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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

맥베스 (2015)

by Albert 이홍규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1320


맥베스:
내일도, 그리고 내일도, 그리고 내일도,
이 한심한 속도로 기어 오는 매일매일은
역사가 끝나는 마지막 시간까지 이어지고,
지나간 시간들은 바보들에게 길을 밝혀
그들을 죽음으로 보내니. 꺼져라, 꺼져라 촛불아!
삶은 고작 걸어다니는 그림자, 가여운 배우 같아서
무대에 등장하고는 내내 조바심 내고 실수하다가
어느 순간 퇴장해 버리는구나. 삶이란 마치
광대의 이야기와도 같아 소음과 분노로 가득차
아무런 의미도 없네.

출처: <맥베스>, 5막 5장


책으로 셰익스피어를 접하는 비영어권 독자들에게 그의 대사가 왜 재미있는지 설명하기란 몹시 어렵다. 동화작가인 E. B. 화이트는 “유머는 개구리처럼 해부가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대상은 죽을 수밖에 없고, 결과물, 즉 내장은 순수히 과학적 이유를 제외하고는 흥미로운 구석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유머’에만 국한되는 비유가 아니라, 그의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비유라고 생각이 된다. 왜 재미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이성적 이해에 닿을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는 더 이상 그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맥베스>는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비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단순히 작품을 책으로 읽는 것 만으로는 진정한 가치의 전달이 어려운 편에 속한다. 이는 <맥베스>가 가진 매력의 큰 부분이 특유의 분위기와 말의 맛, 직관적인 쾌감에서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짧은 분량에 역사극이면서도 마녀와 예언이라는 초현실적인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맥베스>는 짧지만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유명한 셰익스피어 평론가인 A. C. 브래들리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맥베스가 독보적으로 짧은 이유는 마녀의 등장과 전투 장면 등, 대사가 없지만 시각적으로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리어왕>이나 <오델로>보다 대사는 1000줄 분량이나 짧음에도, <맥베스>를 읽은 독자나 그 무대화, 영상화를 관람한 시청자들은 딱히 길이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대사가 아닌 액션으로 서사를 끌어가는, 소위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유령, <한여름 밤의 꿈>의 요정 등 초현실적인 요소를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지만, <맥베스>에서 마녀의 예언은 극의 줄거리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 정도로 초현실적인 요소가 주제 그 자체로 승화되는 경우는 특기할 만하다. 또한 성격에 의해 형성된 숙명의 굴레, 또는 숙명에 의해 형성된 성격에서 오는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바드의 작품 중 가장 소포클레스 비극과 닮아있고, 그만큼 바드의 다른 작품들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맥베스>는 글로 읽는 것에 비교하여 영상화, 무대화가 되었을 때 몹시 매력적인 작품이며, 비영어권 독자들에게는 작품을 꼭 글이 아닌 영상으로 관람할 것을 추천하게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셰익스피어식 블록버스터

마이클 패스벤더 (맥베스 역), <맥베스> (2015)


전령:
불확실한 전황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두 기진맥진한 수영선수가, 서로에게 매달려
목을 조르는 형상같이. 무자비한 맥돈월드--
반란군 수괴라는 자리가 어울릴 만큼
셀 수 없는 악행으로 본성이 검게
물들어가는 그는--서쪽 섬에서
경보병과 병사들을 지속적으로 보급받는데;
운명의 여신도 그놈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반란군의 창녀 같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약했습니다:
왜냐면 용감한 맥베스는--그 별명에 어울릴 만큼--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휘두르며 전진했는데,
유혈 낭자한 사형선고로 인해 칼날에 연기가 어렸고,
용기의 신의 수하처럼 베어가며 길을 만들어
야망의 노예에 맞섰습니다;
악수를 하거나,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맥베스는 그를 배꼽부터 턱까지 베었고,
그의 머리를 잘라 성벽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출처: <맥베스>, 1막 1장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무대화나 영상화로 보지 않으면 절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숨 가쁜 액션이다. 심지어 로맨스로 더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작품도 많은 경우 카풀렛과 몬태규 가문의 칼싸움으로 시작하는 연출이 많은 편인데, 특히 용맹한 군주와 그들의 전투를 다룬 <헨리아드>, <리처드 3세>, <맥베스>와 같은 역사극은 더욱 액션이 들어갈 수 있는 연출적 공간이 많다.


