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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Jan 04. 2022

대서사극, 신화 영화의 탈신화성

〈아르고 황금 대탐험〉 × 〈300〉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화에 대한 합의

이오스 섬, 그리스 [출처: Wikimedia Commons @ Joshua Doubek]


시작하자마자 수고스러울 수 있지만 잠시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보려 한다. 대략 기원전 8세기 말 또는 7세기 초, 에게 해에 위치한 작은 섬 이오스를 상상해보자. 5월의 이오스에는 그 섬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제비꽃(Ία)이 흐드러지게 펴 있다. 페니키아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던 도시국가 이오스는 약 1세기 이전부터는 이오니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 자유민인 우리는 매일매일 상점을 운영하거나, 부두에서 낚싯배를 관리하는 등 노동에 바쁘기 때문에 우리의 뿌리가 페니키아인지, 이오니아인지, 딱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도시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삶의 낙이란, 저녁이 되어 해가 수평선 너머로 저물면,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바닷가를 마주 보는 아고라(ἀγορά)에서 포도주를 기울이며 뱃사람에게 다른 도시국가의 소식을 듣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여가를 위한 교류가 전부였다. 그리고, 어느덧 초여름 밤의 선선한 바닷바람이 섬에 만개한 제비꽃 향기를 흩뿌리면, 마치 그 바람과 함께 그 향기를 몰아온듯한 노인 하나가 아고라로 들어선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은 앞이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다른 시민들의 소문에 따르면, 그는 호메로스라고 불렸다. 호메로스가 그의 이름인지, 그가 태어난 동네인지, 아니면 그가 다녔던 학당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다만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한 부분은 그가 그리스 전역을 떠돌아다니다 이오스 섬에 정착했다는 대략의 과거 정도일까.


그가 아고라 한가운데 멈춰 서자, 왁자지껄 떠들던 시민들의 소리가 차츰 잦아들고, 모두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는 한 시민의 인도로 근처에 있는 한 석조 의자에 앉는다. 그는 자신을 인도한 시민에게 어제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본다. 시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근처에 있던 한 사내가 초조한 목소리로 끼어든다. 오만한 아킬레우스가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에게 대들었다가, 헤파이스토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이야기였다고 외친다. 아고라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호메로스라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팡이를 들어 톡, 톡, 톡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나무가 바위로 된 바닥을 부딪히는 낮고 둔탁한 소리가 아고라 전체를 울리며, 잡담을 하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 모두의 눈길을 잡아 끈다. 그는 톡, 톡, 톡 일정한 운율에 맞추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전투였다. 노인은 때로는 아킬레우스가 되어, 때로는 헥토르가 되어 목소리를 바꿔가며, 운율에 따라 신화에 남을 만한 그들의 싸움을 읊어간다.


어떤 이들은 눈을 감고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전설적인 용사들을 그려본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유난히 맑게 개인 밤하늘, 쏟아질 듯한 별들을 바라보며, 위대한 영웅들이 죽으면 올라간다는 별의 모양새에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노인의 목소리는 둘의 전투에 돌입하면서 고양되기 시작한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가 찾아냈던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별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듯하다.


아킬레우스가 내지른 창이라도 되듯, 별똥별 하나가 헥토르라고 생각한 별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취기 때문일까, 노인의 목소리가 사라져 가고, 하늘 위에 그려진 헥토르의 입이 움직인다. "제발 자네의 삶과 무릎, 그리고 부모에게 부탁하네. 내 시체를 아카이아 군의 함대 근처에서 짐승들의 밥으로 주지 말게." 분노에 가득 찬 아킬레우스는 명예로운 헥토르의 마지막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헥토르의 죽음에 우리는 지난 한 달 가까이 매일 밤마다 들어왔던 아카이아 인들과 트로이 인들의 10년에 가까운 전쟁이 드디어 마지막 장에 들어섰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누구보다 고결했던 헥토르의 비극적인 죽음을 마주하자, 어느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소스라치게 놀라 주위를 둘러보자, 많은 이들이 시큰한 코를 훔친다. 모두가 알고 있다. 다음 날 시장, 부두, 논밭의 대화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이야기로 가득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이 영적인 체험에 너무나도 감명받은 나머지, 노인에게 배우고 싶은 희망을 간절하게 호소해, 그의 이야기를 전수받아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지중해를 방랑하게 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아가멤논의 고향인 미케네 지방에서는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에게 모욕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고 군중들이 몹시 화가 나서, 남은 이야기 내내 기회가 될 때마다 아가멤논의 위엄을 강조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조상들이 분명히 이 전쟁에 참전했는데 왜 등장하지 않느냐는 불만 때문에, 참전한 아카이아인들의 함대 목록은 계속 늘어만 갔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作, 〈호메로스의 예찬〉(1827)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리스 전역을 넘나드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몇 세기가 지나 그리스의 중심이자, 지성과 철학의 보고, 아테네로 넘어간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가 바뀌게 된다. 아마, 처음에는 너무나도 길어진 이야기를 기억하기 어려워서였을 수도 있다. 술과 이야기,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디오니소스 추종자들이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일부분을 노래로 만들어 신의 이야기와 클라이맥스에서는 그들이 대신 공연하도록 화자를 분리한 시도가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어느 순간 우리의 이야기는 청자들이 밤하늘의 별을 무대 삼아 상상하는 수고를 덜도록, 누군가는 힘이 센 장사 아이아스가 되어,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간 탐욕스러운 아가멤논이 되어 고대의 영웅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테스피스라는 이가 처음으로 상황을 설명, 디제시스(διήγησις)를 행하던 코러스에서 떨어져 나와 가면을 쓰고 영웅을 체화해 "내가 아킬레우스요"라고 주장하며 이야기하는 행위를 연기, 미메시스(μίμησις)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대에 있었던 슬픈 이야기를 정형화시켜, 글로 써서 아고라에 있는 무대에 올리고, 디오니소스 교단의 주최로 열리는 제전에서 가장 뛰어난 이야기를 뽑게 된다. 여기서 『테베를 공격한 일곱 장군』을 쓴 아이스퀼로스, 테베 3부작을 쓴 소포클레스, 메데이아엘렉트라를 쓴 에우리피데스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위대한 비극 작품들을 남긴다.


