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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May 06. 2020

[영역 서평] 『붉은 저택의 기사』, 알렉상드르 뒤마

역사적 고증과 소설적 재미의 흥겨운 미뉴에트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의 서사가 주는 말초적인 쾌감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의 탁월한 역사소설적인 감각이 가려져 아쉬워질 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 시리즈가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그는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마리 앙투아네트 로맨스》라고 불리는 8개의 소설을 연재했는데, 『The Knight of Maison-Rouge (붉은 저택의 기사)』는 그 연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1793년 1월,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한 직후, 그해 10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형을 당하기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으며, 혁명 성공 이후 프랑스에 제1공화국이 수립되어 온건적인 지롱드파, 급진적인 산악파가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하여 혈투를 벌였던 정치적 배경을 이용하여 숨 막히게 전개되는 사랑과 우정을 그려낸다.


배경이 되는 시대와 왕정 폐지 이후 혼란스러웠던 정치적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며 시작되는 소설은 혁명의 젊은 영웅이자 주인공인 모리스 린디를 소개한다. 젊고 패기 넘치는 모리스는 가장 친한 친구 로린과 함께 혁명정부 내에서도 가슴 뜨거운 청년들이 모여있는 테르모필레 클럽의 일원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금되어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탕플 탑의 순찰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모리스는 신분증이 없어 민병대에게 고초를 받고 있는 미모의 여성을 구해주고 헤어지지만, 그녀를 잊지 못해 매일 같은 동네를 찾아가고, 결국 그녀와 재회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이 아리따운 여성 기네비브는 이미 딕스머라는 남편을 두고 있는 유부녀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딕스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아내를 연모하는 모리스를 매일 집으로 초대하고, 모리스는 그녀의 남편 딕스머와 동료 모랑과 친분 관계를 맺게 된다. 한편 탕플 탑에 감금되어 재판과 단두대만을 기다리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탈출시키기 위하여 마지막 남은 왕정파인 붉은 저택의 기사가 파리로 잠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이 가진 월등한 말초적 재미는 이미 문학 평론에서 해묵은 주제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뒤마는 <붉은 저택의 기사>에서 여러 역사적 인물들을 등장시키는데, 접근법을 두 가지로 달리한다. 로베스피에르나 당통 같은 혁명의 거물들은 소설의 주연들의 거취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자연재해와도 같다. 직접 등장하지 않으며, 다만 주연들의 목을 조여 오는 의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뒤마는 거대한 역사적 시류와 사실 관계는 건드리지 않으며, 혁명에 대한 직접적 가치 평가 또한 교묘하게 비켜간다. 이는 이 소설이 집필된 시대가 혁명으로부터 불과 50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뒤마 본인의 혈통이 혁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기에 아직 결자해지가 되지 않은 문제들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 본인과, 그녀의 감금 중 주위에 있었던 실제 역사적 인물들, 간수로 근무했던 구두장이 앙투안 시몽, 재판관 푸키에 탱빌, 방위군 장군 상테르 등은 서사의 조연으로 등장해 주인공들과 직접적으로 교류를 한다. 크게 유명하지 않은 역사적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소설의 사건에 개입을 시킴으로 『붉은 저택의 기사』는 일종의 야사(野史)와도 같은 분위기를 지니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프랑스혁명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금된 후 단두대에 오르기까지 그녀를 탈출시키기 위한 왕정파들의 음모가 여럿 있었지만 성공 근처에 다가갔던 시도는 단 하나도 없었다. 뒤마는 그러한 음모 중 알렉상드르 드 루즈빌 후작의 "카네이션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집필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소설을 읽다 보면 그 특유의 야사적인 분위기 때문에 당연히 음모가 실패를 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게 된다.


『붉은 저택의 기사』는 전개의 기발함이나 카타르시스적인 면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비교하기에는 조금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독자 본인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프랑스혁명 직후의 파리를 살아가는 기분이 들게 되고, 그 어떠한 역사서보다 더 인물들에 대해 집중하고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마성의 재미를 잡는 데 성공했다. 만약 뒤마의 작품군을 역사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삼총사』 연작은 그 배경이 되는 시대가 작가의 활동 시기와는 약 20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루이 13세나 리슐리외 추기경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고증이 소설의 재미를 위해 완전히 희생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붉은 저택의 기사』는 고증과 재미의 균형을 가장 잘 잡은 뒤마 최고의 역사소설이라고 평하게 된다.


(끝)


『The Knight of Maison-Rouge』(1845), Alexandre Dumas

https://www.goodreads.com/book/show/7197.The_Knight_of_Maison_Rou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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