<맥베스>의 경우 1막 시작부터 맥베스와 뱅쿠오가 노르웨이-아일랜드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시작한다. 2막에는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한 맥베스의 던컨 왕 암살 장면이 있고, 3막에는 뱅쿠오와 그의 아들 플리언스의 탈출 시도 및 추격 장면이 존재한다. 4막에는 맥더프의 탈출 시도와 그의 일가족 몰살, 그리고 5막은 거의 전체가 전투로 이루어져 있다. 즉, 지문이 존재하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각본만을 읽으면 중요한 액션 장면들을 그냥 넘어가게 되지만, 무대화나 영상화에서는 연출가의 결정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호흡을 액션에 할애하게 된다.


압도적인 분량의 액션은 어쩌면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제의식과도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맥베스>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중 가장 표면적으로 돌출되는 메시지는 사슬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폭력의 연결성이다.


마이클 패스벤더 (맥베스 역), 마리옹 코티야르 (레이디 맥베스 역), <맥베스> (2015)


이러한 사슬이 가장 명확하게 보이는 지점은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관계이다. 1막에서 맥베스의 승전을 던컨 왕에게 보고하는 전령은 전투의 분위기를 마치 “두 명의 수영 선수가 기력이 빠져 서로에게 매달려 목을 조르는” 형상이었다고 묘사한다. 오랜 전투 끝에, 양 군대가 모두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가는 전투의 분위기에 대한 묘사로도 기가 막히지만, 한편으로 이 형상은 마치 서로를 구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목을 조르게 되는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관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폭력의 사슬은 단순히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사이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의 왕 던컨의 사촌이자, 글라미스의 영주인 맥베스는 노르웨이-아일랜드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용맹한 무용으로 수많은 적을 도륙하고, 그 공을 인정받아 마침 공석이 된 코더의 영주 자리를 받게 된다. 폭력으로 얻어낸 권력에 취한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에게 던컨을 암살할 것을 요구하고 맥베스는 또 다른 폭력으로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찬탈한다. 그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친우 뱅쿠오를 죽이고,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맥더프의 가족을 살해한다. 맥더프는 이러한 끔찍한 폭력에 항거하기 위하여 잉글랜드의 도움을 얻어 고향 스코틀랜드에게 자신의 창을 돌리고,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땅은 피로 젖어간다.


한번 시작된 폭력은 마치 가속하며 달리는 기차처럼, 어떠한 폭발적인 충돌 없이는 멈출 길이 없다. 때문에 <맥베스>를 관람하는 것은 마치 예정된 파멸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현대 할리우드에서 거대 자본 액션 영화를 가리키는 단어인 블록버스터(blockbuster) 또한 해당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포진되어 있는 커다란 폭발 장면을 가리키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맥베스>의 클라이맥스에 있는 존재하는 파멸은 물리적인 폭발이 아니지만, 버넘의 숲이 움직이는 스케일은 비등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때문에 이러한 클라이맥스 액션 시퀀스를 고대하며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의 심리는 4세기가 넘어도 동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맥베스>는 특히 그 기저에 숨어있는 어떠한 철학적 메시지를 찾는 것보다, 축복과 저주, 숙명과 예언, 폭력과 파멸, 인간의 실수와 욕망이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피부로 느끼면서 관람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마녀와 저주, 초현실

세 마녀, <맥베스> (2015)


첫 번째 마녀:
우리 셋은 다시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천둥이 칠 때, 번개가 번쩍일 때, 아니면 비가 올 때요?

두 번째 마녀:
이 허둥지둥 소동이 지나게 되고 나면
전투를 지고 이기게 되고 나면.

세 번째 마녀:
해가 지기 이전이겠군요.

첫 번째 마녀:
어디서 만날까요?

두 번째 마녀:
황야 벌판에서 만나지요.

세 번째 마녀:
그곳에서 맥베스와 함께 만나지요.