윌리엄 블레이크 리치몬드 作,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을 관람하는 관객〉(1884) [출처: Wikimedia Commons]


하지만, 밤하늘을 무대로, 노인의 목소리를 지문으로 삼아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냈던 신들의 기적,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용사들의 광기는 우리가 눈앞에 있는 연기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도전을 받게 된다. 가령, 청자로 돌아간 우리는 용사 아이아스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군인 그리스 병사들을 도륙했는데, 아침이 되자 그들이 양들이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는 광경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아이아스』를 집필한 소포클레스의 번민이 느껴진다. 아이아스가 병사를 참살하는 장면을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는 없다. 믿기지도 않으며, 시민의식에도 어긋나는 연출이다. 그는 무대의 배경인 "스케네(σκηνή)" 뒤에서 소리만을 사용해 관객들에게 아이아스의 광기에 찬 도륙을 전달하고, 모든 참상이 끝난 후, "에키클레마(εκκύκλημα)"라고 불리는 수레를 사용해 양들의 시체를 무대 앞으로 몰고 왔다.


한편,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주인공인 메데이아가 자신의 친족과 고향을 희생하면서까지 선택했던 남편 이아손이 글라우케와 불륜을 저지르는 광경을 보고 분노에 차 이아손과 낳은 자식들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다. 가족들의 시체를 보고 넋이 나가 있는 이아손 앞에, 메데이아는 그녀의 조부이자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가 보낸 마차를 타고 등장해 저주를 내린다.


에우리피데스 또한 소포클레스와 동일한 고민에 빠졌다. 극의 감정이 최고조로 오른 순간, 자신이 써 내려간 비극과 저주의 합창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마차가 무대 옆에서 등장하는 연출은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에우리피데스는 전 세대의 극작가인 아이스퀼로스가 에우메니데스에서 신의 등장을 위해 사용한 기중기, "메카네(μηχανή)"를 떠올린다. 기중기를 사용해 전차에 탑승한 메데이아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후대의 로마인들은 신화와 기적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한 이 장치 "메카네"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즉 "기계 장치에서 나온 신"이라고 불렀다.


〈메데이아〉(2016) 공연실황, MacMillan Films [출처: Wikimedia Commons]


물론, 실제 관객들이 된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 장치 모두가 극작가가 연출하고 싶어 하는 기적, 혹은 재난과 동일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몇 세기 전, 이오스 섬에서 호메로스라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가 그랬듯이,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극을 보는 우리 역시, 연출가가 우리에게 상상을 펼칠 수 있는 돗자리를 깔아준다면, 우리는 실제 그의 의도와 연출 사이 거리를 상상력으로 좁혀가겠다고 동의를 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에는 연출가와 관객 사이 일련의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


이제 현대로 돌아와 보자. 영화 산업의 발전은 '극'의 주무대를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공연장에서, 기록을 재생하는 반복의 무대인 영화상영관으로 옮겨왔다. 영화의 발전은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마주해야 했던 질문을 새롭게 제시한다. 영화의 관객은 얼마만큼의 합의에 동의하고 있는가? 어느 정도로 불신을 유예할 여지를 두고 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합의는 어떠한 목적을 두고 이루어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회귀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할리우드 황금기 특수효과의 거장, 레이 해리하우젠이 참여하고 돈 채피 감독이 연출한 〈아르고 황금 대탐험〉(1963), 그리고 21세기 할리우드에서 특수효과를 사용한 신화적 영상미로 명성이 높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2006)은 영화가 어떻게 신화적 상상력을 마주하고, 발전해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태도의 변화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레이 해리하우젠, 다이나메이션 장인

레이 해리하우젠과 〈아르고 황금 대탐험〉 스파르토이 모형 [출처: The Ray and Diana Harryhausen Foundation]


〈아르고 황금 대탐험〉을 논하기 전, 영화 작품의 감독이나 배우가 아니라, 스톱모션 특수효과 감독에 대한 논의가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본 작품에 협력 프로듀서(Associate Producer)이자, 특수효과 작가(Creator of Special Visual Effects)라는 크레딧을 올려놓고 있는 레이 해리하우젠은 어찌 보면 감독인 돈 채피보다 더욱 영화를 대표하는 창작자로 유명하다.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해리하우젠에게 공로상을 전달한 배우 톰 행크스는 (아마 공로상 자리에 어울리는 과장이 섞여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카사블랑카(1942)나 시민 케인(1941)을 말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아르고 황금 대탐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입니다"라고 평했을 정도로 아르고 황금 대탐험을 비롯해 해리하우젠이 스톱모션 특수효과를 담당한 영화들은 감독보다 그의 영향이 더욱 우선으로 논해진다.


심지어 감독보다 특수효과 전문가의 손길이 부각되는 경향은 그의 작품 활동 이후에 영화 관계자들이나 평론가들에 의해 재평가된 상황이 아님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해리하우젠이 참여한 작품들은 개봉 당시의 포스터부터 그의 특수효과를 의미하는 '다이나라마(Dynarama)'라는 일종의 트레이드마크를 표기함으로 흥행을 노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고평가를 받는 아르고 황금 대탐험 뿐만이 아니라, 사슴가죽 비키니를 입은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배우 라켈 웰치를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섹스 심벌로 만든 공룡 100만년(1975)에도 그의 참여를 의미하는 '자이언트 파나메이션 (Giant Panamation)'이라는 마케팅 단어가 자리잡고 있다.


돈 채피 감독, (左) 〈아르고 황금 대탐험〉(1963), (右) 〈공룡 100만년〉(1975) [출처: Filmaffinity]


그의 딸인 바네사 해리하우젠이 직접 집필한 부친의 전기 제목이자, 스코틀랜드의 국립미술관에서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레이 해리하우젠: 시네마의 거인(2020)에는 그가 영화계에 입문한 계기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1920년에 태어나, 그가 철이 든 시절부터 세계 경제공황을 직접 경험했던 해리하우젠은 13살이 되던 해, 영화 킹콩(1933)을 관람하고 인생을 바꿀만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괴수와 공룡, 그리고 이 환상의 동물들이 은막 위에서 움직이는 영상에 완전히 매료된 소년은 학생 시절부터 이미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점토로 공룡 모형을 만들어 단편 스톱모션 영화를 촬영한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 킹콩에서 스톱모션을 담당한 전문가, 그의 우상이자, 할리우드 초창기 특수효과를 대표하던 윌리스 오브라이언을 만나 자신의 단편 작품을 보여주고 평가 또한 받는 기회를 얻는다. 오브라이언은 그의 공룡 모형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고, 해리하우젠은 막 영화과를 신설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진학해 미술과 촬영을 전공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해리하우젠은 미군의 홍보영화를 제작하는 특설부대에 자원하고, 전설적인 감독 프랭크 카프라의 조수로 군대 홍보 영화 촬영장에서 현장 경험을 쌓는다.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후, 그는 자연스럽게 할리우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고, 운명과도 같이 자신을 영화계로 이끌었던 킹콩의 아류작인 마이티 조 영(1949)의 특수효과 테크니션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다.


