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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Sep 22. 2020

[서평] 『규칙 없음』,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메이어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

넷플릭스 앤 칠 스터디

Netflix & chill [출처: Teen Vogue]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준이지만, 영미권에서는 기술 회사의 이름이 동사화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까지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게 뿌리내린 회사는 재무제표나 현금흐름과 같이 손익계산서에 포함되지 않는 거대한 무형 자산을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이는 굳이 2000년대 이후의 기술회사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제록스(Xerox)는 "복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예: "Could you xerox this report?"), 페덱스(FedEx)는 배송, 또는 해외배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 "Please fedex that sample").


어떻게 보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떠한 사기업의 브랜딩이 동사로 사용될 정도로 대중문화에 깊게 뿌리내리는 일은 극히 드문 편이다 (또한 브랜딩이 탁월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기술의 빠른 전파로 인하여 동사화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아졌다.


가장 유명한 경우는 당연히 "검색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구글(Google) 일 것이며 (예: "Please google that word and see what comes up"), 그 외에도 이미지를 "편집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포토샵(Photoshop) 또한 널리 알려졌다 (예: "We need to photoshop that image to remove the spots"). 물론, 미국 현지에서는 송금 앱으로 사용되는 벤모(Venmo), 택시를 부르는 서비스인 우버(Uber) 또한 동사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구글이나 포토샵보다는 아직 국지적인 사용도를 보여주고 있다.


2015년 경, 영미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넷플릭스 앤 칠(Netflix and chill)"이라는 동사가 급부상했다. 한국어로 치환해보자면 "라면 먹고 갈래?" 정도로 볼 수 있는 이 슬랭은 어쩌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현상이었을 수도 있다.


2015년에도 이미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17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초고속 성장 중인 상장기업이었으며, 자사의 브랜딩이 캐주얼 섹스와 치환된다는 사실은 어쩌면 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변수가 큰 현상이었으리라.


하지만 2016년, 넷플릭스는 재빠르게 넷플릭스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넷플릭스 앤 칠 스터디"라는 인포그래픽을 공개한다 (출처). "51%의 사용자는 넷플릭스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행동이 연애가 진지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라거나 "65%의 사용자들은 커플이 함께 볼 콘텐츠를 고르기 위해 토론한다"라는, 생각보다 무의미한 지표들을 자체적으로 공개하는 마케팅을 벌인다.


즉, 기업 입장에서 음지에 있는 농담(tongue-in-cheek)을 받아들이고 양성화시킨 것이다. 2020년에 와서 기업과 온라인 밈(meme)의 관계 및 마케팅 사용은 어느 정도 당연시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몹시 특이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회사 문화 아래서 저러한 똘끼 있는 마케팅이 허용이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고는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문서

실리콘 밸리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문서, Netflix Culture: Freedom & Responsibility (출처: Slideshare)


넷플릭스가 이렇게 신나는 마케팅을 하기 2년 정도 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HBR)』에 넷플릭스의 최고 인사책임자(Chief Talent Officer)로 14년 동안 근무했던 패티 맥코드가 쓴 「넷플릭스는 어떻게 인사체계를 재창조하였는가 (How Netflix Reinvented HR)」라는 기사가 실렸다. 맥코드가 이 기사를 시작하면서 언급하는 문서가 바로 다름 아닌 넷플릭스의 문화: 자유와 책임 (Freedom & Responsibility Culture), 즉 컬처 데크이다.


슬라이드셰어라는 플랫폼을 통해 넷플릭스의 창업주이자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계정으로 직접 공개된 이 문서는 (Ver 1, Ver 2, 한국어 번역본), 10년이 지난 후에는 넷플릭스의 문화 바이블과도 같이 여겨지고, 현재 공식 인사 채용 사이트(영문, 한글)에 공개되어 있다.