모두:
아름다움은 추하고, 추함은 아름다우니
안개와 지저분한 공기를 뚫고 오리

출처: <맥베스>, 1막 1장


영미권에서는 <맥베스>는 제목보다 <스코틀랜드 연극(The Scottish Play)>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그 이유는 이 연극 자체가 저주를 받았으며, 그 제목을 그대로 부르면 연극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미신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어이가 없는 미신이지만,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SC)에서도 저주를 깨는 방법을 설명을 할 정도로 공연계의 대표 저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출처).


RSC에 따르면 1606년 <맥베스>의 초연에서 레이디 맥베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공연을 앞두고 돌연사해, 셰익스피어 본인이 그 역할을 연기해야만 했다는 전설이 있다 한다. 그 외에도 던컨 왕을 암살하는 장면에서 사용되는 단검이 날이 들어가는 소품 단검이 아니라, 실제 단검 이어서 배우가 사망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전설도 내려온다.


1849년, 뉴욕의 애스터 플레이스 폭동은 두 배우 에드윈 포레스트와 윌리엄 찰스 맥크리디의 다툼으로 인해 시작되었는데, 총 20명의 죽음과 100명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포레스트와 맥크리디는 당시 라이벌 극단에서 각각 맥베스를 연기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맥베스> 공연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추락한다거나, 돌연사한다거나, 아니면 대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1937년 실제로 겪은 것처럼 천장의 공연 소품이 떨어지는 등, 유난히 잡음이 많은 연극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영미권 극장 내에서는 심지어 그 공연이 아닐지라도 “맥베스”라는 단어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 만약 극장 내에서 “맥베스”라고 이야기한다면, 바로 극장을 나가 제자리에서 세 바퀴 돌고, 침을 뱉고, 욕을 한 후, 문을 두들겨 남들이 다시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 주어야만 저주에 걸리지 않는다는 설명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작품 외적인 저주 요소는 작품 내의 마녀들의 존재와도 기괴한 시너지를 일으켜, 세 마녀들과 예언은 <맥베스>를 상징하는 마스코트 취급을 받는다. 이 마녀들은 초현실적인 주제가 보통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과는 상이하게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악마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셰익스피어 활동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 왕으로 등극한 제임스 1세는 마녀와 악마학에 대해 몹시 관심이 지대했다고 한다. 1589년 제임스 1세가 덴마크에서 스코틀랜드로 돌아오던 중, 그가 탄 배가 몹시 험난한 폭풍우를 만나 거의 익사할 뻔했는데, 이를 마녀들의 탓으로 돌리고, 바닷가에 존재한 노스 버릭이라는 마을에 대한 마녀 사냥을 지시하기도 했다. 후에 그는 본인이 직접 <악마학(Daemonologie)>라는 제목으로 마녀의 특징과 그들을 사냥하는 방법을 정리한 이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유일하게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마녀가 등장하는 <맥베스>는 잉글랜드가 처음으로 섬긴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녀 사냥꾼 왕을 위해 맞춤 제작된 헌정 작품 일수도 있다. 하지만 헌정 작품이라고 해서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맥베스와 세 마녀, <맥베스> (2015)


<맥베스>의 세 마녀들은 예언적이고 묵시록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며 작품의 첫 단추를 꿴다. 그들은 맥베스와 뱅쿠오를 앞에 두고는 왕사와 미래를 논하며, 맥베스에게는 불멸에 가까운 축복을 내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원의 부인이 밤을 주지 않았다는 하찮은 이유만으로 그 남편을 배에서 괴롭힐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저주에 희희낙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종잡을 수 없는 행동거지는 그들을 인간의 이해 바깥에 두며, 서로의 말을 이어가는 대사는 비교적 짧은 등장 분량이지만 극의 분위기를 극도로 기괴하게 바꾼다.


이 마녀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들인지, 아니면 맥베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인지는 셰익스피어의 팬들 사이에 해묵은 논쟁거리이다. 단순히 흥미를 위한 논쟁은 아니고, 무대 위에서 마녀를 어떻게 연출할지에 따라 극의 장르가 역사극 또는 환상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다만, 뱅쿠오가 그들을 함께 본다는 사실 때문에 보통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로 연출하지만, 단순히 서서 예언을 전달하는지, 아니면 마귀와 같은 행동거지로 악마적인 속성을 부여할지는 연출가의 해석에 달려 있다.