마치 괴수와 공룡 스톱모션 및 특수효과만을 위해 준비된 듯한 커리어를 밟아온 그는 실제 삶에서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던 유명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심해에서 온 괴물(1953)을 통해 특수효과 총괄직에 오르게 되며, 신밧드의 7번째 모험(1959), 아르고 황금 대탐험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특수효과 전문가로 유명해진다.


그는 70년대에도 신밧드 시리즈로 지속해서 특수효과의 대가로 영화 제작에 활발히 참여하지만, 70년대 중반 죠스(1975)에서 사용한 로봇 상어 및, 스타워즈(1977)에서 보여준 매끄러운 후반 작업 특수효과 등이 등장하면서 스톱모션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느꼈는지, 타이탄 족의 멸망(1981)을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한다. 그는 은퇴 후에도 2013년 타계하기 전까지 팬들이 자택에 걸어오는 전화와 편지를 모두 친절히 직접 응답해주었고, 까마득한 후배 영화인들이 저택에 찾아오면 자신의 제작 경험을 들려주었다.


굳이 현대에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계보를 이어가는 아드만 스튜디오, 라이카 스튜디오를 차치하고서라도 레이 해리하우젠이 영화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2012년 공개된 해리하우젠에 관한 다큐멘터리 레이 해리하우젠: 특수효과의 타이탄에서는 수많은 영화계의 거장들이 앞다투어 팬심을 내세우며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팀 버튼, 제임스 카메론, 테리 길리엄, 피터 잭슨, 스티븐 스필버그, 기예르모 델 토로 등 현대 할리우드의 SF와 판타지 블록버스터를 상징하는 감독들이 해리하우젠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와 특수효과에 대한 꿈을 키웠음을 간증한다.


2016년, 영국 영화 협회(BFI)에서 발행하는 『사이트 & 사운드』에서는 「위대한 레이 해리하우젠」이라는 제목으로 그에 대한 특집 기사를 게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시작한다.


그는 장르 전체, 기술, 그리고 시대에 순리에 따라 아쉽게도 잊혀 가는 전통을 한 사람의 몸에 집약해 놓은 정수였다. 그는 보통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최첨단으로 여겨졌던 기술들을 사용하거나 직접 개발해냈지만, 그의 피조물(그는 절대로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에 부여된 풍부한 표현성을 간직한 신체적 동작에서는 고전 무성영화 같은 감상이 느껴졌고, 이들을 창조한 수제 공예 장인정신은 그를 지난 세기의 위대한 조형가들과 연결시킨다.


《레이 해리하우젠: 시네마의 타이탄》,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전시 [출처: Wikimedia Commons]


그의 역작이라 불리는 〈아르고 황금 대탐험〉에서 해리하우젠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조 하르피아, 움직이는 청동 거인 탈로스, 많은 목을 가지고 있는 히드라, 그리고 스파르토이(Σπαρτοί)라고도 불리는 해골 용아병의 특수효과 및 연출을 담당했다. 물론 관객에 따라, 현대의 실사에 근접한 CG와 순수하게 기술적으로만 비교하면 조악하다는 감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사의 진행에 빠져 이아손의 모험을 따라가다가, 청동 조각상으로만 보이던 탈로스가 금속이 마찰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접하는 관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듣던 이오스 섬의 청자들이,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의 공연을 관람하던 아테네의 시민들이 느꼈던 신화적 체험의 환희와 전율, 혹은 그 편린에 경도된다. 다만, 고대 밤하늘을 무대로 활약하던 신화적 존재들이 은막에 구현된 순간, 신화의 화자와 관객의 합의선이 어느 정도 움직여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아손, 신화에서 인간으로

이아손(토드 암스트롱), 〈아르고 황금 대탐험〉 [출처: Wikimedia Commons]


〈아르고 황금 대탐험〉의 원전이 되는 이아손과 아르고 배의 선원들의 항해는 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라는 시인의 『아르고나우티카』라는 서사시에 기록되어 있다. 배의 건조자인 아르구스의 이름과, 그리스어에서 "선원"을 뜻하는 "나우테스", 그리고 여기서 유래되어 "항해"를 뜻하는 "나우티코스(ναυτικός)"의 합성어로, 아르고나우티카란 말 그대로 "아르구스가 만든 배의 항해"를 의미한다.


영화는 원전을 각색한 서사구조를 풀어나가는데,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테살리아의 왕인 아리스토를 죽이고 역모를 일으킨 펠리아스(더글러스 윌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펠리아스는 예언자를 통해 자신의 반란이 성공하지만, 아리스토의 자식이 곧 복수를 하리라는 점괘를 받고, 아리스토의 딸을 살해한다. 하지만 아리스토의 어린 아들 이아손은 신의 가호로 테살리아에서 탈출에 성공하고, 펠리아스는 여신 헤라(아너 블랙맨)에게 "샌들 한 짝을 신은 사람"에게 자신의 왕위를 빼앗기게 된다는 신탁을 듣게 된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장성해서 왕위를 되찾기 위해 테살리아로 돌아온 이아손(토드 암스트롱)은 물에 빠질뻔한 펠리아스를 구출하고, 그 과정에서 샌들 한 짝을 강에 잃어버린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이 예언의 아이임을 깨닫고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젊은 이아손을 대접한다. 이아손은 펠리아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라는 진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진정한 왕이 되려면 영웅의 업적을 남겨야 하고, 이를 위해 세계의 끝인 콜키스에 숨겨져 있는 제우스의 보물인 황금 양털을 가져오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아손을 직접 건드리면 저주를 내린다는 신탁을 받았던 펠리아스는 옳다구나 하고 이아손에게 배를 건조해 콜키스로 모험을 떠나기를 부추긴다.