페이스북의 최고 운영책임자(CCO)인 셰릴 샌드버그는 이 문서를 가리켜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 (one of the most important documents ever to come out of Silicon Valley)"라고 칭했는데, 2009년 첫 공개 이후 2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실리콘밸리의 바이블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문서의 내용을 한 두 슬라이드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이 글을 위하여 단순히 요약을 해본다면 Ver 2의 22-24 슬라이드에 있는 내용이 가장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모든 회사와 같이 우리도 잘 채용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많은 회사와는 다르게 우리는, 어지간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퇴직금을 많이 주면서 내보낸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고 팀이다. 우리는 프로 스포츠 팀이며, 아동 레크리에이션 팀이 아니다.


Ver 2의 33-36 슬라이드는 위의 철학을 어떻게 실제 인사 시스템에 적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충성심은 좋은가? - 충성심은 안전장치로는 좋지만, 넷플릭스와 직원의 관계는 무한한 충성심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 시간과 노력은 전혀 중요치 않으며, 노력은 A급이지만 결과가 오랫동안 B급이면 내보낸다.
일 잘하는 싸가지는? - 그들이 팀의 사기에 가져오는 마이너스가 일을 잘하면서 가져오는 플러스보다 크기 때문에 싫다.


언뜻 읽히면 당연한 가치로 보이지만, 이 문서의 내용은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능력주의, 성과주의를 성문화 시킨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인 인시아드(INSEAD)의 교수 에린 메이어는 "넷플릭스의 컬처 데크를 모두 보고 난 뒤, 나는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대립적이며 노골적으로 호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라고 술회한다.


개인적으로 이 데크를 처음 접했던 시절인 2010년대 초반에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던 20대의 호기와 함께 단순히 회사 운영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어떠한 만트라로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실제로 회사에 몸담는 시간이 오래되면서 넷플릭스의 인사 철학에 대한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넷플릭스가 기술 회사에서 콘텐츠 회사로 진화를 하며 가시화된 문제점이다. 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면서 영화, 드라마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는데, 어떠한 콘텐츠의 성공과 실패는 단기적 능률이나 성과에 집착해서는 나오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다 보면, 준수한 작품들은 많아도 HBO와 같은 업계 최고 수준의 제작/배급 명가와 비교하였을 때 전반적으로 작품군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심지어 넷플릭스에서 큰 자본을 투자해 섭외한 흥행성이나 작품성의 거장들도 넷플릭스에 와서 커리어 최고 작품을 만드는 경우는 없다.


두 번째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성과주의 중심의 인사정책은 문서상으로는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존재하는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프랑스와 같이 노동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강하게 보장되는 국가에서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성과주의와 업무 윤리(work ethic)의 양립, 또는 균형에 관한 우려였다. 물론 컬처 데크에서는 초반부터 기업 윤리가 단순한 모토가 아니라 모든 성과주의가 기업 윤리라는 기반 위에 존재한다고 명시하기는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자신을 "프로 스포츠 팀"이라고 규정한 이상, 실제 프로 스포츠 팀이 경험하고 있는 "무조건 승리 (Win at All Costs)"에 따르는 해악 또한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금지약물을 쓰는 선수, 프리에이전시를 앞둔 선수와의 협의, 심지어는 상대팀 사인 훔치기와 같은 편법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성과주의를 부르짖는 회사에서, "넷플릭스 앤 칠 스터디"라는 똘끼 충만한데 비해 단기적, 또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마케팅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무규칙의 규칙

『No Rules Rules』(2020), Reed Hastings & Erin Meyer [출처: Amazon.com]


2020년 넷플릭스의 창업주이자 CEO인 헤이스팅스가 경영 철학 서적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몇 가지 이유로 놀랐다.


첫 번째로는 넷플릭스같이 주목받고 있는 회사의 현직 CEO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경영 도서를 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작년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발표한 디즈니 CEO 밥 아이거가 있지만 아이거의 경우 조만간 은퇴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아이거와 헤이스팅스는 약 10년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난다. 2020년 기준으로 60세를 맞은 헤이스팅스는 현역이며,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서 시총 50위 안에 들고 로켓과 같은 성장 중인 회사이다.