두 가지 해석은 단순한 분위기적인 차이만은 아니다. 만약 마녀들이 가만히 서서 조용히 예언만을 전달한다면, 어쩌면 그 맥베스의 운명은 어떠한 악의가 섞인 타자의 저주가 아니라, 본인의 성격이 만들어낸 자기성취적 예언이라는 해석으로 흐르게 된다. 하지만 마녀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주체적이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맥베스의 운명이 실제로 이 마녀들의 악의에 의해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며, 마치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를 파멸로 몰아가는 마술적이고 외부적인 요소가 있다는 해석이 극의 서사를 이끌어가게 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대문호의 천재성과 21세기에 와서도 그의 작품을 읽고 전율을 느끼는 창작가들에 공감이 가게 된다. 같은 대사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연출하고 연기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즉 감독의 연출방향과 배우의 연기 방향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맥베스>가 100번 공연되더라도 100개의 다른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언가 악한 것이 이 길로 오네

마리옹 코티야르 (레이디 맥베스 역), <맥베스> (2015)


두 번째 마녀:
내 엄지손가락이 따끔따끔한 것을 보니,
무언가 악한 것이 이 길로 오네.
열려라, 자물쇠야,
누가 두드리던지.

맥베스:
무슨 일이냐, 이 요사스럽고, 악하고, 음침한 마녀들아!
너희는 도대체 무엇을 꾸미고 있느냐?

출처: <맥베스>, 4막 1장


2015년 개봉된 호주 출신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는 사실 감독의 이름보다는, 당시 주목하고 있던 젊은 촬영감독 아담 아카포의 영상, 그리고 비주얼과 연기가 모두 되는 마이클 패스벤더와 마리옹 코티야르 때문에 더욱 기대를 하고 있었다. 커젤 감독은 2011년 <스노우타운>으로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는데, 차기작으로 셰익스피어 대사를 그대로 살린 <맥베스>를 연출한다는 소식에 갸우뚱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맥베스>는 바드의 폴리오 중 수 많은 영상화 중에도 손에 꼽을 만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아카포의 영상과 패스벤더, 코티야르의 연기 및 비주얼은 기대 만큼 나무랄 곳이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른 셰익스피어 각색에 비해 비범하게 뛰어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커젤 감독이 원작을 해석한 방법 몇 가지를 예시로 들어야 한다.


아마 커젤의 <맥베스>가 원작과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버넘의 숲이 던시네인을 넘는 방법일 것이다. 원작에서는 던컨의 아들인 말콤의 군대가 버넘의 숲의 나뭇가지들을 들고 위장을 사용하여 던시네인으로 이동한다. 마치 멀리서 보기에는 이것이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에, 맥베스가 본인을 지켜주던 불멸의 축복 중 하나가 깨졌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커젤 감독은 화면상으로는 카메라를 아무리 멀리서 잡아도 나뭇가지들을 들고 달리는 군사들이 움직이는 숲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대신 버넘의 숲에 불을 지르는 방법을 택했다. 버넘의 숲 전체가 불타기 시작하면, 그 연기와 불길이 던시네인으로 넘어간다. <맥베스>의 축복은 버넘의 숲이 탄 연기가 던시네인을 넘어감으로 깨지게 된다. 그리고 이 묘안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전투를 초현실적인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마이클 패스벤더 (맥베스 역), <맥베스> (2015)


모든 것이 불길로 타오르는 전장의 가운데 서 있는 맥베스의 모습은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장관이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또한 마녀들은 이전의 영상화에서 보였던 해석과는 다르게, 현실과 살짝 떨어져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읊조림에 가까운 분위기로 대사를 말해가며, 이러한 무심함은 맥베스가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심지어 본인들의 예언이 사실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느낌을 준다. 맥베스는 고뇌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부인에게 전달하는데, 결국 예언을 듣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사람도, 운명의 단검의 손잡이를 쥔 사람도, 레이디 맥베스였다는 서사적 특징이 부각되는 연출 방식이었다.