이아손은 이 위대한 모험을 위해 올림픽을 연상시키는 체육대회를 열어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을 모집한다. 이 중에는 헤라클레스(나이젤 그린)와 같은 이미 검증된 영웅도 있고, 헤라클레스를 재치로 이긴 소년 힐라스(존 케어니)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영웅들도 참가했지만, 한편 펠리아스의 아들 아카스토스(게리 레이먼드) 또한 부친의 지시를 받고 정체를 숨긴 채 원정대에 자원한다.


아르고스(로렌스 네이스미스)가 건조한 배는 여신 헤라의 가호를 받아 항해를 시작했지만, 곧 보급을 위해 정박한 크레타 섬에서 보물창고를 발견한 헤라클레스의 실수로 섬에서 아무런 보물도 가져가지 말라는 여신의 경고를 어기게 되고, 청동 거인 탈로스와 대결하게 된다.


(左) 청동 거인 탈로스, (右) 해신(빌 거드전), 〈아르고 황금 대탐험〉 [출처: Wikimedia Commons]


여기서 친우인 힐라스를 잃게 된 헤라클레스는 원정대에서 빠지게 된다. 가장 위대한 영웅이 빠진 채로 항해를 계속하게 된 원정대는 예언자 피네우스(패트릭 트로튼)의 인도를 받기 위해 그를 핍박하던 반인반조 하르피아 퇴치를 돕기도 하고, 피네우스의 조언과 해신의 도움으로 부딪히는 바위섬을 무사히 탈출하면서 바다에 빠진 여인을 구출해 결국 콜키스에 도착한다.


하지만 고난으로 가득 찬 항해 중 지속해서 이아손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시하던 아카스토스는 결국 그에게 반기를 들고, 이아손과 결투 후 바다에 빠진다. 기항한 이아손은 구출한 여인, 메데이아(낸시 코박)와 작별하고 콜키스의 궁전에 도착해, 그곳의 왕 아이에테스(잭 귈럼)를 알현한다. 하지만 아이에테스는 탈출한 아카스토스의 배반으로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훔치러 왔다는 목적을 알고 있었고, 이아손과 원정대를 감금한다. 이아손과 한눈에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탈출한 원정대는 황금 양털이 있는 동굴로 향하고 그곳에서 보물을 지키는 괴수 히드라에게 살해당하는 아카스토스를 목격한다. 이아손은 히드라를 무찌르고 황금 양털을 획득하지만, 곧 그를 추적해 온 아이에테스 왕이 히드라의 이빨을 사용해 소환해낸 해골 용아병과 전투를 하고, 동료들을 잃지만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는 테살리아로 향하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귀향, 그리고 올림포스 산에서 필멸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우스(니올 맥기니스)와 헤라의 대화로 끝을 맺는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인 〈아르고 황금 대탐험〉은 동일한 계통의 여타 작품들처럼 상호 문화, 또는 상호 매체적인 면으로 해석하기에 적합하다. 가령, 원전과 대비해 어떠한 부분이 어떠한 연유로 각색되었는지와 같은 비교도 이를 관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신화와의 내용 비교는 가급적 지양하려 한다. 영화의 목적 자체가 철학 고찰과는 거리가 있기에, 이 작품에 적용된 각색은 대중적이고 (60년대의 기준에서) 현대적인 감각에서 유흥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左) 히드라와 결투하는 이아손(토드 암스트롱), (右) 스파르토이와 결투하는 아르고 원정대, 〈아르고 황금 대탐험〉 [출처: Wikimedia Commons]


오히려 관객의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청동 거인 탈로스, 하르피아, 히드라, 스파르토이와 같은 흔히 말하는 스펙터클과, 이를 영상화 한 레이 해리하우젠의 특수효과 기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히 스톱모션이 화면상에 구현된다는 연출만이 관객의 놀라움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괴수 스톱모션은 본 작품이 만들어지기 수십 년 전, 해리하우젠의 스승 격인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손을 통해 무성영화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었다. 관객이 느끼는 경외감의 원천은 기술 난이도 외부에서 기인한다.


이를테면, 청동 거인 탈로스와 헤라클레스가 조우하는 장면을 보자. 카메라는 헤라클레스의 등 아래에서 탈로스를 올려다보는 형태로 위치하고 있다. 헤라클레스가 바람소리라고 생각했던 금속성이 들려오며 탈로스의 동상의 고개가 돌아가면서 헤라클레스를 바라본다. 한편, 하늘에서 아르고 원정대를 공격하는 하르피아와 이들의 공격을 칼로 뿌리치는 전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작품을 비롯해 대부분의 해리하우젠 영화에서는 스톱모션 기술이 등장하는 씬에서는 보통 스톱모션이 적용되는 장면에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한다.


탈로스와 헤라클레스(나이젤 그린), 〈아르고 황금 대탐험〉 [출처: YouTube @ Creature Features]


해리하우젠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공통으로 배우들이 증언하는 이야기는, 스톱모션이 활용될 장면의 연출은 감독만큼이나 해리하우젠이 직접 나섰다는 부분이다. 해리하우젠은 팻말을 들고 배우들에게 일정 방향을 바라보라고 지시하거나, 어떠한 형태로 구현이 될 예정이니 그에 걸맞은 감정을 연기하라 지도했다. 그리고, 후반 작업을 통해 배우들의 상상에 존재하는 괴수들이 해리하우젠의 손에 의해 창조된다. 촬영 현장부터 괴수들의 움직임까지를 모두 손수 연출해냈기에,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비인간 존재들은 어찌 보면 해리하우젠 본인이 직접 연기하고 있는 형태나 마찬가지였다.