놀라웠던 이유 두 번째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읽어보았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컬처 데크가 단순히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실제 회사가 운영되고 있는 모양새 전반에 반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에도 언급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학 교수인 에린 메이어는 넷플릭스의 컬처 데크를 읽은 후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재미있게도 그녀의 컬처 맵을 읽은 헤이스팅스는 에린 메이어가 주창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넷플릭스가 만들어가고 있는 퍼즐의 미싱 피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에린 메이어에게 넷플릭스의 컬처 데크, 헤이스팅스 본인을 포함한 전 직원과의 무제한 인터뷰 권한을 주고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비평을 요청했다.


때문에 규칙 없음은 시작부터 예상을 깨버리는 책이다. 넷플릭스의 자화자찬도 아니며, 외부 컨설턴트가 무조건적으로 헤이스팅스와 넷플릭스의 문화 찬양을 하고 있는 내용도 아니다.


물론 에린 메이어가 CEO 및 전현직 직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에 가지고 있던 "자유와 책임", 컬처 데크에 대한 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넷플릭스의 문화와 어울리지 않는 과거와 현재의 직원들 이야기, 심지어는 그 문화와 어울리지 않는 상황들도 충분히 언급하고 있다.


규칙 없음의 초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인재 밀도(talent density)"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이후에 나오는, "무규칙의 규칙"을 포함한 모든 넷플릭스 경영 개념들은 뛰어난 소수의 인재가 최고의 작업을 하기 위해 모여있다는 문맥이 없다면 성립이 될 수 없다. 단순히 뛰어난 인재를 모은다는 개념 자체는 그 어떤 회사든 같은 목표이겠지만, 넷플릭스의 다른 점이라면 뛰어난 인재를 모으기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가치들이 구체적이라는데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가치는 보너스가 없는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과 회사 전체의 기밀사항을 공유할 수 있는 투명성이 존재한다.


헤이스팅스는 보너스가 일종의 허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성과급 제도 자체를 폐지한다. 대신 넷플릭스의 베이스 연봉 테이블은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경쟁업체와 인터뷰를 하고 직원의 적정가치를 매길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는 당장의 인건비를 높여 기존의 재무제표 상식을 훨씬 상회하는 고정비를 발생시키겠지만, 당연히 업계의 1위와 경쟁을 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며, 특히 보너스가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높은 연봉 테이블은 직원들에게 1년 내내 규칙적인 업무 텐션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러한 조건을 갖춘 직원들이 들어왔을 때, 회사와 직원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커지게 된다. 회사는 직원에게 업계 최고 수준의 상식을 가지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며, 직원은 자신의 회사가 최고라는 자부심 또한 쌓는다.


투명성은 단순히 회사와 직원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직원 간에도 요구하는 가치 중 하나이다. 회사는 직원에게 재무제표나 분기별 성과보고 같은 기밀자료들을 공개함으로 모든 직원을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직원 또한 서로 간의 업무와 근태에 대한 기탄없는 피드백을 의사소통할 것을 주문받는데, 에린 메이어가 인터뷰한 베테랑 임직원들도 처음에는 당황했다고 고백할 만큼 그 내용과 범위가 기존 상식의 회사와는 큰 격차를 보여준다.


이러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성과주의, 능력주의로 오해되기 쉽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오히려 자잘한 실수 때문에 사람이 해고되는 일이 없다고 밝힌다. 위에서 이야기한 투명성에서 이어지지만, CEO인 헤이스팅스를 시작으로, 모든 임직원이 본인의 업무상 실수를 회사와 팀에 밝히고 그 실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진솔하게 의사소통을 하는데, 그림자에 빛을 비춘다는 의미에서 이를 "선샤이닝(sunshining)"이라고 칭한다.


회사가 기본적으로 직원의 역량을 신뢰하기 때문에 한두 번의 실수는 그 직원이 회사에게 가져다 줄 전체 이익에 비교하면 무시할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심지어 헤이스팅스는 본인이 넷플릭스를 창업한 후 가장 큰 실수였다고 기억하는 퀵스터 서비스에 대해서도 왜 실수를 하였는지, 그리고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 몹시 솔직한 태도로 인터뷰한다.


