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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Oct 24. 2021

고기 먹는 저도 비건인 가요?

유연한 비건. 부끄러운 비건. 작은 비건. 옷 잘 입는 비건.

 보통 주말 점심은 도고랑 먹는다. 둘이 요리할 기력이 없으면 시켜 먹는데, 그럴 때면 늘 식당은 도고가 고른다. 도고는 비건 메뉴가 있는 식당에서만 밥을 먹어야 하니까. 나한테는 선택지가 두 개다. 비건 메뉴를 먹거나, 육류가 들어간 메뉴를 먹거나.


 회사에 다니니까 평일 점심은 회사에서 먹는다. 보통 회사에서 다 같이 나가서 먹을 때면 식당 선택지는 국밥과 돈까스, 칼국수 정도다. 가끔 누가 샐러드 전문점을 제안하면 번쩍 손을 든다. 양상추에 오리엔탈 드레싱 먹고 싶어요!


 "비건이랑 사는데 넌 비건 안 해?"

 "너 혹시 단계적으로 채식하려는 거야?"


 도고랑 살면서 많이 받게 되는 질문이다. 안 그래도 요새 채식하는 사람도 많고. 채식의 지향점도 좋고. 게다가 같이 사는 사람이 비건이고. 남들이 보기엔 채식을 시작하기 딱 좋은 시기인 모양이다. 물론, 전에 비해 내 채소 섭취량이 늘기도 했고.


 하지만 날 채식인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회사에서 이거 먹겠다 저거 먹겠다 하기엔 레벨이 낮은 데다가, 가끔 초밥이 당기는 날이 있어서. 전처럼 고기 예찬도 안 하고, 비건빵의 참맛도 알게 됐지만 난 아직 논비건이다.


 채식이 좋은 건 알고 있는데, 아직 난 채식인으로는 각 잡힌 준비가 안 된 기분이랄까. 그런데 나 같은 사람도 비건으로 분류할 만한 기준은 있더라. 그래서 한 번은 날 잡고 내가 채식인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봤다.



 나는 플렉시테리언인가?


 대학생 때 햄버거를 좋아하던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을 플렉시테리언이라고 했다. 플렉시테리언은 채식을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고기를 먹는 채식 종류다. 친구는 적어도 우리랑 밥을 먹을 때에는 식당을 가리지 않았다. 집에서는 채식을 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난 상황에 따라 고기를 먹는 사람은 아니니까 플렉시테리언 탈락이었다. 플렉시테리언이라면 뿌리는 채식에 두고 채식을 못하는 상황에서만 육식을 해야 하는데, 나는 채식과 육식을 가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통 퇴근이 늦어질 것 같은 때에는 고기 메뉴를, 칼퇴가 가능할 것 같은 날에는 채소 메뉴를 선호한다. 고기 메뉴는 배가 쉽게 꺼지지 않고, 채소 메뉴는 더부룩하지 않으니까.



 그럼 샤이 비건인가?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읽고 알게 된 용어다. 비건이면 비건이지, 부끄러운 비건은 뭐람? 샤이 비건은 자기가 비건이라는 걸 밝히지 않고 채식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플렉시테리언이랑 비슷한 거 아닌가? 싶었다. 다만 사회 초년생 스러움을 곁들인... 분명 샤이 비건 중에서는 메뉴 선택권이 없는 신입들이 많을 거라고 나는 홀로 확신하고 있다.


 플렉시테리언이 아닌 내가 샤이 비건 일리가! 매 끼니를 사랑하는 나로서, 결코 메뉴 선택에 있어 샤이한 편이 아니다. 그게 샐러드든 돈까스든! (계속 샐러드 얘기만 나오는데, 사실 회사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채식은 도시락을 싸지 않는 한 샐러드뿐이다.)



 마이크로 비건은 어때?


 마이크로 비건은 '비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말 중 가장 가볍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비건을 지향하는 거다. 고기는 먹지만 크루얼티 프리 화장품을 쓰는 사람. 우유는 마셔도 가죽 제품은 쓰지 않는 사람. 논비건 식생활을 유지하되 월요일에는 채식을 하는 사람. 모두 마이크로 비건에 포함된다고 한다. 식생활을 넘어 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마이크로 비건인가? 싶지만 찜찜하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순수하게 동물권을 위한 행동은 아니란 말이지. 채식, 의미 좋지만 내가 리프레시하고 싶을 때마다 먹는 거고. 주말마다 하는 채식도 사실상 도고랑 밥을 같이 먹으려면 그렇게 먹어야 하는 걸. 동물 실험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기 때문에 로션도 에센스도 크루얼티 프리 제품은 쓰지만 여전히 가죽 신발을 신는다.


