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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Oct 24. 2021

오늘도 평화로운 비건 논비건 벽돌집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할 권리

 벽돌집 이박과 도고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고의 채식 처방으로 버려놨던 식습관을 고친 이박은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신입의 패기를 마음껏 뽐낸다. 어느새 학교를 졸업한 도고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작업도 하고 연극도 하고 전시도 하고 비건 식당도 한다.


 많이 다르던 비건과 논비건의 라이프는 벽돌집에서 융화되어 이제는 꽤 엇비슷해졌지만, 정작 이박과 도고가 같은 식탁에 앉아 밥 먹을 시간은 없다.


 채식하는 도고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논비건인 나도 많이 변했다. 우선 고기중심적인 식탁에서 벗어난게 가장 크다. 도고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 고기 소비는 크게 줄었으니까. 또 소비를 할 때마다 한 번 더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 화장품을 살 때에도 크루얼티 프리, 옷을 살 때에도 동물 섬유를 체크한다. 물론 도고만큼 엄격한 건 아니라서, 스스로와의 타협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렇게 마음을 열지 않았더라면 주방 비누가 세제보다 이백 배 삼백 배 좋다는 사실을 영영 몰랐을테니까!


 [비건과 함께 살지만 논비건입니다]로 매거진을 엮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우선 비건이 아닌 내가 비건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걱정이었다. 또 비건에 대한 공부와 앎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가 이 이야기를 다루어도 되는지 역시 고민이었고. 비건과 환경 보호에 대한 의미를 전하는 목적이 아니어도 되는지 불안했다. 내 글은 그냥 도고랑 살면서 느낀 점을 적은 글이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은 그냥 쓰기를 포기했다. 비건의 의미와 무게가 내가 다루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 글 하나를 쓸 때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 논비건 이박이 쓸 수 없는 주제같았다.


 다시 글을 쓰게 만든 건 지난 추석, 본가에 내려갔다가 만난 친구였다. 같이 점심을 먹는데 친구가 많은 선택지 중에 채소 메뉴를 시켰다. 소스에 육수나 육류 스톡이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소고기나 돼지고기 메뉴가 아닌 채소 메뉴를 고르는 사람은 드무니까 물어봤다.


 "너 채식해?"

 "응. 채식으로 먹을 수 있을 때는 채식으로 먹어."


 친구는 내 주변 두 번째 채식인이었다. 친구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건강이었다. 아침에는 명상을 하고. 매일 걷기 운동을 하고.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채식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누가 먼저 물어보기 전까지는 채식을 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댔다. 만나는 사람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지니까.


 그래, 세상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의미에 뿌리를 두지 않더라도 채식을 하게 될 이유는 많았다.


 나는 채식을 하는 친구들이 그 취향을 존중받기를 바란다. 둘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각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를 수 있기를. 다른 사람의 입맛에 맞춰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기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할 때 누가 이유를 묻지 않는 것처럼, 친구들이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이유를 함께 말하지 않아도 되기를.


 그래서 내 이야기는 비건을 다룬 다른 글보다 가볍다. 나한테 필요한 건 그냥 비건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식당. 그리고 천천히 옳은 쪽으로 변해갈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내 글을 읽고 누군가가 비건을 결심하는 것도 좋지만, 비건도 개인의 선택인 만큼 존중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물론, 환경적인 쪽으로 움직여준다면 너무 좋고!


 "도고야. 나 원고 제안 받았어!"


 그러던 중, 브런치로 원고 제안이 왔다.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하는 식탁'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물방울을 또 발견하게 되었다.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 나눌만 한 사람을 찾는 것 만큼 신나는 일이 없지.


 생각보다 비건은 우리 주변 가까이 있다. 그들은 어렵거나 유난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비건은 종류도 많고 다양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비건이 될 수 있다!(엄격한 도고는 갸우뚱 하겠지만.) 마음을 얼마나 활짝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 열린 문 틈새로 쏟아져 들어올 의미와 정보들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닐지라도, 앎의 기쁨 하나는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는 없지만, 옳은 방향은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가 뭘 먹던 같은 테이블에 앉을 자유가 있다. 모두의 자유를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를 권리를 위해.

 도고와 나는 오늘도 함께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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