결국 능력 있는 직원들이 모이게 되면, 그들에게 북극성(True North)을 보여주고 그 북극성에 공감을 할 수 있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굳이 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착하게 된다. 경비부터 시작하여, 휴가일수, 프로젝트 금액 모두 만약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전권 직원 재량에 맡긴다. 이 북극성이 바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경영가치라고 할 수 있는 "맥락 경영 (Lead with Context)"이다.


결국 회사에서 직원이 하는 모든 업무는 "회사에 이익이 되는 일"로 귀결될 수 있는데, 사실 모든 직원들에게 이렇게 오너십을 가지고 일하기를 주문하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능력 있는 동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면, 론칭한 지 20년이 넘었고, 그중 한 번은 회사 전체의 DNA가 바뀔 정도로 피봇 했음에도 업계를 리드할 수 있도록 변화에 유연한 회사가 된다. 어쩌면 "넷플릭스 앤 칠 스터디"와 같은 기발하고 트렌디한 마케팅도 직원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헤이스팅스는 이러한 느슨한 규정이 횡령이라던가, 아니면 근무 태만이라던가 하는 업무 윤리 위반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존재했다고 고백하지만, 규정을 없앨수록 거기서 오는 부작용보다 긍정작용이 커지는 것을 경험해 왔다. 책을 읽고 나서는 한국어로는 규칙 없음이라고 번역되기는 했지만, 사실 원제인 No Rules Rules는 "무규칙의 규칙" 또는 "무규정이라는 규정"으로 번역하는 것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넷플릭스는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가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그 어떠한 경영학 도서보다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가 작품성 있는 콘텐츠를 장려하는 문화인지는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 문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다만 넷플릭스와 같이 뛰어난 천재들이 모든 방면에서 잔인할 정도로 투명하고 진솔한 소통을 요구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독불장군 스타일인 천재가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가는 방식이 더 맞을 수도 있다. 상상력을 어떠한 방법론으로 도식화시켜 끌어낸다는 사상이 본능적으로 와 닿지 않는 이유도 있다.


경영학적인 면에서도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은 초반에 이야기하는 고급 인재를 모으는 방법인 "인재 밀도"라는 담론이 선행되어야지 가능하다는 사실도 지속적으로 상기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다 보면 리드 헤이스팅스와 넷플릭스라는 기업이 걸어온 길이 어떠한 우연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세라는 감상이 든다. 이는 책의 마지막 장이 "종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인 것과도 관계가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리드 헤이스팅스가 에린 메이어를 알게 된 계기인 『컬처 맵』을 넷플릭스의 문화와 결합시키는 작업을 보여준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는 실리콘 밸리를 대표할 정도로 북미식 성과주의의 표본과도 같았는데, 실제로 해외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지사에서 현지 직원들이 초기에 느꼈던 반발심을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프랑스 직원이 미국인 동료들에게 돌려 말하는 소통방식에 대해 지적받고 황당해했던 일화나, 아니면 미국인 상사가 자신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자 갑자기 눈물을 흘린 일본인 직원들의 일화가 각별히 재미있다.


리드 헤이스팅스도 책에서 이야기하는 피드백 방법인 "4A (Aim to Assist, Actionable, Appreciate, Accept of Discard)" 이외에도 다른 문화권의 동료와 소통할 때는 다섯 번째 A인 Adapt ("함께 일하는 사람의 문화에 맞춰 전달하는 내용과 당신의 반응을 적절히 조절하라")라고 주문한다.


"Adapt"가 바로 넷플릭스가 업계 1위 기업으로 등극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배우고 있는 가장 커다란 레슨이 아닐까 싶다. 경영학에는 1위보다 2위가 더 마음이 편하다는 해묵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 애플 TV 등 수많은 플랫폼들이 호시탐탐 넷플릭스의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2020년 리드 헤이스팅스가 굳이 『컬처 맵』의 저자인 에린 메이어를 선택하여 넷플릭스 문화 전체를 다시 한번 외부인의 눈으로 재평가하고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 것은 1위 자리를 수성하겠다는 의지를 낭만적이면서도 건강한 자본주의 사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끝)


『규칙 없음』(2020),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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