기술 면에서, 만약 화면 내에 스톱모션 괴수만이 등장한다면, 이는 당시에도 제작되고 있었던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과 다를 바 없다. 움직임의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직접 촬영해 고속 영사하는 스톱모션은 같은 형태를 손으로 그려 고속 영사하는 애니메이션과 동일한 효과를 구현한다. 특히,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던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기법은 실제 배우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촬영한 후, 그를 프레임별로 분리해 옮기거나 그 위에 덧그렸던 만큼, 초기 애니메이션은 스톱모션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해리하우젠의 영화에서 (그리고 그를 〈킹콩〉에서 놀라게 만들었던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경외감은 괴수와 배우의 상호 작용에서 기인한다. 이는 해리하우젠 또한 감안하고 있던 부분이었고, 그는 인간 배우와 스톱모션 괴수들의 상호작용을 위해 "다이나메이션"이라는 기술을 고안해냈다.


다이나메이션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실제 촬영된 필름(필름 1)을 스크린에 영사해 배경으로 만든다. 여기서 인간 배우가 움직이고 있는 전경(foreground)을 구분해내 까맣게 칠한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스톱모션으로 미니어처 모델을 촬영(필름 2)한다. 이 촬영분 위에 이번에는 까맣게 칠했던 전경 부분만을 영사해 재촬영을 해 최종 합성(필름 3)을 완성한다. 물론, 이는 단순한 촬영 순서만을 나열한 방법이며, 해리하우젠은 배경을 영사하는 스크린에 유리 필터나 특수 조명등을 활용하여 거리감, 색상 등 사실성을 높이는 자체 기술을 고안하고는 했다.


"다이나메이션" 작동 원리 [출처: Wordpress @ The Past and Present of Stop Motion Animation]


이를 접한 대부분의 관객은 아마 마술사의 트릭을 확인한 관객처럼 '뭐야, 별거 아니네'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작품에서 느낀 경외감이 클수록, 그 방법이 기만적이라 느끼게 되는 실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해리하우젠 본인도 자신이 사용한 기술에 대해 밝히는 행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작품에서 전경과 배경이 분리된 작업본인 필름 1, 2, 혹은 그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자체를 촬영한 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를 플라톤의 『대화편』 중, 『프로타고라스』에서 나타는 뮈토스(μῦθος)와 로고스(Λόγος)에 비추어 고민해보자.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당대 소피스트의 수장인 프로타고라스의 대화 중, 프로타고라스의 입을 빌려 뮈토스와 로고스의 분리 사용을 제시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의 입장 변호를 위하여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데, 본인이 뮈토스를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즉 그리스의 신들이 등장하는 우화라고 정의하며, 로고스를 논리적 변증법이라 정의한다. 그가 변호를 뮈토스로 시작하는 이유는 우화가 감성적으로 더욱 흥미롭기 때문이지만, 로고스로 끝내는 이유는 사고 실험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에 이성적 기반을 더하기 위해서이다. 프로타고라스를 위시한 소피스트들에게 뮈토스는 시인들의 언어였고, 로고스가 소피스트들의 언어였다. 플라톤 본인이 이러한 이분법 정의에 동의하고 있는지는 명확지 않으며, 본인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아틀란티스를 위시한 신화적 비유들은 두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플라톤(혹은 프로타고라스)의 정의를 따른다면, 호메로스와 그를 이은 수많은 구전 서사시인들은 뮈토스의 화신, 혹은 전령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들의 이야기 자체가 신화에 기반한 만큼, 향유하는 청자들 또한 신화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이 신화들이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제전을 위한 연극으로 각색되면서, 신화의 일부분이 특수효과에 의존하여 시각화되었다. 비극의 특수효과는 뮈토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로고스, 논리에 기반한 기계, 메카네를 동원하여 제공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서사와 연출은 신화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일례로, 프리드리히 니체가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서 주목한 현상은 아폴론적 이성과 디오니소스적 광기의 조화였고, 이는 곧 로고스와 뮈토스의 결합과 중첩 지대로 이해할 수 있다. 휘장을 뚫고 전차가 등장하는 연출은, 정교함이나 실제와 같은 사실성을 통해 신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도 관객은 무대 위에 있는 배우가 신, 또는 신화적 영웅을 흉내 내고 있다는 이해를 기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간다. 어찌 보면, 배우가 흉내를 내고 있다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기에, 모든 관객은 배우의 위에 자신만이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상상을 투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는 현대에 와서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위시한 공연 직접 관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작품과 관객 사이 형성되는 개인적 유대감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연극의 무대와 공연 장치 [출처: 『Introduction to Production』, By Robert I. Sutherland-Cohen]


신화 서사의 연출에서 로고스가 뮈토스를 역전하게 된 계기는 특수효과가 사용된 영화가 처음이었다 주장하고 싶다. 물론, 그 기반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연출가들과 동일한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리하우젠이 다이나메이션 스톱모션 기술을 개발하며 고민한 부분은 어떻게 하면 신화적인 연출, 뮈토스를 시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이었다. 그는 화면을 전경과 배경으로 분리하고, 그 사이에 자신이 연출한 피조물들을 움직임으로 과거의 연극에서는 불가능했던, 인간이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괴수들을 영상을 통해 구현해냈다. 어쩌면, 그의 피조물들은 호메로스의 청자들이 상상하던 뮈토스와 가장 근접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참여한 영화의 포스터를 장식한 "다이나메이션"이라는 신조어만큼이나, 이 피조물들에는 해리하우젠 개인의 이성적 판단이 녹아져 있으며, 이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머리에서는 신화적 상상이 자리하고 있던 폭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신화적 장면을 "더 신화에 가깝게" 시각화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탈신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아르고 황금 대탐험〉 및, 원작인 『아르고나우티카』에서는 서사적으로 의아한 부분이 존재한다. 자신만의 신화의 주인공이자, 그리스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가 원정대에 가입을 하고는 제대로 된 활약도 하기 전에 원정에서 자진해 탈퇴한다. 물론, 헤라클레스의 참여가 "아르고 원정대에는 그리스의 모든 영웅이 다 참여했다"라는 명제의 가장 자명한 예시로 작용하기 위해 추가된 후, 주인공인 이아손이 활약할 여지가 생기도록 작가가 임의로 탈락시켰을 수도 있다. 일단 헤라클레스라는 영웅은 그 존재만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헤라클레스로 인해 해결되었다"라는,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으로 나서야 하는 이아손과 공존이 문제가 된다.