 이게 정답이다, 하는 건 없겠지만 비건이 이래도 되나? 싶은 건 있다. 내가 비건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나보다 채소 덜 먹는 사람도 비건이라고 그러던데, 그럼 나도 비건 해도 되는 건가?



 에이, 패션 비건인 거 아니야?


 난 몰랐는데, 비건과 채식주의를 멋있게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의미랑 지향점이 선해서 그런가? 아무튼 멋있으니까 비건 한다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비건 도고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신기할 뿐이다. 저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걸 멋 때문에 한다고?


 비건이 되려면 외식할 때마다 갈 수 있는 식당을 찾아야 하고 음식 성분을 살펴야 한다. 화장품을 살 때에도 동물 실험 여부를 체크하고 의류 성분도 꼼꼼히 봐야 한다. 그렇게 비거니즘을 실천해도 다른 사람들이랑 밥을 먹기 전까지는 티가 나지 않는 게 비건이다. 그런데 굳이 '제가 비건이라서요.' 한 마디 하려고 이 모든 걸 한다? 나는 사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비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채소 좋아하고 소비할 때 생각 한 번 더하는 윤리적 소비 지향인? 기껏 잘 쳐줘야 비건 지향인?


 삼겹살은 먹고 싶지만 동물권은 지키고 싶어. 가죽 소비는 줄이고 있지만 최애 첼시 부츠를 버릴 순 없어. 비건빵도 좋지만 꿀 찍어 먹고 싶어!


 몸에 밴 익숙함을 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머리로는 옳은 방향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하는 건 비건이라기보다는 문득, 문득, 동물과 지구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뿐이니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하게 만든 데에는 도고의 공이 크다. 도고는 결심 첫날부터 지금까지 단호한 비건을 이어오고 있다. 음식부터 생활환경과 실천까지. 지구를 위해 점진적으로 움직이는 도고는 지금 친구들과 비건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다.


 내게 있어 윤리적 소비와 먹기는 늘 도고와의 동거에서 시작했다. 하우스 메이트가 하니까 나도 하는 거지. 우리는 생활비를 같이 쓰니까 같이 하는 거지. 그렇게 끌려가듯 따라가듯 발을 들인 후에는 벗어나지 않고 천천히 물드는 중이다.


 타의로 입맛을 들인 채식. 타의로 바꾸게 된 생활 용품. 타의로 생각하게 된 환경이지만 한 번 발들인 이상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알게 된 이상 모름으로 돌아가기 어렵지. 비록 그 속도가 더디더라도 나는 옮음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도고는 내게 물길이 모여 점점 굵어지는 물줄기를 보여준 사람이다.


 아직 나는 스스로를 논비건으로 정의한다. 엄격한 비건, 도고 옆에 있으면 스스로를 채식인이라고 부르기 부끄럽거든.


 하지만 내게도 지구와 환경이라는 목표가 생긴 이상, 천천히 그 방향으로 흘러갈 예정이다. 하우스 메이트 도고랑 같이. 그리고 나보다 먼저 흐르던 이들과 그 물길을 타고 따라올 모든 사람들과 함께! 조금 더 당당한 채식인이 되면 그때 날 비건이라고 부를 생각이다. 그때도 도고와 벽돌집에 함께 살고 있지 않을까?


 둘이 사는 장점이 바로 이거다. 같이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더 '지구적'으로 바뀌어 나가는 벽돌집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비건이랑 같이 사는 재미다.


+

 도고한테도 물어봤다. 나 채식인이야? 내 예상대로 엄격한 도고는 이마를 찌푸리고 오래 생각한다. 아마 딱! 잘라 아니라는 생각을 둥굴리고 있는 거겠지. 도고가 굴리고 굴려 꺼낸 말은 이랬다.


 "그건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 이랬어."


  딱 도고가 내놓을만한 결론이었다. 채식인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속 시원했다. 아직 채식인의 의무와 책임에서는 자유로운 것 같아서. 지금 내가 지킬 수 있는 만큼의 단계. 거기서 천천히 발 디뎌 나가다 보면 도고의 '썽'에 차는 채식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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