 세제보다 성분이 강하지 않아 맨손으로 설거지할 때에도 지금보다 덜 따가울 거고, 과일을 씻어도 괜찮다고. 액체 세제보다 양 조절하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플라스틱이 덜 나와서 환경적이라고. 정말 도고가 가져올만한 비건 주방 비누였다. 아무리 도고의 비건을 응원하는 나지만, 이번에는 쉽게 대답을 못했다.
주방 비누라... 살짝 읭?스럽기는 했다. 비누가 순하기는 하지. 그런데 굳이 주방 세제를 비누로 써야 해? 마트에서 팔지도 않아서 매번 주문해야 하는데? 또 설거지를 할 때마다 손으로 하나하나 거품내서 해야 한단 말이야? 마음은 혼란스러웠지만, 눈앞의 도고한테 당장 답을 줘야 했다.
"그런 게 있구나. 일단 킵해놓고 저거 다 쓰기 전까지 고민해보면서 더 좋은 게 있는지 찾아보자."
마침 못난 남편 주방 세제는 한 통이 더 남아있었고, 우리는 둘 다 긴 여행으로 집을 비우기 직전이었다. 덕분에 벽돌집 세제 생활은 수명을 조금이나마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음식을 채식으로 바꾸는 일과 생활 용품을 비건으로 바꾸는 일. 이 두 가지는 비건 도고에게는 같지만 논비건 이박에게는 다른 일이었다. 음식은 끼니마다 바꿀 수 있지만, 생활 용품은 한동안, 어쩌면 평생 써야 하는 거니까. 음식을 먹는 데에는 귀찮음이 없지만 생활용품이 바뀌면 불편하기도 하고.
환경 문제 심각한 건 당연히 알고 플라스틱 쓰레기 많이 나오는 것도 아는데 바꿔야 하나? 싶었다. 벽돌집 주방 세제를 비누로 바꾸는 게 망설여지는 건 순전히 귀찮음과 불편함 때문이다. 그것도 안 겪어본 거니까 내가 상상해서 만든 귀찮음. 불편함. 바로 그거.
도고가 채식하는 거야, 내가 다른 게 먹고 싶을 때는 식사를 따로 하면 되는 거고. 도고가 사용하는 물건들을 비건으로 바꾸는 것도 응원한다. 하지만 나랑 같이 사용하는 공동의 영역까지 바뀐다니, 제안뿐이었는데도 거절할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샴푸도 샴푸바로 바꿔볼래?"
그래서 도고가 생활 용품을 대체하자고 할 때마다 조용히 말을 돌렸다. 식생활 이외의 것까지 바꿀 생각은 또 없던 터라. 명확한 목표(와 우주적 메시지)가 있어서 비건이 된 도고랑은 다르게 비건 하우스 메이트에 묻어 얼레벌레 세미 채식을 하던 나한테 이번 발걸음은 살짝 버거웠다.
만약 퇴사가 없었더라면 나는 칼에 베이는 물처럼 그래, 그래, 하면서 일회용품 라이프를 이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