혹은, 반신반인이자, 신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헤라클레스가 영웅의 자리를 인간인 이아손에게 물려주는, 일종의 세대교체로 본다면 어떨까.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 목록에는 젊은 네스토르가 포함되어 있는데, 네스토르는 추후 나이가 들어 지혜로운 현인으로 존경받으며 『일리아스』의 아카이아 연합군의 원로로 참여하기도 한다. 만약 일리아스가 고대 그리스 인들에게 있어서 신화의 종말이자 인류 역사의 시작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이 시작점은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까지 이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레이 해리하우젠이 〈아르고 황금 대탐험〉에서 특수효과를 사용해 의도적 탈신화를 꾀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가 본격 점화한 영화의 특수효과 발전은,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신화 영화, 또는 신화를 연상시키는 판타지 영화 장르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서사시의 주인공을 신화적 영웅에서 인간적 영웅으로 변화시키고, 연출의 방점이 뮈토스에서 로고스로 이동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특수효과의 발전으로, 신화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은 인간이 서사시를 향유해왔던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사실적으로, 동시에 이성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SF 문학계의 거장인 아서 C. 클라크가 "고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이는 반대로 말하면 마법이라 생각했던 현상은 고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로 연출이 가능하다는 가설이 될 수도 있다.


잭 스나이더, 21세기의 신화 작가

잭 스나이더 감독 [출처: Wikimedia Commons]


잭 스나이더 감독은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 스케일의 영화를 전문으로 연출하면서도 대중 및 평단의 호불호가 갈리는 축에 속한다. 스나이더 감독의 작품군과 궤를 함께 하는 액션 블록버스터 장인인 제임스 카메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경우 비평의 성공을 함께 가져가는 편이며, 마이클 베이 감독의 경우는 평론가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연출에 집중하기에 스나이더 감독과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에 대해 대중의 평이 어떠하고, 평단의 반응이 어떠하고라며 마치 전 세계 모두의 대중과 비평가들의 시선을 평균에 수렴하는 요약을 좋아하지는 않으며,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형태도 거북하다. 때문에 차악으로라도 (그의 평이 절대 척도는 아니지만) 20세기와 21세기 초 미국 출신의 비평가 중 가장 대중적 영향력이 높았던 로저 이버트의 의견을 빌려오려 한다.


이버트는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2009)에 대해 "카메론이 왕관을 지켜냈다"라고 제목을 달았고,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에 대해서는 "코믹북 기반 영화에 근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 놀런 감독은 자신의 두 배트맨 영화에서 주인공을 인간 감성의 광활한 범위를 다룰 수 있는 캔버스로 자유롭게 만들었다"며 고평가 했다. 베이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고평가를 한 트랜스포머(2007)에 대해서는 "거대 로봇들이 싸우기 시작하면서 묘한 일이 일어났다. 영화관이 조용해졌다. 환호성이 없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메가트론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도 반응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무감정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이버트가 마지막으로 평을 한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는 왓치맨(2009)으로 "이 영화는 다회차 관람이 필요할 정도로 풍부하다 … 모든 뉘앙스나 의미를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강렬한 경험이었음은 확실하다. … [해설]을 위해 다시 보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고, 다만 그 경험을 다시 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끝을 맺었다.


어찌 보면 이버트의 개인적 소회가 스나이더 감독의 작품에 호불호가 발생하는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는 장르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관객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세계의 구축을 통해 영화를 관객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생 체험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개별 관객과 영화가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집단으로의 관객과 장르로서의 영화의 연결성이 강조된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스나이더 감독은 영화 내부의 세계를 확장시켜, 외부의 세계(관객 전체)를 덮어버리는, 신화의 재창조를 목표한다.


[사족.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슈퍼히어로 영화를 테마파크로 비유한 연유는 그의 해석에 따르면 슈퍼히어로 영화는 감독이나 관객이 어떠한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모두를 하나의 거대한 놀이기구에 태워, 일관된 경험을 제공함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최근,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를 HBO 맥스를 통해 단독 공개하면서 스나이더 감독은 헬레닉 필름 소사이어티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그가 300 및 그 이후의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하면서 참고한 신화에 대해 몇 가지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항상 매력을 느껴왔다고 고백하면서, 그리스 인들에게 신화란 상징을 통해 자연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서사 도구였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재난이나, 거대한 비극을 마주했을 때, 신화는 이러한 자연물에 상징의 인격을 부여함으로 그 상황에 처한 인간이 그를 마주하고 해석할 수 있는 대응 기제라는 의미다.


군대에서 영웅으로 취급받던 한 병사가 갑자기 어느 날 밤 자신의 동료들을 모두 살해하고 그 충격에 자살했다고 가정해보자. 현대인들은 그 원인을 오랜 시간을 전쟁터에서 겪고 발생한 PTSD, 혹은 치료를 위한 약물 중독 등, 뇌의학이나 임상심리학에 기반한 사유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들의 인지와 이해를 벗어났기 때문에 용사 아이아스가 신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해석을 하게 된다. 프로타고라스가 이야기한 뮈토스와 로고스의 본질적 차이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성적 이해(로고스)가 불가능하기에 신화적 해석(뮈토스)이 등장한다.


아이아스의 죽음, 칼릭스 크라테르 도자기 (기원전 3세기 추정) [출처: Wikimedia Commons]


스나이더 감독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의 뮈토스적 본질이 로고스가 지배하고 있는 근현대적 서사구조와는 궤를 달리함에도 현대의 영화감독들이 신화에 이끌리는 이유는, 뮈토스와 로고스 중 무엇이 더 사실적인가라는 1차원의 질문보다는 어떠한 사건을 보고 그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한 본능에 매료되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설명을 한다. 예컨대, 서사나 그 해석이 윤리, 혹은 과학적으로 옳은지 틀린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사건은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라는 의지에 주목하고 있다.


때문에 스나이더 감독의 작품군을 어떠한 과학적 진실, 개연성, 역사적 고증, 혹은 사회 도덕성을 들어 평가한다면 소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물론, 그의 의도와 저런 일반 영화 평가의 개념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한다 해서 그가 면책이 된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고대 서사시의 작법을 의도적으로 따른 〈300〉에 현대의 윤리관, 역사관에 기반해 비평을 시도한다면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군인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원한과 자존심 때문에 수많은 동료들이 살해당하는데도 눈 꿈쩍하지 않은 최악의 영웅이라는 해석과 유사한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타당한 비판이지만, 이 작품이 어째서 그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과 문학과 미술을 포함한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논하기는 어려운 지점에 도달해버린다.


