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만난 10%의 환경 주의
직접 보니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더라.
19년 12월. 벽돌집 이박과 도고는 시한부 자유를 어떻게 즐길지 고민 중이었다. 나는 다시 취준 하기 전에, 도고는 내년 복학하기 전에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낼 수 있을까 하루의 기력을 다 쏟아가며 궁리했다.
그렇게 결정된 건 바로 여행! 아, 둘이 같이 간 건 아니다.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서 같이 사는 것도 모자라 함께 떠나기까지 할 만큼, 그 정도로 도고랑 애틋한 건 아니라서.
도고의 유럽 여행이 먼저였다. 복학까지 남은 삼 개월을 알차게 쓰겠다고 떠난 도고는 3월 첫 수업 전날 돌아온다고 했다. 부러워! 괜히 나도 싱숭생숭했다. 도고는 벽돌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라고 했지만, 퇴사하고 마음 허전할 때에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도 떠나기로 했지! 제주도 한 달 살이로!
하지만 그 계획은 퇴사 이 주 만에 바뀌었다. 이름하여 '초년생 증후군'(내가 지었다) 때문에. 초년생 증후군이란, 쉼을 두려워하고 공백을 멀리하며 최대한 열심히 인생 경력을 채우고자 하는 행동으로, 주로 스펙을 쌓고 인턴을 전전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퇴사를 했다는 즐거움은 딱 일주일 갔다. 그 이후에는 점점 초조함이 올라왔다. 중증 초년생 증후군 때문에 졸업도 전에 취직을 했던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 나, 제주도에 가면 거기서도 이력서 쓰고 면접 보러 서울에 왔다 갔다 할 거 같아."
그래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아예 국경을 넘어버리면 거기서도 취준을 하지는 않겠지! 마침 치앙마이 한 달 살이를 하러 간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슬쩍 거기 발을 걸쳤다. 내가 삼 주 먼저 가있다가 외로울 때쯤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그렇게 출발 2주 전에 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완벽한 쉼을 위해! 그곳에서 나는 완벽한 쉼과 함께 지구적인 삶을 발견했다.
치앙마이 첫인상은 이랬다. '국적 없는 마을'.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짧게는 이삼일에서 길게는 몇 년씩 치앙마이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올드 타운에서도 태국 퓨전 음식과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팔았다.
놀라운 건 대부분의 식당에서 비건 음식을 팔았다는 거다. 영어 메뉴판이 있는 식당에는 대부분 베지 메뉴가 있었다. (영어 메뉴판이 없는 곳은 체크를 못했다. 태국어는 못 읽어서!) 현지분한테 추천받아서 간 어떤 식당은 아예 비건 식당이었다. 그분이 비건이셔서 비건 식당을 추천해주신 건가? 물음표 잔뜩 달고 시킨 병아리콩 패티 버거는 지금까지도 이박이 손에 꼽는 올타임 버거 베스트 5에 든다. 그곳의 비건 맛집은 찐 맛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겨룬다. 놀라워라!
비건 음식이야, 한국에서도 먹었다 치고.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치앙마이가 가진 환경 친화적 분위기였다.
우선, 플라스틱 용기를 쓰는 길거리 노점이 몇 개 없었다. 대부분 바나나 잎 그릇 또는 얇은 나무 종이를 썼다. 일회용품을 쓰더라도 종이였고, 그것도 노점 옆에 앉아서 먹는다고 하면 그릇(다회용이라고 앞에 붙여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그릇이라고 쓴다. 애초에 그릇은 여러 번 쓰는 게 정상이니까!)을 줬다.
카페에서도 매장 이용객 음료는 유리컵에 담아줬다. 한국에서도 이건 이제 법으로 지정되었지만, 빨대까지 다회용은 아니다. 스타벅스에서는 종이 빨대를 주지만, 그걸로 프라푸치노를 먹다 보면 빨대가 불어서 결국 입으로 털어먹어야 한단 말이지. 종이 빨대 때문에 내가 프라푸치노를 끊었다고.
그런데 치앙마이에서는 빨대까지 다회용(이건 다회용으로 쓰겠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빨대는 다 일회용이었으니까!)을 썼다. 주로 유리 아니면 스테인리스였다. 처음에는 입술에 닿아도 찌그러지지 않는 단단한 빨대가 낯설었는데, 여행 중반쯤 되니까 빨대에 남는 싸한 냉기가 좋아졌다. 음료 트레이에 빨대 포장 비닐이 남지 않는 것도 깔끔하니 좋았다
살짝 걱정되는 부분은 있었다. 빨대를 하나하나 일일이 설거지를 다 할까? 이 빨대가 안전할까? (마침 우한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시기였다.) 내가 '이거, 좋긴 한데 그래도 일회용품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옆자리 외국인은 자기 파우치에서 개인 빨대를 꺼내 쓰더라. 아, 저런 방법이 있었네!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식당이나 카페 말고 나 같은 관광객들이. 친구들이 오기 전까지 혼자 움직이는 동안 현지인이나 다른 관광객들과 말 섞을 기회가 많았다. 텀블러에 개인 빨대를 꽂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그 모습이 나 중학생 때 동경했던 뉴요커 같았달까? 진지하게 치앙마이에서 가지고 다닐 텀블러를 하나 살까? 고민도 했는데 관뒀다. 이미 내가 맨 배낭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웠으니까. 또 한국에 돌아가면 선물 받아놓고 안 쓰던 텀블러가 찬장 가득 있었으니까.