아담 아카포 촬영감독의 화면은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우면서도 황량한 풍광을 건조하게 담아내는데, 저스틴 커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맥베스>의 스코틀랜드는 코맥 매카시 작가가 그려내는 서부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출처). 그는 <맥베스>에서 표현되는 사슬처럼 이어지는 폭력의 역사와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에서 그려지는 생존을 위한 폭력에서 유사한 메시지를 보았는데, 이러한 서사적(텍스트적) 교차점에서 미술적(비주얼적) 방향성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복기할 만하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맥베스는 비주얼적으로 뛰어나고, 연기 또한 무난하지만, 이 영화의 연기력은 마리옹 코티야르의 레이디 맥베스와 숀 해리스의 맥더프를 통해 뛰어난 작품의 만족스러운 마침표를 찍는다.


마리옹 코티야르 (레이디 맥베스 역), <맥베스> (2015)


마리옹 코티야르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 여배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대사 소화력을 보이는데, 저스틴 커젤이 인터뷰마다 그녀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이유가 십분 이해가 된다. 또한 마이클 패스벤더와 마리옹 코티야르의 아름다운 커플샷은 오히려 작품 내적으로 저주받은 왕과 왕비 부부의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맥더프를 연기한 숀 해리스 특유의 매력적인 쇳소리 발성은 이 작품에서도 뛰어나지만, 던컨 왕의 죽음과 본인의 가족의 죽음에 대한 반응을 연기하는 순간은 차라리 작품의 주인공이 맥더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폴리오 중에서도 몹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의 제목을 짓는데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일 텐데, 한국어 번역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원래 대사의 분위기를 따르자면 “소음과 분노”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외에 <화씨 451>을 쓴 레이 브래드버리의 <무언가 악한 것이 이 길로 오네(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가 있다.


다른 작품에 비해 짧다 평가되는 <맥베스>지만 그만큼 대사 하나하나의 임팩트가 대단히 큰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찾자면 바로 4막 1장에서 두 번째 마녀가 말하는 “무언가 악한 것이 이 길로 오네”라는 대사일 것이다.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라는 영어 대사의 운율, 즉 말맛도 뛰어나고, 대사의 내용이 자아내는 스멀스멀하게 음산한 분위기도 몹시 좋아한다. 심지어 책을 읽을 때마다 저 직후 등장하는 맥베스의 모습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아쉽게도 저스틴 커젤 감독은 본인의 영상화에 이 장면을 넣지는 않았다. 아마 영상으로 담아버리면 은유적인 느낌이 사라져서일까 싶기도 한데, 영화 내내 저 대사가 함유하고 있는 분위기가 곳곳에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살이 틀 것 같은 건조한 바람이 부는 스코틀랜드의 풍광,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귀를 찢는듯한 단조로 이어지는 음악, 전장의 냉병기가 부딪히는 느낌을 피부로 전달해주는 음향 디자인 등, 영화는 지속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악한 것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듯한 분위기를 깔아준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역사소설 작가 도로시 더넷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 역사상의 맥베스를 주인공으로 <곧 도래할 왕이시어(King Hereafter)>라는 소설을 썼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녀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도로시 더넷이 아름답게 직조해가는 마녀 없는 맥베스의 인생-태피스트리를 보면서, 불현듯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마녀의 존재가 이해가 되었다. 역사의 어떠한 사건들은 차라리 초자연적인 해석을 빌리고 싶을 만큼 신비하고 음산하고 인간 이해에서 동떨어져 있다.


셰익스피어 영상화 한줄평:

멈출 수 없는 힘이 움직일 수 없는 물체를 향해 가속하는 모습을 수정주의 서부극 관점에서 바라보다




맺는 말: 번역에 관하여

셰익스피어 작품의 일부분을 직접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이라 불리는 운율을 지닌 운문(verse)인데, 운율까지 살리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행바꿈을 지킨 형태로 번역합니다.

MIT에서 호스팅 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원서를 번역 대상으로 사용합니다.


<맥베스> 원서: http://shakespeare.mit.edu/macbeth/ful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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