그보다는, 스나이더 감독이 의도한 신화적 연출을 위해 사람 외의 카메라 안의 모든 세계를 물질성이 결여된 CG, 상징적 이미지로 구현한 시도가 로고스가 완전히 잠식해버린 뮈토스라는 결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탐구가 더욱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광기와 스파르타

스파르타의 전사들, 〈300〉(2006) [출처: FILMGRAB]


영화 〈300〉은 〈씬 시티(2005)의 원작 코믹스 작가로 유명한 프랭크 밀러가 창조해낸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미 유명한 사실을 굳이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영화가 실제 역사의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벌어진 기원전 5세기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의도적 고증 무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기원전 479년, 전투의 유일한 생존자인 스파르타 군인 딜리오스(데이비드 웬햄)가, 전장에 모여있는 군인들에게 1년 전 있었던 테르모필레 전투와, 그곳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대군에 맞서 300명의 스파르타 군인을 이끌고 싸운 레오니다스 왕(제라드 버틀러)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강력한 전사를 육성하는 스파르타 교육을 받고 자라난 레오니다스는 왕이 되어서도 전사 기질을 간직하고 있다.


세계를 정복할 기세로 그리스로 들이닥치는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크세르크세스 1세(호드리구 산토루)는 그리스 침공 전 각국에 대사를 보내 항복을 권유한다. 하지만 레오니다스는 외교적으로도 가장 폭력적인 반응인 대사의 살해를 통해 스파르타는 제국의 지배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결의를 내보인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원로들은 페르시아 제국에게 사주된 신탁의 결과로 인해 대국과 전투를 거절하면서, 응전을 위한 정식 군대의 편제 또한 불허한다. 이에 레오니다스 왕은 자신의 친위대라고 우길 수 있는 300명 만의 정예 병사만을 데리고 페르시아 군대를 맞이하기 위해 출정한다.


스파르타 전사들, 〈300〉 [출처: FILMGRAB]


좁은 계곡에서 응전을 하면 대군의 규모가 소용이 없으리라는 판단에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향하는 스파르타 군대 앞에 스파르타에서 태어났지만 꼽추라는 이유로 추방된 에피알테스(앤드류 티어난)가 나타나 종군을 자원한다. 하지만 레오니다스는 그가 장애로 인해 방패를 들어 올리지 못하며, 때문에 그리스 군대의 방패진인 팔랑크스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를 돌려보낸다.


한편 스파르타에 남은 왕비 고르고(레나 헤디)는 원로원의 의견을 돌리기 위해 젊은 거두인 테론(도미닉 웨스트)에게 반강제적으로 몸을 허락하지만, 테론은 오히려 원로원 회의에서 레오니다스를 완전하게 배신한다. 분노한 고르고는 모든 원로의 앞에서 테론을 살해하고, 그가 페르시아의 첩자에게 받은 뇌물을 공개하지만, 이미 레오니다스에게 원군을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레오니다스는 협곡의 이점을 이용해 압도적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페르시아 군대의 공세를 막아내지만, 결국 자신이 돌려보낸 에피알테스가 페르시아 군에게 협곡의 통과하는 비밀로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페르시아 군에게 포위당한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레오니다스 왕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스파르타의 왕은 방패를 떨어뜨리는 척 하지만, 크레스크세스에게 창을 던져 그의 얼굴에 상처를 입힘으로, 제국의 황제도 필멸자라는 현실을 증명한다. 분노한 크세르크세스는 총공격을 명령하고, 레오니다스 왕을 포함한 스파르타의 300 군인은 모두 전사한다.


이야기는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와, 레오니다스 왕이 마지막 전투 직전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귀환시킨 딜리오스가 자신의 경험을 그리스 연합군,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1만 명의 스파르타 군인들에게 증언하면서 끝을 맺는다. 플라타이아이 전투에 모인 이들은 300명의 스파르타 군인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을 압도하는 페르시아 군대에게 공격할 준비를 마친다.


〈300〉은 개봉 당시부터 끝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르고 황금 대탐험〉처럼 신화를 기반으로 영화가 된 작품이 아니라,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한 작품인 만큼, 이 작품에서 보이는 연출과 기록된 역사와의 차이점, 즉 고증적 비평은 작품의 개봉 당시 이미 셀 수도 없는 비평을 통해 펼쳐졌다. 그런가 하면, 영화임을 감안해도 너무 기괴하게 묘사된 페르시아 군대의 모습은 인종 차별이나, 그릇된 문화적 이해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장애 때문에 스파르타의 군대에서 탈락한 에피알테스의 모습과 결국 그로 인해 조국을 배신하는 인물상은 우생학적인 시선이라는 해석도 보인다. 이러한 견해에 대한 재반론도 존재하지만, 전술하였듯이 소모적인 논쟁으로 수렴한다는 개인적 판단에 굳이 추가적인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장면에서 인물을 제외하고는 그린 스크린을 사용해 배경을 합성한 작품의 시각 기술과 특수효과가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본작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이자, 2006년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사용될 만큼 강렬한 "This is Sparta!" 장면을 살펴보자.


페르시아의 대사를 맞이한 레오니다스 왕은, 스파르타의 물과 땅을 요구하면서 항복을 권유하는 대사에게 "아테네에서도 당신들의 권유를 거절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만약 그 철학자들과 소년 애호가들도 그 정도 용기가 있다면, 스파르타인들도 명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호기가 섞인 반론을 펼친다. 대사가 "다음에 할 이야기는 조심해서 고르라"라고 경고하고, 레오니다스 왕은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스파르타의 들판과 그곳에 살아가는 스파르타인들을 둘러본다.


스파르타의 풍경, 〈300〉 [출처: YouTube @ Movieclips]


카메라에 담긴 스파르타의 풍경은 제한적인 컬러 팔레트와 하이 콘트라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랭크 밀러의 미학을 영화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크러싱(The Crush)"이라 불리는 컬러 그레이딩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로우라이트(블랙)의 디지털 색정보와 하이라이트(화이트)의 디지털 색정보를 극단적으로 압축해 컬러 그레이딩 이전보다 명암이 확실하게 대비되며, 미드레인지와 블랙 사이의 콘트라스트가 훨씬 자연스러워지면서, 그라데이션이 부드럽게 번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물론, 이는 인간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팔레트가 아니다.