그래도 한국에 돌아가면 텀블러를 쓰기로 결심했다. 텀블러를 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불편해 보이지 않았거든.
한국에서는 텀블러를 쓰는 사람을 자주 보기 어려웠다. 카페에서 텀블러 할인을 해준다고는 해도, 꼬박꼬박 들고 다니기 귀찮아 보였다. 살짝 유난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실천하는 사람이 주변에 여럿 보이니까 생각은 달라지더라. 내 주변에 스치듯 한 명을 봤을 때에는 내 생각대로 해석하게 되던 일이, 여러 명과 만나 대화하며 보게 되니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됐다.
소수의 움직임이 주류 문화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비율은 딱 10%라고 한다. 백 명 중 열 명만 움직임에 동참하면 문화가 되고 움직임이 된다. 10%가 주류라는 말로 묶기에는 적은 숫자일지라도,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눈덩이 불어나듯 불어난다. '저거 좀 이상하네?'와 '한 번 해 볼만 한데?'를 가르는 비중이다. 10%! 움직임을 위한 위대한 도약 같은 목표다.
한국에서, 내 주변 사람들 중 비거니즘과 환경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도고뿐이었다. 도고의 움직임이 나쁜 건 아니니까 말리지는 않았지만, 내 생활 반경을 '침범'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는 거부감이 든 게 사실이다. '굳이 저렇게 해야 해?' 싶었던 이유는 내가 벽돌집 밖에서 만나는 이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인지라, 남들과 다름을 바라도 같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지. 그게 비록 공공의 이익과 거리가 멀다 해도 말이다.
치앙마이에서,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10%를 보고 왔다. 치앙마이의 아름다운 여행객들은 머문 여행지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줄였다. 여행 기간 동안 다회용 빨대와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포장 용기는 법랑을 썼다. 군데군데 크게 있는 빈티지 마켓에서 구제 옷을 사서 걸쳤다. 호스텔에서는 필요 없는 물건을 다음 여행객을 위해 남기고 돌아갈 수 있게 아이템 선반을 세워 두었다.
치앙마이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비건 메뉴를 찾을 수 있듯, 마켓에서도 자연스럽게 다회용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비건과 환경 주의가 치앙마이에 녹아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내가 보고 온 건 단순한 치앙마이의 환경주의 10%가 아닌, 10%와 그에 물들어 함께 움직이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물론, 위에서 말한 환경주의적인 모습이 내가 경험한 모든 치앙마이는 아니다. 어떤 식당에서는 사이드로 음료를 시키면 플라스틱 빨대를 줬고, 어느 방송에 나왔다는 바쁜 덮밥집은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일회용기에 일회용품 식기를 줬다. 그릇을 쓰는 게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가게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다회용기가 보편화된 치앙마이였지만, 완벽하게 일회용품을 없애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도 나는 치앙마이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여행지라서, 쉬러 간 곳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라 선택지가 많아서. 매일 뭘 해야 할지 정해진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 여유로움과, 텀블러와 빨대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상하거나 특이하게 보지 않는 적당한 무관심. 치앙마이에서의 여유가 내 다음 계획의 밑거름이 된 것처럼 치앙마이의 채식인과 환경 주의자들이 이 움직임에 발들이고자 하는 이들을 '평범하게' 만든 것 같아서. 나는 치앙마이에서 만난 지구적 '평범함'을 한국에 가지고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치앙마이를 떠나오기 전, 타이티 라떼에 쓰는 찻잎을 샀다. 치앙마이에서 하루에 한 잔씩 마셨던 음료인데, 한국에서 치앙마이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씩 타마시려고. 마켓에서 스테인리스 빨대와 빨대솔도 샀다. 스테인리스 빨대 없이는 그때 내가 느꼈던 치앙마이의 타이티 라떼를 맛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빨대를 씻는 게 귀찮을 때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만난 멋쟁이 언니를 떠올려보려고 한다.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받아 스테인리스 빨대를 꽂아 마시던 그 언니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윙크를 날려줬다구. 내가 한국에서 그렇게 멋진 윙크를 날릴 수 있다면, 환경 보호에 동참할 한국의 10%도 금방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귀국하는 길, 도고가 제안한 주방 비누와 샴푸바가 더 이상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