레오니다스가 바라보는 스파르타의 풍경은 실물성이 결여되어 디지털 정보로 조합된 태양이 비추는 산과 들판에, 디지털 후보정을 통해 인간의 눈이 경험한 적이 없는 명암이 드리우고 있다.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레오니다스 왕에게 당황한 대사는 "이건 광기다!"라고 항의한다. 레오니다스 왕은 이에 대해 "이건 스파르타다!"라고 대답하면서 대사를 광장 한가운데 있는 깊은 구덩이로 발길질해 떨어뜨린다. 물론, "그건" 스파르타가 아니다.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 페르시아 대사(피터 멘사) 〈300〉 [출처: FILMGRAB]


일단 아고라 한가운데에 그를 둘러싼 보호 난간이나 울타리도 없이 몹시 위험한 구덩이가 있다는 연출은 논의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실제 촬영은 그 구덩이를 포함한 모든 배경에 그린 스크린을 덮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현장에 주목해보자. 레오니다스를 연출한 잭 스나이더 감독은,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그의 상상 속에 임의로 건립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구덩이에 상대를 떨어뜨린다. 마치 호메로스의 구전 서사시를 듣던 청자들이 밤하늘 위에 트로이의 성벽을 그려냈듯이, 그는 초록 스크린으로 뒤덮인 세트장에서 스파르타의 광장을 상상해냈다.


"This is Sparta" 대화에 함유된 서사적 의미는 "대국을 상대하는 짓은 바보 같은 일이다"라는 힐난과,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불굴의 용기가 스파르타의 정신이다"라는 응답이다. 스나이더 감독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화를 인간의 기술로 재창조한다는 그의 야심 찬 기획을 의심, 또는 비난하는 이들에게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지 말라는 그의 반론처럼 들린다면 확대 해석일까. 하지만 실제로 영화에서 대부분의 자연지형을 삭제하고, 이를 디지털 기술로 재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달리 보자면 궁극적인 로고스의 산물인 디지털 특수효과야말로 기계 장치를 통한 창세기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닐까.


스나이더의 상상은 시각효과 감독인 크리스 왓츠의 지휘를 통해 미티어 스튜디오와 하이브리드 테크놀로지를 비롯한 10개의 특수효과 전문 제작사에서 일하는 CG 기술자들의 모니터 스크린을 통해 시각화되었다. 여기서 뮈토스적인 상상이 로고스적인 기술로 구현되었다는 역설적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 분명 스나이더가 프랭크 밀러의 미학에서 영감을 얻어 각색한 이 신화에 가까운 고대 그리스 세계는 (만약 크러싱을 통해 구현된 다소 비현실적인 컬러 그레이딩을 넘어갈 수만 있다면) 신화시대를 영화화했던 그 전의 어떠한 영화화보다 더욱 정교하고 성실하게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스나이더 감독과 인터뷰를 한 헬레닉 필름 소사이어티의 조지 스테파노풀로스(ABC 방송국의 간판 앵커와는 동명이인이다)는 현대의 슈퍼히어로 팬덤과 고대 그리스의 광신도 집단, 예컨대 디오니소스의 숭배자들과 닮아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한다. 스나이더 감독은 이 해석을 흥미로워하면서 "그렇다면 [신들에게] 신탁을 받는 행위는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 관람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슈퍼히어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이미 자신들이 보고 있는 뮈토스 세계가 0과 1의 로고스로 채워져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만약 호메로스와 관객이 서로 나누었던 합의가 믿어달라는 요구와 믿어주겠다는 신용, 예언자와 일반인 사이의 신탁과 유사한 신앙의 교류였다면, 스나이더의 영화관에서는 속아달라는 연출가의 요구와, 속아주겠다는 관객 간의 상호 기만적인 교류가 후보정으로 과장된 그림자 속에서 암중비약하고 있다.


마침

서사시를 의미하는 영단어인 "epic"이 현대에 와서는 창작물의 (거대) 스케일을 함유한다는 변화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실제 이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글, 이야기"를 뜻하는 "에포스(ἔπος)"의 변형된 형태인 "에피코스(ἐπικός)"에서 유래되었다. 서사시는 굳이 따지자면 그리스인들에게는 단순히 전해지는 "이야기, 서사"였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전해질 만한 가치가 있는 서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아폴로니우스의 아르고나우티카와 같이 신화적인, 한 명 인간의 삶 이상의 가치를 가진 영웅들의 과시적이고 초인적인 설화였다. 영웅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업적이 존재했고, 영어의 "epic"이라는 단어에는 스케일의 거대함이 섞여 "대서사시" 혹은 "거대 신화"로 번역되고는 하는 개념이 부여되었다.


때문에, 영화계에서는 역사적으로 기록된 (다시 말해, 사가들이 후대에 남겨질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중요한 사건을 다룬 영화를 "Historical Epic", 즉 "역사적 대서사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대서사극을 실제 촬영만으로 통해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때문에 레이 해리하우젠이나 잭 스나이더와 같은 특수효과의 대가들은 발전하는 기술과 눈속임을 통해 영상 위에 자신들이 상상했던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시각화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여기서 신화를 현실화하려고 노력할수록, 신화성이 희미해진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관객은 30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신앙에 가까운 자세로 시작해, 자기-기만까지 합의선을 옮겨가면서까지 이야기를 듣고, 재창작해내고 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며, 그 이야기를 지탱하는 기반이 뮈토스인지 로고스인지는 방법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소수의) 우리가 신화, 역사를 기반으로 한 대서사극 영화에 천착하는 이유는, 이들을 영상화한 경험을 통해 다시는 온전히 뮈토스적인 이야기가 새롭게 창조되지는 않으리라는 이유를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상극으로 보이는 대서사극과 슈퍼히어로 영화는 우리의 신화적 뿌리에 노스탤지어를 느끼고 근원지로 회귀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을 통한 기만적 신앙을 통해서라도, 최초의 구전 시인이 최초의 대서사극을 밤하늘에 상영했던 순간의 신화적 황홀감을 간접 체험하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의 발현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이 글이 시작했던 모양새처럼 말이다.


(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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